MYSELF/나의 책

민욱아빠 2017. 7. 10. 11:50


  94학번인 내 주변에서도 학자금은 때마다의 큰 고민들 중 하나였다.  취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이 하숙을 했던 두 학번 위의 다른 과 선배를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후줄근한 라운드 티로만 기억했던 그는 정장차림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세대인데다 이제 막 IMF를 겪어서 취업이 너무 힘들어.’ 그는 미소와 피로가 반반 섞인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었다.  IMF이후 나도 아버지 회사에서 나오던 학자금 지원이 끊겨버렸다.  4학기를 버텨야 했던 나는 학자금 대출이라는 은행입간판을 보자마자 은행문을 열었지만 돌아오는 건 직원의 면박뿐이었다.

  이후 대학이 취업을 위한 거대한 학원이 되고,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은 그들을 채무자로 만드는 현상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미 사회에 발을 들인 시기라서 그 변화에 묵직한 느낌은 없었지만, 세상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대학시절은 우리때로 바닥을 찍겠지 했지만, 대학시절의 답답함과 암담함은 우리 시기보다 좀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대학교육에 대한 동경을 기반한 대학생들의 학자금마저도 자본주의는 먹잇감으로 먹어치우는구나 하는 섬뜩한 기분도 들었다.  대학 학자금은 어떤 이유로 천정부지로 치솟는지, 그리고 어째서 교세와 건물의 확장에 열을 올리는지, 구체적인 관심은 없었지만 좀체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은 일단 제쳐두고서도 분명한 사실은, 대학시절 학자금 대출을 받은 청년들은 이제 바늘구멍만한 취업전선에서 마땅한 돈벌이를 구하지 못해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부가 재밌어 대학원 등등의 진학과정을 밟을라 치면, 벌이없이 쓰는 돈만 불어나며 대출금은 더욱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대학공부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가는 세상에서, 대학은 사회생활의 필수요건으로 여전히 인식된다.  취업의 어려움은 거기에 더해져, 대학은 스펙을 위한 과정이자 거대한 취업학원이 되었다.  형식을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은 엄청난 학비를 당연시하며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게 청년은 사회의 첫 발을 채무자라는 간판을 등에 지고 시작한다. 

  청년채무자라는 단어는 대학시절부터 빈부격차의 체감이 좀 더 짙어졌음을 의미한다.  빈부의 체감은 취업에 대한 불안과 조급함을 더욱 부추기고, 좋아하거나 필요한 공부에의 심화를 훼방한다.  의대 법대 등등의 분명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학과들이 인기있는 건, 숭고한 정신이나 이상의 추구때문이 아닌 것이다.  결국 대학은 걸치기 어색한 옷을 강요하는 것처럼 의미가 불분명한 사회의 강요된 절차로 변질되었다.  이를 거쳐야 하는 대학생들은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여 대다수의 청년들이 채무자가 되어 사회의 첫 발을 내딛는다.  취업은 어렵고, 공부를 이어나가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서 집안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신용유의자로 쉽게 전락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대학과 그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집단이다.

  사회가 청년들에게 좀 더 깊고 다양한 공부를 권하는 과정이 대학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학문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과정은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일 것이다.  사회가 권장하는 것이라면, 권유받은 대상은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밀어넣기만 하고 그들에게서 돈을 뽑아낸다.  금융과 신용관리의 첫 경험이라는 얄팍한 상술로 젊은 청년들을 빚쟁이로 만들어버린다.  빚쟁이가 된 이들이 사회에 나와 빚을 갚을 방법은 그리 많지도 않다.  대체 이 사회는 또는 사회를 장악한 자본은 약자들에게서 얼마나 더 뽑아먹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그렇게 몸에 빨대를 꽂힌 약자의 한사람으로 저자는 자신과 또래들의 처지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빨대를 구성하는 한 사람인듯 싶어 점점 미안해진다.  거대자본이 자유롭게 활개하는 이 사회에서 누군들 약자나 먹잇감의 처지가 아닐까 싶지만,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이 더욱 암담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이 세상의 희망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