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Essay

민욱아빠 2017. 7. 15. 21:37

  가족들은 내가 제주에 입도한 지 이틀 후에 내려왔다.  장인장모님도 이사를 거들기 위해 같이 내려오셨다.  퇴근 후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아들은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달려와 안겼다.  아이는 이제 만 4살을 지나 겨울의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살아갈 집은 아파트 8층의 꼭대기 모서리 집이었다.  아파트는 제주항 뒤쪽 가파른 절벽 위에 축대를 쌓아 8층 높이로 지어 있었다.  과거 한국전쟁시에는 육지의 피난민들이 거주하던 난민촌이었고, 이후 주정공장이 들어섰던 자리를 다시 정비해서 아파트를 지었다고 했다.  바다를 바로 마주하는 동은 아니었지만, 바로 뒤인 두 번째 동인데다가 꼭대기 모서리 칸이 우리가 살 호여서, 바다가 아쉽지 않게 잘 보였다.  게다가 남쪽 베란다로는 맑은 날이면 한라산의 웅장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였다.  북으로는 제주바다가 보이고 남으로는 한라산이 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커다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근무할 병원이 정해지고 우리가 살 집까지 정해졌을 때, 아내는 혼자서 집을 둘러보겠다고 하루일정으로 제주를 다녀왔었다.  그게 아내의 첫 제주나들이었다.  집을 둘러본 아내는 서울에서 이제껏 살아왔던 아파트와 구조와 넓이가 아주 같다며, 반가워했다.  아무래도 아무 연고없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일텐데, 아파트의 구조와 넓이라도 똑같으니 사소한 것마저 반가웠던 듯 했다.  그래서, 살림의 배치는 어렵지 않게 정해졌고 장인댁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독립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5년하고 몇 달정도였다.  북측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항구와 바다는 익숙해짐 속에서도 신선함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의 모습도 다채로웠지만, 비나 눈이 오고 해가 쨍쨍하거나 바람에 안개가 몰려오는 날마다의 풍경도 제각각의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북측 창으로 카메라를 고정시켜놓고 퇴근 후 매일 같은 시각의 항구와 바다 풍경을 찍어 일년의 기록으로 남겼다면 얼마나 의미있었을까 아쉬움이 생긴다.  한라산의 풍경 역시 그랬다.  그러나, 산보다는 물을 더 좋아하는 나에겐 그 아파트의 북측 창이 더 마음에 닿았다.  그 집에서 나는 커다란 선물을 안은 기분으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해 보았던 기회의 공간이었다.  입주하자마자 나는 어항을 들여서 열대어와 새우를 길렀다.  서울에서부터 잡아왔던 베이스를 아침마다 연습해서 어설프나마 한 때 직장인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탑동광장 방파제로 걸어내려가 생소한 영역이었던 바다낚시를 시작했고, 건프라에 취미가 있는 동료를 만나 건프라를 시작했다.  베란다와 거실에서는 각종 허브와 커피나무를 길렀고, 따뜻한 남쪽에서 만난 애플망고나 레몬의 씨앗을 심어 발아시키기도 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렸으며, 여행 온 지인들이 어디가 맛있냐고 묻는 통에 직접 알아보자며 맛집 블로그도 시작했다.  그 공간은, 제주에서의 삶을 시작한 나에게 화수분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장인 장모님까지 내려오신 첫 날의 저녁을 항구 어딘가의 식당에서 물회로 해결했다.  살림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 살림을 실은 화물트럭이 오면, 아내와 어른들이 정리를 할 계획이었다.  따라서 집에는 따로 챙겨 내려온 담요 몇 장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가까운 호텔에서 주무시는 것이 어떠실까 제안했지만, 첫 밤을 바깥에서 보내는 건 아니라고 어른들은 딱 떼어 말씀하셨다.  남쪽의 따뜻한 섬이란 생각은 밤이 되고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공기는 마치 아파트 벽 정도는 가볍게 투과할 수 있다는 듯, 실내 안에서도 흐름을 느낄 수 있었고, 흐름은 껴입은 옷까지 파고들어 한기를 느끼게 했다.  서울과는 다른 느낌의 추위였다.  게다가 아파트는 중앙난방으로 난방효율이 아주 떨어졌고, 꼭대기 모서리 호실은 천장과 벽 한쪽을 외부공기에 그대로 노출하였기에 더더욱 추웠다.  선물같은 풍경을 안고 우리는 추위와 더위를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그대로 차를 몰고 시내로 향했다.  따뜻하다는 남쪽 섬에서 당장 사용할 전기장판을 구하러 나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당장에 어른들 주무실 자리를 따뜻하게 해드려야 했고, 앞으로의 우리도 사용할 일이 종종 있겠다 싶었다.  겨울대목도, 한겨울의 고비도 넘긴 시점에 급하게 구하는 전기장판이 마음에 딱 들 리가 없었다.  대략 오래 사용하겠다 싶은 것을 하나 골라 다시 집으로 급하게 향했다.  집에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4살배기 아이를 중간에 두고 서로 껴안고 계셨다.  그날도,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그 때 구입한 전기장판은 종종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살 제주 집에서의 첫 밤은 매우 추웠다.  그리고, 제주의 겨울은 육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무척 춥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