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일 기

민욱아빠 2017. 7. 16. 23:04

  환자들이 몰리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짜증이 일곤 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란, 단순한 작업이나 절차로 잠깐 스쳐지나가는 일이 아닌 이상 사무적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진료를 하는 입장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진료실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나를 찾아온 사람에겐 괴롭고 절박한 일의 해결을 원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상당히 인내를 요하는 일이자 수고로운 일이다.  전자차트 대기열에 환자명이 줄줄이 늘어나 창을 가득 채우면, 한숨과 함께 짜증이 확 몰려온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앞에 환자가 없을 때다.  환자를 들여보내라는 벨을 누르고 환자가 들어오면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나와 마주앉은 이의 의학적 요구를 상세히 들어주고 해결해주려 노력한다. 

  하루는 그런 마음가짐에 약간의 구멍이 생겨 새어버린 듯한 날이었다.  하루 중 얼마 안되는 환자가 몰리는 시간이었고, 나는 어서 환자들에 처방을 내주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평소보다 조금 더 앞섰던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이 혈압약이나 당뇨약 같은 주기적으로 처방을 내주면 되는 환자들이나 물리치료를 받는 환자들이라 간단한 면담만 하면 되었다.  신환이 조금 섞이면서 기본 방사선 검사같은 이중절차를 거쳐야 하는 환자들이 조금 늘던 시점이었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듯한 여자환자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손이 아직 저리고 안 움직여져요.’ 

  사실 이 환자는 이전부터 알던 환자로 나와 원장님을 오가며 진료를 받는 환자였다.  혈압에 협심증에 당뇨에 고지혈증 약, 그리고 기타 혈액순환제나 가벼운 신경안정제 등등의 다양한 약을 한꺼번에 복용 중인 환자로, 손이 저리고 안움직인다며 약도 복용해보고 물리치료도 해 오던 환자였다.  복용중인 약이 너무 많아서, 소소한 증상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약의 부작용이나 병의 경과에 따라 필요한 약 여부등을 파악해서 경과관찰 중인 환자였던 것이다.  때로는 물리치료도 시도해보았으나,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지라 시간여건상 꾸준한 치료도 어려운 환자였다.  그런 환자가, 들어오자마자 아직도 손이 저리고 안움직인다고 하니, 나도 살짝 답답증이 올라왔던 모양이었다.  ‘아직도 안 움직여져요? 그러면 답이 없는데…’  다잡던 마음이 살짝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답이 없어요?’ 환자가 되물었다.  ‘네..’라고 대답하면서 차트를 보며 환자가 복용중인 약들을 다시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환자가 고개를 들면서 배어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아차싶었다.  내가 심정이 불안한 사람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음을 알아챈 것이다.  환자는 한 달 여를 참으면서 먹으라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다니다 시간을 내서 해결책을 상의하려고 왔을 것인데, 나는 오자마자 그 면전에 대고 ‘답이 없다’는 말을 내뱉어버린 것이었다.  너무 미안했다.  미안함에 내 마음이 안절부절 못했다.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질환과 복용하는 약 때문에 출혈경향이 있어 주사는 되도록 피하고 있던 환자였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환자의 팔과 손을 짚기 시작했다.  무어라도 해 주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있었지만, 환자의 통증을 내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짚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출혈가능성을 감안하고 주사를 놓아보기로 생각했다.  짚어보니, 내가 짐작한 몇 군데의 통점이 있어서 설명을 하고 주사를 놓았다.  환자는 아직 눈시울이 조금 젖은 채로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마술사네요.  움직여져요.’  주사 전까지는 푸른 빛마저 조금 감돌던 손가락들이 서서히 따뜻한 색조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조심한다며 이제까지 소극적으로 치료해왔던 진료에 한 번 더 미안해졌고, 환자가 다행히 웃음을 지었다는 생각에 안도할 수 있었다.  아직은 조심스러웠다.  출혈이 생겨 멍이 들면, 팔을 많이 쓴다는 환자가 일을 잘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환자는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갔고, 나는 미안함과 안도의 양가감정 사이에서 나를 다시 돌아보아야만 했다.  

  진료실에 있다보면 나를 만나는 행위를 자판기 캔커피 뽑듯 통상이자 귀찮은 과정으로 생각하는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하나라도 더 설명해주려 하는 내 진심을 흘려들으며 알아서 하겠다며 나가버리는 환자들도 많다.  그런 모습에 자괴감이 많이 든다.  외과전문의로 활동할 때엔, 당장의 행위로 괴롭던 이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정말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것이 외과라는 영역의 특징으로 일상의 보람으로 남았다.  작은병원의 일반의로 활동하게 되면서, 그런 보람보다는 자괴감을 느껴야만 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환자를 마주하는 일에 짜증이나 나이브함으로 빠져버릴 수도 없다.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나는 평생 그 기본에 대한 인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나 역시 실수하는 인간이기에 가끔은 신념에 구멍을 낼 때가 있다.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아마, 그런 구멍이 한두번 더 있었는데 환자들이 내색을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한다는 인간의 과제는, 삶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내가 처한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는 한 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