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책

민욱아빠 2017. 7. 17. 12:16


  공교롭게도 나의 이야기역시, 살구로 시작된다.  내가 살구를 처음으로 맛 본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연주황색빛에 솜털이 수북할 것 같은 느낌의 작은 과일을 입에 넣었다.  새콤함 뒤로 퍼지는 달콤함과 특유의 텁텁하면서도 녹는 듯한 느낌은 나의 감성 어딘가를 자극했다.  아니, 그냥 맛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겼던 그 작은 알맹이들을 앉은자리에서 홀린듯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쪽에 모아놓은 씨가 열 개쯤 되어보였다.  혼자서 사온 살구를 거의 다 먹었다는 사실에 머쓱했다.  무아지경에 가깝게 정신을 놓고 살구들을 먹어치웠다는 사실도 내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만난 어머니에게 어떤 우연으로 이 이야기를 해드리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나를 임신하셨을 때, 문득 살구가 먹고싶어 아버지에게 사다달라 하셨단다.  아버지가 들고 오신 검은 비닐봉지 안의 살구들을 받자마자 한 자리에서 다 드셨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을 똑같이 반복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엔 신기함과 핏줄에의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

  30년은 각자의 시간이었다.  물론, 중간에 잠깐씩 마주치듯 얼굴을 대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삶은 각자의 자리에서 혈연이라는 연결관계를 무시한 채 한 사람은 성인이 되고 한 사람은 그만큼 나이들어 갔다.  사춘기를 겪기 전의 조그만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뒤에서야 만난 어머니와의 이야기는 어렴풋하거나 쉽게 말할 수 없는 과거의 회상이자 서로의 빛바랜 퍼즐을 꺼내 맞추어보는 일이었다.  나는 함께 한 기억이 없어 깊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복잡한 마음과 미안함으로 깊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거리가 되었다.  원망, 분노, 미안함, 용서 등등의 복잡하고 상투적인 감정의 격한 교류 이후에 회복될 그런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그러했던 삶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함께 하지 못해 공감할 수 없거나 아쉬운 많은 것들이 회복되지 못한 채 약간의 거리가 된 그대로, 서로의 삶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감성 또는 본능으로 어머니와 내가 혈연임을 확신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살구 같은 것들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드러내보인 과거에서 격렬한 반응으로 공감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폭신하고 두툼하게 나를 휘감는 두터운 줄을 느낀다.  홀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내가,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는 어머니의 전화기너머 목소리에 이유없이 어깨에 힘이 빠진다.  혈연의 어쩔 수 없는 각인이었다.  피의 나눔은 살구에의 감각마저도 전달되어 30년이라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나와 어머니의 어쩔 수 없음의 증거가 된 것이다. 

  작년 가을 자락에 마당에 살구나무를 심었다.  올해엔 과실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봄이 되자 줄기를 하늘로 쭉 올리더니 줄기 한가득 꽃을 피웠다.  그것은 그대로 살구로 맺혔다.  한여름이 되자 초록의 작은 알맹이들은 어느새 연주황의 완연한 살구로 익었다.  이미 새들이 먼저 맛을 본 몇 개를 제외하고 살구를 따서 아내와 아들에게 건넸다.  아내와 아들은 정말 맛있다고 했고, 나도 맛 본 살구는 정말 맛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생각났다.  우리집 마당에서 열린 첫 살구를 먹은 아들은, 내가 처음으로 살구를 맛 본 때의 나이다.  하나 먹고는 쪼르르 들어가버린 아이가 살구에 어떤 인상을 만든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와 내가 혈연의 어쩔 수 없음에도 30년이라는 시간동안 각자의 삶을 살았듯, 내 아이도 살구와 상관없는 자신만의 인생을 살 것이다.  각자의 삶이자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자의 이야기의 말미에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묻는다.  각자의 삶인 만큼 저자의 이야기에 어떤 감상을 남기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의 이야기를 독후감으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