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Essay

민욱아빠 2017. 7. 19. 23:11

  제주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몇 번 여행차 다녀간 일 말고는 아무런 연이 없는 섬이었다.  누구의 소개로 온 것도 아닌, 호기롭게 선택해 내려온 남쪽의 섬에서 처음 얼마간은 분주함 때문에 가족 홀로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이사가 마무리되고 보충할 살림들을 장만하고 주변정리가 끝나자 장인 장모님을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셨다. 

  입도 후 2주 정도가 지나자 설 연휴가 시작되었고, 나와 아내와 아들 셋만 집에 덩그러니 앉아있으니 그제서야 고립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본가나 처가에 가려면 밀려도 차만 몰면 되던 때에서, 비행기나 배를 예약해야만 갈 수 있는 섬사람 신세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우리가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는 섬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음도 깨달았다.  발이 묶인 기분과 고립감으로 누군가를 만나려 하니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 차를 몰았다.  인연은 깊지 않아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 명절이라 섬에 없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그런 정황을 가늠하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찾아가보고, 없다면 아쉬운대로 중산간이나 바닷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오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부를 만난 건, 전공의 1년차 중반을 보내고 있을 즈음이었다.  엄청난 양의 업무와 당직, 그리고 번잡한 서울생활에 지쳐갈 때 즈음, 무주의 어느 산골로 들어가 삶을 꾸려가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 모습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부부의 다큐멘터리를 일 초도 놓치지 않고 시청했다.  그리고, 부부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알아내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용렬하고 무례해 보일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런데, 부부는 그러자는 답장을 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일요일 서초동의 어느 까페에서 잠깐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내게는 완벽한 환기였다.  지방에 내려갈 때 까지 서울에서의 수련생활을 잘 참아내자 다짐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 시간이 흘러 우리가 제주행을 택했을 때, 그 부부도 제주에 내려와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 섬에서 우리가 무작정 찾아간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부였다.  스테이는 회천동에 있었고, 무작정 찾아간 스테이 대문의 벨을 누르자 그가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우리를 잘 몰라보는 그에게 나는 몇 년 전의 만남을 이야기했고 그제서야 그는 우리를 알아보았다.  아내분은 출타 중이었고, 우리는 스테이 한 켠의 서재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그간의 안부와 제주에 입도했음을 이야기했다.  조용한 성격의 그와 호들갑스럽지 않은 우리 사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몇 년만에 우연하게 만나 나누는 이야기에 공통의 흐름이 있기도 어려웠다.  다만 기억에 남는 건, 제주에서 키우는 고추는 이상하게 다 매워진다는 그의 말이었다.  아마도 텃밭을 이야기하는 도중이었을 것이다.  인상적이지 않고 담담했던 대화는 담담한 인연으로 이어져, 그와는 아직도 가벼우면서도 다양한 관계로 연을 잇고 있다. 

  내려오기 전 아동관련 책 동호회 분들과의 만남에서 제주에 가면 회원 한 분이 살고 계신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입도하고 정리가 되면 만나봐야겠다 했는데, 먼저 연락을 주셔서 어느날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저지리에서 택시영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그 분이 사주신 저녁메뉴는 몸국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없는 어디서부터인가 거부감이 솟는 이름의 음식이었지만, 맛은 아주 좋았다.  약간은 까끌하고 속을 묵직하게 긁는 듯한 맛이었다.  몸국과 함께 돔베고기를 먹으며, 그 분이 익살맞게 구사하는 제주어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저녁을 대접해주신 것도 감사했는데, 헤어지면서 책을 한 권 주셨다.  이영권 선생님의 제주사였다.  내가 지금까지 그 분에게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을 간직하는 건 이 책 때문이다.  나는 제주사라는 책 한 권으로 따뜻한 남쪽의 휴양섬이라는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제주섬의 이미지를 완벽히 새롭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멀고 먼 거리 바다건너 변방의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사람들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고립감, 외로움 등등의 우울한 기분은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었다.  섬 안은 어딜가든 차로 한 시간 거리였고, 한 시간 거리 안에 호기심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새로움과 호기심이 고립과 외로움을 압도했다.  거기에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갔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인연을 만들고 관계를 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을 안다는 것을 넘어, 섬 안에서의 내 호기심을 풍성하게 채워가는 활동으로 발전했다.  살림을 풀고 잠깐 느꼈던 고립감과 외로움은 이제는 흔적없는 기억이 되었다.  지금은 너무 많다 싶을 정도의 오지랖으로 제주생활을 즐긴다.  그 안에 내가 제주섬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로 인해 내 생활은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풍성하다.  제주에 와서 처음 맞았던 설 명절 오전, 쌀쌀하고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몰았던 그 때의 막연함을 지금 이 순간, 아무렇지 않은 가벼운 마음으로 같은 공간에서 회상할 수 있음을 난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 이영권 선생의 제주사를 다시 읽으며 그분의 자료를 찾다 님의 불로그가 있어 댓글을 남깁니다.
남다른 시각의 제주사는 읽을수록 신선하네요.
님도 그러하셨군요.
그래서 반가움에 글을 남깁니다.
다음주에 제주에 한달 머물기를 시작하면서 오늘부터 제주사를 다시 읽고 있는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