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Essay

민욱아빠 2018. 2. 25. 11:07

  설명을 마치고 펜을 건네며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하는 나에게 보호자는 탄식하듯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어떻게 동의합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생각해도 서명하기 힘들어보였다.  나와 앞의 보호자는 차트나이 96세의 맹장이 터진 할아버지의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환자를 먼저 내과선생님이 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을 , 나는 환자를 보기도 전에 수술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부터 고민에 빠졌었다.  그리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보호자를 만나 수술을 위한 통상의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작성할 , 나는 강하고 무섭게설명할 밖에 없었다.  평소의 상황보다 무겁고 진지하게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고 나니, 환자의 나이때문에 안그래도 표정이 어둡던 보호자는 자신을 억누르던 무거운 불안이 터져버리고 것이었다.  


  동의서에는 바탕의 A4용지에 무표정하고 건조하기만 검은 글씨들이 적당한 크기로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발생할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이해했으며, ‘모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동의같은 두루뭉술하고 철저히 방어적인 문장들을 환자나 보호자 앞에 들이밀기 전에 나는 동의서를 뒤집어 완벽하게 하얀 백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책상의 펜을 들어 단어를 적고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환자에게 내려진 진단명, 진단 외의 가진 기저질환이나 특이할 만한 상태, 수술명과 수술방법, 마취방법, 수술시간, 수술 회복기간과 수술 발생할 있는 합병이나 후유증 등등을 복합적 관점에서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그것은 수술을 하는 의사와 환자를 담당하는 병원의 당연한 의무였다.  그러나, 96 할아버지 환자 앞에서는 조금 달라야 했다.  맹장수술이야 간단한 수술 하나이지만, 초고령자의 약해진 심폐기능과 신장기능이 초래할 있는 수술 회복의 어려움, 감염증의 악화와 패혈증의 가능성, 그에 따른 의식의 소실, 기도삽관과 인공호흡기 사용가능성, 최종으로는 사망가능성까지..  회복하지 못하는 인체에서 발생할 있는 최종의 경과와 결과를 모두 설명해야 했다.  그것은 그대로 보호자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전이되었다.  초고령의 아버지가 수술이 필요한 급성질환으로 환자가 되어버린 것도 막연한 부담이었는데, 그는 나에게서 불안과 두려움을 버거운 무게로 떠안아버린 것이었다.  글씨와 그림으로 채워진 종이를 다시 뒤집어 무미건조하고 두루뭉실하며 방어적인 문장들로 돌아왔다.  알량한 종이를 펜과 함께 보호자에게 내밀고 보호자 서명란에 서명을 요구했을 , 펜을 받아든 그의 손은 살짝 떨리며 쉽게 움직이질 못했다.  


  굳어버린채 살짝 떨리고 있는 보호자의 손은, 이해도 어렵고 수도 없는 어떤 막연함을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을 내가 모를 없었다.  역시 보호자의 경험이 있었고, 가족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일이 때로는 무기력의 죄책감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애써 담담해야 했다.  현실의 입장에서 역시 만만치 않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보호자가 떨리는 손으로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간다.  해야 하는 설명을 제대로 했는가, 빠뜨린 것은 없는가, 그런데 수술은 내가 감당할 만한 것인가,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것인가..  그렇다고 보호자와 마주하는 내내 무표정할 수만도 없었다.  중간중간 살짝 풀어진 표정으로설명은 이렇게 무섭습니다만,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위안이 될지 될지 모를 말들로 보호자를 안정시켜야 했다.  의료라는 공급우위의 분야에서는, 의사의 설명이 환자나 보호자가 이해할 있는 거의 모든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의사인 나는 철저하게 설명해야만 했다.  동시에, 법적 관점에서 의학적 책임과 발생할 있는 과실의 문제에서는 공급우위의 경제적 관점에 비례하여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환자 보호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어느 과정동안을 인간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의학은 의사들도 예측하지 못하는 지점을 만들기도 하고, 이해할 없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해서 치료자로 하여금 당황과 혼란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법적 관점에서는 고스란히 의사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역시 그런 당황스런 경험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와 보호자들에 차가워지기도 했었다.  내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편하게 웃으며 다독일 있었던 때는 수술이 아주 만족스럽게 끝나거나, 수술 환자의 회복이 아주 순조로움을 확인한 이후였다. 


  법은 진료실 안에서 의사와 환자/보호자 사이에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규정했다.  그리고, 동의서는 의사에겐 방어벽이, 환자/보호자에겐 쉽지 않은 이해의 두려움이 되었다.  동의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안다.  그러나, 법과 의사와 환자/보호자 사이에 인간적 이해와 위안은 사라져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안에 인간적 이해와 위안을 담아보려 했다가 동료의사들의 충고와 우려를 들었고, 실제로 발생한 상황에서 난처함과 상처만 안아버렸었다.  규정을 강요하는 제도 안에서 냉정과 차가움의 벽만 솟고 있었다.  많은 것들이 딱딱했고, 불안했다.  전문가, 전문분야들이 넘쳐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했고 이해시키기도 어려웠다.  이해의 어려움이 관계의 간극을 넓히려 , 법은 관계의 연결을 유지하고 이해를 유도하고자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일련의 사회적 노력이 이루어질 때마다 인간적 따뜻함이나 격려나 배려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마지못해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뒤돌아 나가는 보호자를 보면서, 나는 그의 무거운 어깨와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나의 책임과 부담을 함께 위로할 무언가가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외롭기는 보호자나 의사인 나나 마찬가지였다.  떨떠름한 기분을 벗어낼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아는 지식으로 구성된 시스템 안에서 환자가 무사히 회복되는 뿐이었다.  시스템은 그저 무미건조했고 딱딱하며 차가웠다.  어느 누구도 그것에 쉽게 의문을 가질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96세의 할아버지는 건장했다.  짧았지만 전신마취라는 부담을 이겨내고 수술도 되어서 길지 않은 시간에 회복되었다.  수술 후의 상황을 없어 잠시 중환자실에 머물렀고, 보통의 경우보다 약간 길게 입원했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주 순조로운 회복과정이었다.  포괄수가제의 덫은 그저 나와 병원의 부담일 뿐이었다.  순조로운 결과로 나와 보호자의 부담을 시원하게 덜어낼 있었고, 서로간의 표정은 부드러워졌다.  차갑기만 했던 동의서는 그렇게 단순한 일련의 과정이 되어 종이 장의 존재감으로 차트서류 뭉치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제서야 따뜻해지는 동의서 ..  그것은 다행감이기도 했지만, 현대의료 시스템 안에서 여전히 짚어내지 못하는 어떤 괴리와 차가움,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화학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