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여행

민욱아빠 2018. 3. 1. 11:49

  이튿날의 일정은 대만 국립 고궁박물원이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스린 역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했다.  대만에서 택시를 타는 일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부담이 덜 했다. 짚어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택시비가 그닥 비싸지 않다는 점과 한국의 택시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이 멀지 않은 거리를 편하게 택시로 이동한 뒤에, 고궁박물원의 입구에서 내렸다.  시련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단체관광버스에서, 택시에서, 또는 걸어서 입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위치마다 서 있는 수많은 안내원들도 익숙함과 난감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인파를 안내하고 있었다.  사람의 물결을 따라 우리도 2층으로 올라가, 매표소의 엄청난 줄에 서야 했다.  입장권을 사고, 한국어 설명기기를 대여하는 데에만 한 시간이 걸렸다.  시작부터 지치는 느낌이었다.  작은 위안이라면, 학생들은 무료인지라 성인 두 사람의 입장료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었다. 
 




  전시된 유물에는 번호가 안내되어 있었고, 설명기기에 번호를 입력하면 한국어로 설명이 시작되었다.  설명은 자세했다.  모든 유물에 번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수의 유물을 감안하면 설명된 유물만 둘러보아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였다.  실제로, 고궁박물원은 제대로 둘러보려면 하루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럴만 했다.  엄청난 유물들이 섹션별로 나뉘었고, 각 섹션은 구석구석으로 루트를 만들어서 만만치 않은 동선을 걸어야 했다.  송대부터 시작해서 청의 유물까지, 장제스는 본토에서 쫓겨나오면서 이 엄청난 양의 유물들을 알뜰하게 챙겨나왔다. 
 



  차분하게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도 상황도 허락되지 않았다.  설명기는 하나뿐이라 세 가족이 같이 쓸 수 없었고, 아들녀석은 보석과 장신구류가 전시된 구역에서나 흥미를 보였지, 또 다시 많이 걷는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의 유물만 설명을 듣고 그냥 둘러보는 방식으로 다녀야 했다.  그런데, 중국 본토의 유물을 대만에서 감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만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한족의 역사는 400년을 조금 넘긴다.  원주민들의 섬에서 1600년 경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 의해 formosa 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이후 반청복명의 한족들이 섬에 정착하고, 청의 지배하에 만주족들이 정착한다.  일본의 지배 이후에는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 일원들이 대만으로 들어오며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대만은 중국이길 원하는 건가 아니면 대만으로서의 정체성을 원하는 건가..  대만의 정체성이라면 그 뿌리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고궁박물원의 유물들을 둘러보면서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는 대만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가늠하거나 느낄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에서의 첫 48시간도 채우지 못한 일개 여행자의 의문과 고민이라 하기엔 너무 섣부른 면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옥배추와 육형석을 직접 보려는 사람들의 줄은 이미 백 여미터를 채우고 있었고, 송나라 시대의 편지와 시들은 한자를 잘 알지 못하는 내가 감상하기엔 버거운 것들이었다.  극한의 미세함을 보여주는 세공품들과 청의 과학유물들이나 좀 눈에 들어왔을까..  그보다도 우리는 엄청난 인파에 지쳐가고 있었다.  적절한 시간 동안 관람하고 나와 맞은편에 있는 원주민 박물관을 들렀더니 한 달간 휴관이라 했다.  대만이라는 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원주민들에 관련한 것들은 고궁박물원 정원의 한 구석에 동상과 석판 몇 개로 간략히만 설명되고 있었다. 

 


  박물원 입구 길거리에서 파는 대만식 소시지는 찐 쌀알이 섞인 절편같은 떡에 야채와 구운 소시지를 안으로 넣고 접어서 들고 먹는 음식이었다.  맛이 꽤 친숙했다.  그렇게 출출함을 대략 해결하고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스린 역으로 나왔다.  버스비 15원, 한국돈으로 600원 정도이니 무척 저렴한 교통비였다.  스린역에서 전철을 타고 용산사로 향했다.  딱히 용산사를 보려 한 것은 아니었고, 거기서 우리는 이제 막 대만에 도착했을 동생네와 조카들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용산사 일대는 정확하게 서울의 탑골공원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엄청난 인파와 차들이 뒤섞여 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전철역 입구 주변의 그늘진 기둥 하나씩 잡고 앉거나 누운 노숙자들, 앉을 자리라면 모두 자리를 차지하고 않은 노인들, 그리고 용산사 안부터 밖까지 빼곡하게 공간을 채운 사람들, 거리공연..  사람 수만 조금 정리하면 한국이라 해도 믿을 풍경이었다.  주변으로는 시장골목들이 있었는데, 역시 사람들로 가득해서 구경도 먹는 일도 버거울 정도였다.  우리는 근처의 까페에 들어가 다리를 쉬며 동생네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치 서울 종로 한자리에서 약속하고 만나듯, 대만의 오래된 동네 한자리에서 자연스레 만나 여행을 시작했다.
 





  근대시기의 오랜 벽돌건물을 그대로 둔 보피랴오 거리에서 두 가족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후 매제가 미리 알아 온 맛집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첫 집은 해산물과 캐주얼한 중식을 간편한 분량으로 파는 중식당이었다.  거기서, 병입 후 18일간만 유통시킨다는 타이완맥주를 마셨다.  분위기는 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의미가 있었던 것이 18일간만 유통시키는 타이완맥주를 처음으로 마셔본 것이자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조카와의 첫 대작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설 연휴라 대부분의 집들이 문을 닫았음을 확인하며 서문역 부근을 돌아다니다가, 아종면선 곱창국수의 엄청난 줄에 서서 곱창국수를 맛보았다.  종이그릇에 담긴 그 애매한 음식에 칠리와 마늘소스를 넣고 고수를 넣었는데, 고수를 넣자마자 그 애매함이 먹기 좋은 화사한 맛으로 변하는 마술을 경험했다.  향채로만 즐기던 고수가 그런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음식의 조합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타이뻬이 101 타워를 가기로 했다.  타이뻬이는 도시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전철로 다니면 적절한 시간간격으로 다니기 좋았다.  그리고 도착해서는 다시, 엄청난 인파와 대기줄을 감당해야 했다.  표를 구입하는 데 30분 이상의 대기줄을 서야 했고, 타워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탑승하기까지 대기하는 시간이 한 시간 30분 이상이었다.  명절 연휴의 여행을 즐겨야 하는 여행자가 감내해야 할 부담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타워 전망대에 올랐다.  101층이 아닌 90층의 전망대에서 보이는 타이뻬이 시의 야경은 그냥 자체로의 의미일 뿐이었다.  시야가 나쁘지 않고 비나 바람이 없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저,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의 야경을, 올라오느라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열심히 보고 둘러보았을 뿐이다.  이 도시에서,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이 밤의 도시와 그 순간에, 여행자인 나는 무엇을 느끼고 둘러보고 고민해야 할 것인가를 잠시 생각했다.  사람들은 눈 아래 펼쳐진 건조한 불빛을 배경으로 해서 셀카봉을 높이 쳐들며 웃고 있었다.  문득 그러지 못하는 나는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며 여행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동문역으로 나왔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둘러보았으나, 10시를 넘기면서 대부분의 식당들은 문을 닫거나 주문을 마감했다.  애초에 문을 연 식당도 별로 없었으니, 늦은 저녁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곧 주문마감을 한다는 치킨집에서 패밀리팩 사이즈의 치킨 두 봉지를 사서는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해외에서 동생네와의 첫 만남, 첫 동반여행, 그리고 내 생일을 기념하는 저녁식사와 진득한 술 한잔은 성사되지 못한 채 아쉬움으로 마무리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