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여행

민욱아빠 2018. 3. 2. 22:56

  아침을 조금 서둘렀다.  동문역 부근의 호텔에서 2박을 보낸 후, 서문역 부근의 호텔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 조식을 일찍 챙겨먹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했다.  조금 서둘러 짐을 맡겨두고 동생네와 만나 하루의 일정을 시작했다.  하루의 시작은 아점이나 다름없는 시간, 서문역 부근의 까르푸에서였다.  푸드코트에 꽤 괜찮은 훠궈집이 있다는 매제의 정보에 기대어, 총 7명의 일행은 오픈하자마자 몰려들고 있는 훠궈집의 세 번째 손님이 되어 아침 겸 저녁을 먹었다.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서, 서로가 어설픈 영어만이 유일한 소통수단이었다.  거기에 다행인 것은 한국어 메뉴판이 있다는 것.  일단 인원 수대로 육수부터 밥 야채 고기 등등을 주문했는데, 주변의 여러 테이블을 보아 하니 우리는 너무 많은 양을 주문해서 먹고 있는 듯 했다.  하루의 시작이 의도치않게 아주 든든했다.

 


  오늘 하루의 일정은 단수이 여행이었다.  훠궈를 먹는 순간까지 나는 단수이 하면 카스테라 밖에 모르는 수준의 상태였다.  이제 전철을 타고 붉은 노선의 종점인 그 곳으로 가야 했다.  어제처럼 그곳도 사람들로 미어터지겠지 하는 각오를 다진 상태였다.  그런데, 전철이 종점을 향할수록 전철 안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눈에 띄게 자리가 여기저기 날 정도로 사람들이 줄어드니, ‘단수이가 많이 멀어서 사람들이 잘 안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전철은 노선 중간 즈음의 베이터우 역에서 사람들을 쏟아내더니 한참을 서 있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얼마 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더 기다려야 하나 하는 찰나 다른 한국인 일행이 갑자기 우리에게 ‘여기서 내려서 갈아타야 하나봐요.’ 하는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 우리는 전철에서 나왔고, 둘러보니 바로 맞은편에서 단수이로 향하는 노선이 지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는 준 콩나물 시루 수준의 전철을 타고 남은 노선을 달려 단수이에 도착했다. 
 



  각오는 현실이 되었다.  개찰구를 나서자마자 역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이 많으면 약간의 공황상태에 빠지며 어디로 가야할 지 혼란스러워진다.  내가 그랬다.  아내는 그런 나를 일부러 재촉했다.  ‘진리대학교까지 가야하니 어떻게 가는 지 알아서 안내 해.’. 지도앱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물어물어 그냥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앱은 부근의 버스정류장을 알려주었고, 몇 번 버스를 타라는 정보까지 주었으며, 내리는 정류장까지 알려주었다.  그것대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잠깐을 달려 진리대학교 앞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의 느낌이 가득한 언덕을 올라 진리대학 교정에 들어섰다.  영화 ‘말 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라는 이곳의 교정은 아담하고 아름다웠다.  웅장하고 아담한, 건물 자체가 발산하는 묵직한 시간의 느낌도 좋았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즐기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 여행자들의 북적임은 공간의 아늑함과 시간의 향기를 즐기는 데에 방해받지 않을 정도이긴 했지만, 역시 많았다.  그 옆의 담강중학교는 교문이 닫혀있어 교정 입구만 밖에서 보았는데, 남쪽 특유의 굵고 높은 활엽수가 나란하게 선 진입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오랜 건물과 나무와 이끼낀 세멘트 담벼락과 벽돌들의 동네 골목길은 편안하게 마음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언덕을 가리는 높은 나뭇잎 사이너머 단수이 강하구가 보이고, 언덕 아래 찻길에서는 시끄럽지 않은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잠깐의 걸음으로 평안한 골목길의 끝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시 진리대학교 교정으로 들어서서 홍마오청으로 들어섰다.  네덜란드인들의 붉은 머리에서 착안하여 붉은 털이라는 의미의 건물로 옆의 영국대사관과 함께 둘러 볼 수 있었다.  그 공간 안에서의 큰 인상은 없었지만, 그것 자체로 대만 400년의 역사가 설명된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이 섬도 이국사람들의 점령지였고, 그들의 문화가 그대로 전해져 뿌리를 내렸다는 증거들이었다.  400년전 숯을 넣어 활용하던 부엌과 차분한 문양의 찻잔과 가구들이 놓여있는 거실의 모습은 그대로 시간이자 역사였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잘 정돈된 정원과 단수이 하구를 바라보는 건물의 배치는 시선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조화로운 배치가 풍경 안에서 이루어졌고, 균형과 원근이 살아나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또는 가만히 앉아 시간을 즐기고 싶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여행자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걸어야 했고, 생리적 욕구들을 해결해야 했다.  아름다움과 시간이 차분하게 자리한 그 공간을 내려와 찻길을 건너 강하구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사람들의 물결을 감내해야 했다.  까페마다 자리는 없었고, 자리를 잡으려면 일단은 기다려야 했다.  우선 강 하구를 따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볼 거리도 다양했다.  그리고, 살면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거리 공연은 기본이었고, 파도가 몰려오는 물가에서 캔버스를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낚시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배를 몰아 하구를 드나들었다.  여행자들은 줄을 서서 배를 타고 하구 맞은편으로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서 앉을 곳을 찾아야 했다.  아이들도 지쳐가고 우리도 다리가 아팠다.  매제는 하구의 스타벅스에 들어가 구석의 작은 자리 하나를 확보했고, 뒤이어 들어간 나는 한 켠에 서서 계속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다 테라스 구역의 자리 하나를 간신히 확보했다.  커피 한 잔에 긴 휴식시간을 가졌다.  바다같은 단수이 하구와 그 위를 드나드는 배들, 어딘가에서 계속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고, 북적이는 사람들의 소음은 약간의 서늘하고 습한 강바람에 나직해져서 귀에 거슬리지 않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라오제 거리..  나는 그 때까지도 카스테라를 생각했는데, 아내는 통오징어구이를 먹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목적이나 다짐은 그냥 자연스레 포기 또는 사라졌다.  우리는 라오제 거리의 엄청난 인파에 파묻혔고, 일부러 걷지 않아도 알아서 밀려 흘러가는 수준의 북적임 안에 갇혀버렸다.  스타벅스 부근에서 체크한 단수이역까지의 거리는 1.2킬로미터였다.  조금 더 걸어왔으니, 약 1킬로미터 정도를 좁고 북적이는 라오제거리에서 밀려 움직여 가야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보이는 것은 내 눈 앞에 애견가방을 맨 커플과 가방안의 흰 푸들이었고, 들리는 소리는 인파의 소음 위로 고함치듯 중국어를 외치는 가방가게 아저씨의 호객소리였다.  그 와중에, 아내는 기어이 줄을 서서 통오징어구이를 사들었다.  인파 속에서 오징어조각 하나를 집어 먹었는데, 부드럽고 묵직하며 향신료가 잘 어울리는 매콤한 오징어 몸통살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좀 더 먹자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밀리고 밀려, 라오제거리 끝까지 밀려나왔고, 다시 밀리고 밀려 단수이역의 개찰구를 통과해 지하철 안까지 밀려들어가는 조금은 신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단수이 하구의 석양은 연무에 가렸지만 그것 그대로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좀 더 머무르고 싶었다.  석양의 강하구에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일요일 저녁시간..  내가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공간과 시간을 아쉬움과 나름의 고즈넉함으로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일행과 함께하는 여행자의 입장과 질려버릴 정도의 인파에 시달린 상황에서 그것은 사치이자 다시 고난으로 빠져들겠다는 우매함이었다.  미련없이, 시내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는 전철 안에서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스린 야시장을 기대했다.  야시장을 즐겨야 한다는 대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젠탄역에서 내려 도로 길건너의 상황은 역시 만만치 않음을 예고했다.  이제는 무서울 정도의 인파가 야시장이라는 구역을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밀려나올 정도로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오를 하고 들어섰다.  그리고, 먹어봐야 할 것들이라는 음식들을 보이는 대로 하나씩 사들고 먹었다.  큐브스테이크, 소라구이, 대만소시지 등등.. 번잡함 안에서 알뜰하게 챙겨먹고는 시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역시 엄청난 사람들에 밀려 흘러가는 형국이었다.  가뜩이나 몸이 좋지 않았던 아내는 공황증상을 호소했고, 아들녀석은 다리가 아프다 불평했다.  동생내외와 조카들도 표정이 질려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번잡했는지, 여기저기 소지품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는데, 뭔가를 보고 아내의 팔을 붙잡는다는 것이 지나가던 어느 젊은 여자의 숄더백을 붙잡는 바람에 의심을 눈길을 받아버렸다.  옆에 지친표정의 아들과 손을 잡고 있었고, 나 역시 화들짝 놀라 미안하다는 손인사를 해서 망정이지, 난감한 일이 발생할 뻔 한 것이었다.  야시장에서 술 한잔과 길거리 음식을 즐기자는 우리의 천진난만한 일정은 완벽하게 틀어졌다.  서문역으로 돌아가 거기서 제대로 된 저녁을 먹기로 하고, 우리는 잠깐의 구경끝에 스린야시장을 벗어났다.
 




  우리는 잠시 호텔에 들러 체크인을 했고, 그 사이 동생네는 서문역 부근의 번화가에서 염두에 둔 식당을 찾아갔으나 문을 닫았더랬다.  대만도 설 연휴라 문을 연 곳이 별로 없었다.  체크인을 마친 우리는 일단 문 연 곳들 중 괜찮아보이는 집을 찾아다녔고, 번화가 골목 건너 조금 외진 곳에 꽤 괜찮아 보이는 우육탕면집을 발견해 그곳으로 동생네를 불렀다.  그 집엔 한국어 메뉴판도 없었고, 종업원들은 한국어는 커녕 영어도 잘 하지 못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우리는 아침과 마찬가지로 각자가 서툰 영어로 주문과 소통을 해가며 저녁을 해결했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우육탕면집은 설명절과 시즌으로 인해 가능한 메뉴가 많지 않았지만, 우연치고 아주 만족스러운 맛을 선사했다.  저녁 후식은 온 벽면이 한글낙서로 가득 채워진 삼형제 빙수집에서였다.  우리는 일곱사람이 빙수 두 그릇으로 나눠먹을 때, 어느 중국인 가족은 한 사람당 한 그릇씩 먹는 모습을 보고 조카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늦은 시간이라 술 한잔 할 공간도 없었다.  모두가 하루 종일 사람의 물결 안에서 지친 터라 더 이상 어딘가를 찾는 일도 힘들었다.  바로 길건너가 우리가 체크인한 호텔이라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들고 우리 호텔로 들어갔다.  좋은 조건에 디럭스룸을 잡아서 공간이 넓었기 때문이다.  두 가족은 간단하게 맥주 한 캔씩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불을 끄려고 해도 꺼지지 않는 난감한 밤을 맞이했다.  아무리 눌러도 꺼지지 않는 조명에, 직원을 호출했더니 자정을 막 넘긴 시간까지 사다리를 들고 왔다갔다하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결국 실패하고, 우리는 짐을 놔둔 채 다른 방을 배정받아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갑자기 바뀐 공간에 당황스러웠던지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이 든 나 역시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매니저와 면담끝에 우리는 객실료를 환불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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