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여행

민욱아빠 2018. 3. 7. 22:26

  우리 모두는 버스 안 자리를 하나씩 차지해 앉았고, 버스는 곧 출발했다.  가이드가 일어나 간단한 인사를 한 뒤에 꺼낸 첫 마디는 이러했다.

  ‘여러분들은 설날 연휴에 왜 대만까지 와서 이러고 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랬다.  공감하는 말이었다.  안그래도 북적인다는 대만에 구정 설 연휴 엄청난 인파를 감내하며 다니는 나 자신이 딱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설이나 추석 등의 같은 명절을 보내는 나라로는 명절 연휴 여행을 절대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잠을 설친 아내와 나는 아침일찍 그 호텔의 매니저와 면담을 마치고 바로 체크아웃을 한 뒤, 다음 예약한 호텔로 이동했다.  다음 호텔은 타이뻬이 메인 역 바로 옆의 호텔이었고, 이날은 두 가족이 하루 일정의 버스투어를 하기로 예약한 날이었다.  집결지와 버스출발지가 호텔 바로 옆이었다.  우리는 배정된 가이드 확인과 출석 확인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구정 설 명절이 거의 일 주일 정도 된다는 대만에서, 사람들은 5일 정도를 고향에 갔다가 나머지 2일을 집으로 돌아와 가족끼리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이 때에는 도로에 차가 많아서, 오늘 하루의 시간일정이 어떻게 될 지는 도로 상황에 달려있다고 가이드는 거의 경고하듯 말했다. 
 



  제대로 찾고 즐기던 말던, 나는 자유여행을 고집한다.  그것이 내가 직접 경험하며 더 많이 느끼고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가족이 같이 움직이게 되었고, 대만에서의 일정이 의도하지 않게 길어진 점도 있어, 하루 정도는 패키지 투어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예약한 일정이었다.  다녀와서 생각해 본 결과로는 아주 잘 한 선택 중 하나였다.  렌트를 하지 않는 이상 개별여행으로는 찾아가기 힘든 관광지를 알뜰하게 찍어가며 다닐 수 있고, 능숙한 가이드의 요점이 살아있는 설명과 더 이상의 고민이 필요없는 먹거리 쇼핑 포인트 제공에 하루 정도는 머리가 가벼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투어 이름이 ‘예스폭진지’.  예류지질공원, 스펀폭포와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들러보는 여정이었다.  위치는 대만의 북동부 지역이었는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에서 경기도 북동부와 강원도 북부 정도를 돌아보는 일정과 흡사했다.
 



  첫 일정인 예류지질공원까지는 한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역시 가이드의 예고대로 도로는 곳곳에서 정체를 보였고, 예류지질공원에 가까워지면서는 차가 서다 기다 반복했다.  점심시간이 아직 안 된 늦은 오전이었는데, 공원 주차장은 이미 만차에 가까웠고, 멀리서 보기만 해도 사람들은 엄청난 숫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기어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깥은 바다였다.  한 눈에 보아도 해변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아 지질공원이라는 말이 실감나는데, 사람들은 곳곳의 포인트에 서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나라 갯바위 풍경이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흡사한 모습이 참 많은 나라였다. 
 
  버스에서 내려 가이드가 미리 주문한 소금커피를 마시고는 잠시 설명을 들은 뒤 공원 산책을 시작했다.  소금커피는 짭짤하면서 달달한 커피였다.  지질공원은 사암류의 성긴 땅이 바람과 파도에 침식되고, 그에 따라 드러난 바위들이 마치 기둥에 얹혀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엔 둥근 나무화석들이 땅에 박혀 있었다.  사람들은 산책로를 따라 다니기도 했지만, 버섯처럼 솟은 바위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무척 많아서 움직이지 않으면 걸리적 거리는 존재가 될 정도였다.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도 무척 경이로웠지만, 이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무질서하다시피 자연의 풍경 사이로 파고들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모습도 경이로웠다.  마치 대륙의 무질서를 이 작은 섬 한켠에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고보니, 제주에서 성산일출봉을 점령한 듯, 통로와 등산로를 가득채웠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행렬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대만의 성산일출봉 같은 관광지에 와서 그 엄청난 행렬의 일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30여 분을 달려 스펀폭포 앞에서 내렸다.  스펀폭포는 흔들다리를 건너 좀 더 들어가야 보이는 계곡폭포였는데, 역시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의 인내가 필요했다.  흔들다리를 양쪽에서 통제하며 오가게 하고 있었는데, 다리를 통과하는 데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흔들다리를 건너 조금 들어가면 취두부 냄새가 났고, 그것을 지나면 바로 폭포가 보였다.  아, 이게 폭포구나 인증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나와 흔들다리를 건너 약속한 집결장소에 도착, 버스를 타고 스펀으로 이동했다.
 



  하늘에는 수많은 풍등들이 쉴 새 없이 날고 있었다.  스펀 마을의 옆으로 흐르는 계곡 곳곳에는 하늘을 날다 떨어진 풍등의 잔해들이 보였다.  스펀은 풍등으로 유명한 마을이었고, 닭날개 볶음밥도 인기있었다.  실제로 기차가 다닌다는 철로에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들어가 서로의 바램을 적은 풍등을 날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작은 마을이 북적이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그런 북적임 속에 파묻힌 철로가 실제로 기차가 다닌다니,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가이드는 풍등 구입하는 집과 닭날개 볶음밥을 파는 집을 지정해주었고, 우리는 풍등은 포기하고 닭날개 볶음밥 집에 가서 얼른 줄을 서서 인원수대로 구입했다.  간판에는 한쪽에 한글로 ‘닭날개볶음밥’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면 간판에도 써 있을까 싶었던 그 집의 유일한 메뉴는 정말 맛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뜻밖의 수확이다 싶을 정도의 맛이었다.  그것은 이날의 점심이기도 했다.  조금 부족한 우리는 소시지 구이를 사서 먹었고, 매제와 나는 타이완맥주를 한 캔씩 사서 마시며 걸었다.  스펀의 한낮은 무척 더워서, 반팔 이외의 차림이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하늘엔 여전히 여러개의 풍등이 높다랗게 오르고 있었고, 햇볕은 그보다 더 높이 떠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진과스로 향했다.  스펀에서 계곡을 내려오는 데만 한 시간여가 걸릴 정도의 교통체증이 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계속 지도앱을 켜고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며 길을 읽었다.  길을 읽으며 풍경을 보았다.  종종, 산 속으로 사람이 살기엔 무척 작은 집같은 구조물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국공내전으로 대만에 건너온 이들이 나이많은 가족들이 죽자 다시 본토로 돌아가 고향땅에 모실 기대를 가지고 임시로 만든 묘터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대로 묘지가 되었다.  버스는 다시 계곡을 오르며 산 속 마을로 향했다.  해는 거의 져서 어스름이 깔리기 직전이었고, 우리는 2차대전 당시 한 톨의 금까지 알뜰하게 채굴해갔다는 금광마을인 진과스에 도착했다.  진과스와 지우펀은 버스가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인근의 환승터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탄 뒤 들어가야 했다.  진과스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광부도시락이라는 것을 저녁겸 해서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래로는 바다가 보이는 가파른 산중턱 마을의 풍경은 아쉽게도 포기해야만 했고, 우리는 너무 먹을만해서 그시절 광부들은 절대 먹었을 것 같지 않은 도시락을 콜라와 함께 먹었다.  넓직한 돼지갈비살을 양념해서 기름에 튀겨 익혔고, 밥과 반찬이 종이도시락에 한꺼번에 나오는데, 그 안에 김치도 있는 걸 보면 한국사람들을 의식해서 최근에 구성한 음식일 거라는 예측을 해 보았다.  지우펀으로 이동을 하며 해가 완전하게 저물어 어두워진 마을을 멀리서 보니, 가파른 산중턱에 포근하게 얹힌듯 해서 풍경에 정이 갔다.  고난과 가난의 풍경이 이제는 정감과 포근함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겐 한탄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다행이었을 것이다. 
 





  바로 옆 지우펀은 지브리 에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때문에 유명해진 마을이었다.  아홉가구가 모여사는 산골마을에서 집집마다 번갈아가며 산을 내려와 장을 보면, 항상 아홉인의 양을 사간다 해서 붙여진 마을이다.  아홉의 노인이 사는 마을..  지금은 애니메이션때문에 밤낮으로 북적이는 마을이 되었으며, 조그만 시장골목의 가게들은 임대료가 월 천만원을 육박하는 기형적 자본구조로 귀결된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도로 가장자리와 시장골목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 우리도 휩쓸렸다.  들리는 언어도 다양했다.  영어와 한중일 언어가 여기저기서 교차했다.  대만사람들이 살던 작은 마을에, 일본사람이 들렀다가 에니메이션의 모티브로 활용하고, 이에 다시 한중일 사람들이 몰려와 시장을 형성하고 돈을 뿌리는 독특한 변화를 겪은 마을.. 여기서 승자는 에니메이션의 모티브로 활용한 일본인이 아닐까 하는 조금 독특한 생각을 해보았다.  여기서 맛보아야 할 것은 차와 땅콩아이스크림이었다.  우리는 엄청난 인파에 휘말려 시장골목으로 들어섰고, 엄청난 인파에 질려 다시 돌아나왔다.  가이드가 골라준 찻집과 아이스크림 집은 포기하고, 돌아나오며 보이는 땅콩아이스크림 집에서 사들고 나오며 맛을 보았다.  많이 늦은 시각에, 그 작은 골목으로 그 많은 인원을 뚫으며 청소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차 앞에 앞장서며 중국어로 무어라 소리지르며 길을 터는 작업부는 개선장군이었다.
 





  다시 집결지로 모여 야경을 바라보는데, 지우펀 역시 아름다운 곳이었다. 산중턱의 경사진 계곡을 따라 조성된 마을 불빛은 저 아래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불구불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가로등에 비치는 2차선 도로는 어둠을 구획짓고 있었다.  2월이지만 이곳의 밤바람은 서늘하면서 반팔차림에도 견딜만 했다.  갑자기 언덕 위쪽의 한 집에서 폭탄이 터지듯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바글거리는 소리와 구불진 경사로를 오르는 차들과 버스들의 경적소리들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조용히 밤바다를 내려다보는 마을의 풍경과 내 뒤의 시끌벅적함..  그것은 이상하게 어우러지면서 공간 안에서의 나를 의식하게 했다.  이 느낌 그대로, 이 밤을 이곳에서 보내어 봤으면 하는 바램이 솟고 있었다.  한국과 많이 닮은 대만이지만, 산 속 마을의 느낌은 한국보다도 더 정감있고 친근했다.  그 풍경이 이질적이라면 그런 것이었다.
 




  마지막 일정은 지우펀의 유명한 계단포인트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좁고 깊어 밤에 운치있다는 그 계단은 이미 관광객들과 영업장 불빛으로 야단법석이 되었지만, 그래도 가보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곳엔 에니메이션의 모티브가 되었던 아메이차관 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이드는 입을 다물었다.  이미 일정이 계획보다 늦어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찾아야만 했다.  5분의 시간을 준다는 가이드의 말에 나는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를 포기하고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조카들이 아메이차관의 사진을 원했기도 해서였다.  헉헉대며 가파른 계단의 끝까지 달려 올라갔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찍어 올린 그 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별 수 없이 다시 달려 내려오다가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에, 느낌이 뭔가 이상해서 뒤돌아 조금 올라가니 바로 옆이 아메이차관이었다.  그 맞은편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에니메이션에서 보인 시야의 풍경대로 건물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얼른 사진을 찍어, 조카들에게 전송하고 다시 내려갔다.  5분의 시간이 시작된 바로 그 위치에서 올려다보이는 가까운 건물이었다.  조카들은 나에게 위치를 설명듣고는 빨리 다녀오겠다며 올라가더니 나와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이드의 안내로 우리는 대기중인 버스를 향해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중간에는, 가오나시등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캐릭터들을 파는 여러 가게들을 보았고, 창고같은 건물 안에서 노년의 마을 사람들이 노래방 기계를 두었는지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어둠이 완벽해진 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타이뻬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역시, 간간한 정체를 겪으며, 우리는 일정보다 한 시간 이상 늦게 투어를 마쳤다.
 



  호텔 바로 옆에서 내려 우리는 늦은 체크인을 하고, 다시 나와 동생네와 서문역 부근에서 합류했다.  늦은 시간 저녁과 술 한잔 할 곳을 오늘은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오늘이 대만에서의 동생네와 마지막 밤이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새벽 네 시까지 영업한다는 마라훠궈집을 찾아 그곳에서 만나기로 이야기했고,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밤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두 시간동안 인당 비용을 지불하면 무한으로 먹고 마실 수 있다는 마라훠궈집에서 술은 맥주밖에 없어 나는 편의점에 가서 금문고량주 한 병을 사온 뒤 매제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카에게 한 잔 따라주었다.  조카는 학교성적은 괜찮았지만 수능을 잘 보지 못해서 지원한 대학들의 합격여부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 버스투어도중 합격소식을 전달받고 한 숨을 돌리는 중이었다.  조금은 조심스러워 학교관련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대만에서의 같이하는 마지막 날이 축하의 날이 되어 나는 안도와 함께 고생했다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조카들 중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간 아이에게 나는 사실 외삼촌이라는 좀 먼 거리에 있는 사촌이지만, 아이에게 나는 작은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세대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나는 그 녀석이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으면 한다. 

  먹던 도중,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 핸드폰에서 재난문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문자는 한문이라 읽을 수가 없었는데, 조카가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대만 동부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지하 47킬로 아래에서의 지진이라.. 사실 우리는 감지하지 못했다.  문자가 우리를 의식하게 했을 뿐이다.  훠궈 국물은 잘 끓고 있었고, 우리는 기분 좋게 취하고 있었다.  한국이나 대만이나, 익숙한 재난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도 닮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변함없이 왁자하게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그 왁자함 속에서 동행일정을 마무리했다.  자정을 달리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채우고 나와서 가까운 곳의 24시간 영업 까르푸에 가서는 야간 쇼핑을 했다.  그리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타이뻬이의 자정넘긴 밤 풍경 역시, 차가 거의 빠진 서울 광화문 새벽거리를 닮아 있었다.   

트 위 터 * 유 흥 의 탑 *
구정연휴에 대만행을 앞두고 검색하다가 이 글을 봤습니다. 훌륭하신 필력에 감탄합니다. 넘나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구정연휴 대만이 두려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