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일 기

민욱아빠 2019. 12. 28. 10:02

  12월 한 달의 삶은 번아웃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밤이 긴 시기에 여명이 보이는 시간에 출근해서 집에 오면 밤이 완연하다.  집보다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데다, 집에 오면 혼자서 끼니와 살림을 챙기느라 내 시간을 제대로 만들 수 없다.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혼자 있는 넓은 집엔 죽어가는 공간이 생긴다.  날이 추우니 사람이 없는 집엔 냉기가 사람 대신 들어 앉았다.  거실로 옮겨놓은 레몬나무가 걱정이고, 하루 종일 혼자서 집을 보는 라이 녀석이 애처롭다.  빛의 틈새같은 여명에 기대 녀석의 똥을 치워주고, 사료와 물을 채워주는 것도 미안해서, 나는 녀석과 잠시 몇 분의 공놀이를 해 주고 출근을 한다.  병원은 병원대로 바쁘다.  독감과 검진이 연말에 몰려들어 억지로 만들지 않으면 잠깐의 여유도 어렵다.  나에게 연말은 이제 번아웃이다.  낭만이나 분위기는 이제 언감생심인 듯 하다.  어서 연말이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몸이 바쁘니 마음은 좁아져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좁아진 마음을 비집고 열려니 돈이 든다.  소위, ‘시발비용’이라고, 스트레스를 이런저런 인터넷 쇼핑으로 풀고 있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머리 속에서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자꾸 생각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문한 것이 커피포트, 책상용 미니 청소기, 음반 몇 개, 최근 본 영화와 감상평을 쓴 작품의 DVD, 죽도와 검도용품, 그리고 책 몇 권이다.  아, 낚시용 헤드랜턴도 주문했다.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확 풀린 것도 아니다.  일은, 여전히 스트레스를 내 어깨와 머리에 충분히 얹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쌓인 책들을 충분한 속도로 읽어나가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이고, 충분히 글을 쓰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것은 나의 강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스트레스의 요소가 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의 주말은 하루 정도는 집근처 까페에 가서 반나절 앉아 글을 쓴다.  그러자니, 주말의 여흥이 줄고, 손이 가야 할 집안일에 소홀해진다.  라이녀석 산책도 미안할 정도로 자주 못 다니는 중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내 직업을 좋아하고 즐기는가, 나에게 어울리는 일의 강도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는데 적절한 수준인가 하는 고민이 떠오른다.  스트레스가 쌓이니, 나는 내가 서 있는 풍경 안에서 생존과 적응에 적합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숲 속의 카멜레온이 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눈에 띄는 밝은 원색은 몸에 두르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싶어진다.  


  농어 시즌의 막바지에 이르고, 나는 없는 여유를 쪼개어 스트레스도 풀 겸 몇 번 농어낚시를 나갔다.  아무도 없는 바람과 파도가 있는 갯바위는 조금 무서워도 숨이 탁 트이는 어떤 매력이 있다.  초겨울 시즌에는 나는 매해 적어도 한 마리 이상은 농어를 낚자는 나름의 숙제를 안고 산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아직까지 농어를 잡지 못했다.  입질만 여러번 묵직하게 받고는 그걸로 끝이다.  올해는 어복이 거의 바닥을 친다.  연초 선상낚시부터 해서 제대로 잡은 것이 쏨벵이 서너 마리에, 한치 예닐곱 마리가 전부다.  무늬오징어는 얼굴도 보지 못했고, 농어는 보다시피 입질만 주구장창 받으며 지나가는 중이다.  1월 초까지는 시즌이니 더 추워지기 전에 분발하겠지만, 예감이 썩 좋지는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차분하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내 나름의 특기인 글쓰기로 나를 돌아 볼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연말의 혼자는 일이 바쁘니 그런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튼 몸이 조금 분주하긴 해도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연 초까지 이럴 수 있다.  그런데, 점점 혼자있는 시간이 힘들어진다.  몸이 힘든 것인지, 마음이 힘든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조금 맡기고 조금 의지할 만한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아진다.  지난 2년 정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종종 겪은 것이 이제는 충분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혼자라는 것에의 부담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앞으로는 이런 시간이 점점 줄어들 듯 한데, 그 때가 되면 지금 내가 잘 모르는 것을 좀 더 아는 쪽으로 당겨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열기가 식은 듯 하다.  당연한 현상이다.  국가간 정부와 경제부처가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를, 국민감정을 끌어들여 어떻게든 가보자는 식으로 해결하려 한 것 자체가 문제다.  물론 정부가 국민감정의 뒤에 숨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고,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모르지 않는다.  이 정부는, 기반의 취약성을 포퓰리즘에의 의존이라는 상당히 좋지 않은 방식으로 메꾸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보건의료분야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나중에 내 나름의 방식을 말을 할 것이다.  문제는 국민감정의 근원과 행동이다.  식민지 경험에의 상처가 감정의 중심에 새겨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양심과 연결되어 반일불매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국민의 양심이란 무엇인가 의구심을 들게 하는 것이 홍콩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다.  홍콩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뿌리와 연관까지 따지지 않더라도, 홍콩을 탄압하는 중국 공권력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5.18까지도 언급하며 사태를 개탄한다.  중국 공권력의 무자비함과 시진핑의 무모한 국민통제에 분개한다.  그런데, 불매운동과 반중시위는 없다.  누구하나 중국제품을 쓰지 말자던가, 길거리에 중국차 하나 내놓고 깨부수는 퍼포먼스 하나 없다.  양심이 인민과 자유와 민주주의에 있다면, 우리는 당장 반중행동에 나서야 할 거고, 레논 월을 훼손한 중국 유학생들에 자발적 항의와 공정한 제도적 제재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양심은 알량한 상처에나 기반했음을 증명했고, 결과론적으로 반일 불매운동은 나풀거리는 선동에 휘둘린 무의미였을 뿐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애꿎게 피해만 가득 본 일본기업에 종사하는 내국인들은 무슨 죄인가.  자본이 국경을 넘어 계급을 형성하는 시대에 말이다.  


  정신없이 앞에 놓인 당장의 것들을 급하게 메꾸듯 한 달여를 살다가 이제서야 일기라는 글을 쓰고 있는데, 써야겠다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나보다.  아무렇게나 쏟아지는 말과 글들을 정리해서 담기가 어렵다.  그리고, 나는 다시 또 글을 써내려가야 한다.  오랜만에 주어진 쉬는 토요일 아침, 2019년은 이제 3일 남았고, 나는 이틀의 쉼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쉬어야 한다.  사실 해가 바뀐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시간은 그저 같은 속도로 흐르고 내 몸의 노화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을 텐데 말이다.  당장의 농어도 숫자가 바뀐다고 시즌 종료 선언을 하고 먼 바다로 가버리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시한을 숫자로 정해 둔 검진 등의 인간의 일이 나의 앞으로를 예측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외 나를 둘러싼 것들은 여일하게 그렇게 흐를 것이다.  어쩌면 2019년의 마지막일지 모를 이 일기를 읽어주시는 분들, 그래도 숫자가 바뀌는 내년 2020년에는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그리고 내년 검진 대상자들은 제발, 한가한 연초나 전반기에 여유있게 검진 받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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