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일 기

민욱아빠 2020. 1. 31. 07:15

  통계청에 의하면 2019년 12월 한 달 간, 제주 전입 인구는 8627명에 전출 인구 8651명으로 24명이 순유출되었다고 한다.  순유출 현상은 2011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통계만 보아도, 제주는 지난 몇 년간 짐작이 어렵지 않은 무언가가 휘몰아쳤음을 알 수 있다.  


  나는 10년 전 오늘, 순천의 동생네에서, 동생이 차려 준 이른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고흥으로 가서, 5시간의 배를 타고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에 제주항에 입항한다.  오늘이 정확하게 제주 입도 10년이 되는 날이다.  


  여러 번 글에 썼듯이, 나의 제주행은 로망이나 바램같은 것이 아니었다.  병원 수련을 마무리하고, 서울을 일단 벗어나 일 할 병원을 찾는 과정에서 선택된 하나의 장소일 뿐이었다.  그리고, 제주에 내려 온 순간부터 나는 정말 빠르게, 제주를 좋아하게 되었고 제주에 물들며, 제주의 한 조각이 되었다.  을씨년스럽기로 제일인 2월의 제주에, 나는 마음을 놓아버렸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반했던 제주는, 동시에 광풍이 휘몰아치는 제주였다.  내가 입도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제주 이민 광풍이 불었고, 관심은 물욕이 되어 뜨거운 투기의 공간이 되었다.  풍경은 급격하게 변했고, 사람들의 생각과 처지 역시 빠른 속도로 변했다.  나와 주변으로 머물거나 스쳐가는 사람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름의 부지런함만 있으면 무산자도 낭만을 즐길 수 있었던 이 섬은, 똑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최소한 이상의 자본을 가져야만 낭만을 즐겨볼 수 있는 섬으로 변질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물욕과 이기심을 불러오지만, 동시에 합리적 수준을 요구하고 형성한다.  그러나, 너무 급격했던 자본의 광풍은, 위정자와 행정의 무능만을 드러낸 동시에, 과거의 안이함과 도취된 작은 권력에 안주하려하는 게으름만 확인시켰다.  마을 공동체 역시 행정과 다르지 않았다.  급격한 변화 안에서 드러난 것은 수눌음이나 공존같은 공생의 가치가 아니라, 물욕과 이기와 무지의 바닥이었다.  논리는 공생이나 합리보다는 천박한 물욕 위에서 부유했고, 정치력은 그런 논리를 바탕으로 각자의 이익을 위해 부단히 흘렀다.  그런 면에서는 행정과 마을이 다르지 않았다.  


  자본과 물욕과 무지의 광풍, 무능과 이기의 인간시스템 안에서 섬은 지난 10년간,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일주도로 멀리 안쪽에서도 내려다보이던 바다의 풍경은 키를 높인 건물들로 시야가 좁아졌다.  한라산을 바라보며 느끼던 나직한 등고선은 높다란 건물에 가로막히고, 스카이라인은 점점 무너져간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갈등한다.  구럼비의 추억은 군사시설의 콘크리트 더미 아래 묻혔고, 제 2공항의 합리적 필요성은 온데간데 없이 갈등만 커져간다.  곶자왈 자체가 생태계의 보고이지만, 그것을 다 밀어버리고 동물원을 짓겠다는 어느 대기업의 이상한 계획은 자본의 논리로 행정이 받아들이는 중이다.  섬 자체가 그대로 공원이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려고 사람들은 이 섬을 찾건만, 도정은 여기저기 무슨무슨 공원을 짓겠다고 난리이다.  신화는 없는 신화월드의 캐릭터들은 그저 모던할 뿐이고, 시설은 규모에 비해 활용도가 적으며, 시설에서 나오는 하수는 곳곳에서 도로로 넘쳐난다.  이미 이 섬의 하수용량은 그 한계치를 넘은 지 오래라, 청정바다라는 저 바다 속 오수관에서 오수가 넘쳐나고 있다.  꿈일지 악몽일지 모를 도심 한 가운데의 드림타워는, 거칠대로 거친 이 섬의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공사가 마무리 중이다. 


  지난 10년의 시간 안에서, 나는 여전히 제주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나의 삶의 방식에 딱 맞는 환경과 시공간이다.  그러나, 개인의 마음이 가지는 막연함과, 시야에 보이는 현실은 결이 조금 다르고, 전자보다는 후자가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쉬운 법이다.  제주는 분명, 이전의 삶의 방식으로는 점점 살아가기 힘든 섬이 되었고, 이전의 삶을 벗어난 현재의 삶은 자본적 기본요건을 어느 정도 갖추어야만 최소한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삶이다.  그리고, 점점 느껴지는 객관적 환경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입장에서 자본주의적인 삶을 최소한이라도 보장받기 위해서라면 육지로 나가 삶과 자리를 모색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섬의 급격한 변화는, 섬 자체의 자연적 한계마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불안과 불균형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자원이 물이다.  섬 환경에서의 물의 의미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 섬에서 물은 단지 돈벌이의 수단이지, 삶의 기본 안정을 위한 관리대상이 아니다.  인공환경이 늘어나면서, 용천수의 수량과 수질이 변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러나, 도정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물을 더 팔아볼 수 있을까에만 관심이 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 기반이 흔들리면, 어쩔 수 없이 불안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나는 10년의 시간 동안,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삶의 희노애락을 이 섬에서 겪었다.  그 과정은 ‘남들은 이 섬에 여행와서 동경을 품는데, 나는 어째서 동경 안에 살면서 그것을 망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내가 이 섬을 여전히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 희노애락 때문이기도 하다.  통계를 보면 광풍은 지나가고, 이제는 광풍의 후유증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흔들리는 기반을 느끼고 인생의 후반을 위해 현실적 결단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련한 나는 이 섬에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 유난히 일찍 눈을 뜬 이유를 알 수 없어 하다가 글을 적어내려간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도 바깥은 여명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내가 10년 전 이 시간, 이런 어둠 속에서 짐을 잔뜩 실은 차를 몰았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0년의 기념이랄 것은 별로 없다.  해가 뜨면, 나는 어제와 같이 책을 읽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하고, 환자를 진료하고 늦은 밤 퇴근할 것이다.  개인의 10년이란, 변하는 강산 속의 티 하나 나지 않는 작은 시공간적 부속일 뿐이다.  이 순간은 그런 부속의 처지에서 그저 해야 할 일과 생각을 이어나가는 찰나이다.  나의 현실과 이상은, 내가 물들어 간 이 섬 안에서 여전히 부유한다.  제주에서의 10년의 삶의 중간평가는, 나는 그렇게 여전하다는 사실, 딱 그 뿐이다.  

하루를 살 뿐입니다.
오늘, 의식하는 존재로 얼마나 사랑을, 의미를 의식하였던가? 나는 참 존재인가? 사랑인가?를
물으며 잠들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