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책

민욱아빠 2020. 2. 18. 10:50

 

남원을 중심으로, 시선은 입체적이면서 언제나 낮은 고도를 유지한다.  이번엔 한물장군과 아내 수련의 이야기이다.  한물장군의 출생내력이 정유재란 남원성의 전투와 명나라 장수 이신방의 이야기 속에 얽혀 하나의 이야기로 뻗어나온다.  한 여인의 연정이 끝내 결실을 맺고, 아프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을 흘린다.  결실은 수련이 되어 한물의 옆에서 다시 결실을 맺고 장렬하게 시든다.  얽혀있지만 성가심이 아닌 포근함이고, 비극이지만 평범하되 아름답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낮게 흐른다.  전쟁은 갑옷을 두른 장수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호미와 쟁기질을 하고 산과 들을 다니던 민중들이 치루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이 아닌, 그저 삶과 터전에 대한 사랑이 그들을 나서게 했음을 이야기한다.  전쟁과 긴장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교류했고, 제도와 관습의 벽을 두고도 저항의 움직임은 그 위를 넘나들었다.  감정의 끝에 아픔은 짙고 깊게 남았다.  저항의 끝은 실패와 희생이었다.  그럼에도, 무언가는 남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의미와 모습들을 이어간다.  모든 것을 넘어선 보편의 인간사, 민중의 삶 그 자체이다.  


  저자는 이야기의 의도를 미리 건네어 준다.  민중의 보편의 삶이 가지는 무게,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시공간을 넘어선 고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는 본문을 통해 이야기한다.  ‘백성은 하늘이지만, 백성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선언같은 이 한 마디 안에 저자가 의도한 비극은 분명히 드러난다.  희망은 분명 우리에게 있지만, 우리는 쉽게 세상의 축을 부러뜨리지 못한다는, 시공간을 넘어서는 현실의 진실을 아프게 드러낸다.  그리고, 소설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얽힌 실타래의 이야기들이 실 하나하나를 타다 결국엔 하나로 모여 비극이라는 아픈 결말에 다다른다.  


  현실은 증명한다.  백성은 하늘이지만, 백성을 하늘같이 받든 권력은 없었다.  백성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도 증명되고 있다.  저자의 의도에 비추어 보면, 남원성 사람들은 실 한오라기조차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을 제 목숨을 내주면서 지키고 만들려 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목숨까지 내놓을 일은 없이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저마다의 해법으로 스스로 분열하고 싸운다.  이야기의 깊이와 감동을 넘어, 글쓴이가 소설 안에서 드러낸 어떤 바람은, 현재 안에서 어떻게 스며들고 있을까?  시리즈로 구성되어가는 이야기의 직조가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를 탄탄하게 뭉쳐낸다.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와 닿는 문체와 내용이 쉽게 빠져들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어렵지 않게 이입된다.  닳지 않고, 꾸준하게 거친 길을 구르는 바퀴와도 같다.  그러나, 첫 장의 작가의 말은, 남원성을 읽어 온 한 독자로 하여금 군더더기같은 고민을 턱, 어깨에 짐지운다.  그래서, 계속 나올 거라는 남원성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