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책

민욱아빠 2020. 3. 5. 10:38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있다.  어째서 아플까, 무슨 이유로 환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불편해하는 증상을 이야기할까.  치료는 감염증과 같이 원인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가 가능한 영역이 있고, 감기나 기다리면 사라지는 가벼운 통증처럼 단순히 대증적으로 접근하는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말끔하게 치료가 된다면 치료자 입장에서는 기쁘고 다행인 일이지만, 일차 의료 현장에서 대부분의 환자는 같거나 비슷한 증상으로 매번 진료실을 찾아온다.  여러모로 답답해진다.


  일차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마주하다보면 좀 더 크게 깨닫는 점이 있다.  환자를 마주한다는 것은 하나의 삶 전체 또는 얼마 간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의학적 지식만으로 환자를 진료해서는 잘 알 수 없었던 불편의 이유가, 환자가 들려주는 삶의 일부분을 듣고 나면 암막 커튼을 걷어내듯 명확해진다.  손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부스럼의 이유는 세멘트를 계속 다루어야 하는 환자의 현실에 있었다.  손목이 아프고 기침이 멎지 않는 이유는 식당 주방의 습기와 끊이지 않는 주방일 때문이었다.  조절되지 않는 당뇨와 혈압임에도 보름 이상 늦게 병원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밤 늦게 마무리되는 현장일 때문이었다.  밭에서 쉴 새 없이 귤을 따야 하는 사람들은 허리와 어깨 무릎 등이 아팠고, 직업상 하루 만 보 이상 걸어야 하는 누군가는 무릎과 발목이 아팠다.  


  본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한 환자를 마주한 의사가 메탄올 중독을 떠올리고 바로 산업의학과 의사에게 연락한다.  의학적 지식을 넘어서, 환자의 삶이 자리한 환경에 대한 어떤 감각이 메탄올에 의심을 품게 했을 것이다.  반면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 군은 증상을 가지고 고민만 이어가다 뒤늦게 그것이 수은중독에 의한 증상임을 알 수 있었다.  의학적 지식만으로는 진찰과 검사 등의 시간이 걸리는 단계적 절차를 통해 밝혀낼 수 있는 증상의 원인을, 마주한 의사가 겸비한 관심과 감각을 통해 좀 더 빠르게 의심하고 밝혀낼 수 있다.  이 책은 그 감각을 하나의 질문으로 정리한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산업의학 측면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의료적 현실을 경험과 분석으로 설명한 책이지만, 일차 의료현장의 의사인 나는 좀 더 단순한 수준에서 진료의 감각을 단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어봤던 추가적인 질문들, 그것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증상을 이해하는 커다란 단서가 될 수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무리하게 쓸 수 밖에 없는 몸이 내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하면 신호를 경감시킬 수 있는가만 생각할 것이 아닌, 어째서 무리하게 몸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무리하게 몸을 쓸 수 밖에 없는 삶과 사회의 현실을 알아가는 것.  결국 사람이 아픈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굳이 거창하게 산업의학적 측면까지 바라보지 않더라도, 당장의 내 주변의 현실 안에서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는 진실이다.  


  이 책이 읽히는 이유는 산업현장에서 밝혀진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고, 환자의 상태도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결되거나 해결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현실의 보이지 않는 책은 잘 읽히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보여도 해결될 기미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사소한 문제들이나 현실들은, 그것보다 좀 더 커다란 그것들에 의해 가려져서 보이지도 해결되지도 않는다.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요리를 해야 하는 주방장의 팔꿈치는 잠시 나아지다 다시 아프기를 반복하고, 70이 가깝도록 반복되는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할머니는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남편의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우울증을 안고 병원을 나선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의사로서 필요한 폭넓은 감각에 대한 성찰을 했지만, 내 진료실을 오가는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속 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사회는 부작용처럼 아픔을 생산하고, 나는 끊임없이 생산되는 아픔의 포말을 잠재우려 허우적댈 뿐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서 조금 우울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