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텃밭일기

민욱아빠 2020. 3. 17. 10:10

  천천히 조금씩, 텃밭의 잡초를 거두어 냈다.  괭이밥의 성긴 뿌리와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수북한 잡초들을 거두는 일은, 마치 땅을 한꺼풀 벗겨내는 듯한 작업이다.  그래서, 날이 가는 호미는 땅을 수직으로 파고들지 않고, 약간의 각도를 둔 채 옆으로 파고든다.  성긴 뿌리들이 흙을 거머쥐고 걷히면, 흙을 살살 털어낸다.  겨우내 물을 머금고 버틴 뿌리털들이 앙상해진다.  하루에 한 이랑이나 두 이랑씩 이렇게 작업을 해 나갔다.  텃밭의 땅이 온전히 드러나고, 거둬낸 잡초덤불들을 가장자리에 모아 말렸다.  이런저런 일들과 겹쳐 대략 2주 정도 시간이 걸렸다.


  아직은 쌀쌀했던 지난 일요일 오전, 나는 삽을 들고 다시 텃밭으로 들어갔다.  땅을 뒤집어야 했다.  유기질 비료는 한 포대 분량을 전날 미리 골고루 뿌려두었다.  텃밭을 옮겨다니며 가꾸던 때에는 잘 몰랐는데, 한 자리에서 텃밭을 하려니 땅 관리가 중요했다.  양분을 주고 바람을 통하게 하고 땅을 숙성시키는 일은 땅심을 회복하게 한다.  게다가 기르는 작물의 자리를 해마다 바꾸어서 연작의 피해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작년에는 귀찮아서 생략했던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고추와 가지가 볼품없었고 고구마도 크기와 수량이 많이 줄었었다.  봄을 맞은 텃밭은 끊임없이 나의 노동을 요구했다.  작년같이 아쉬움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서 움직이라고 텃밭은 내게 경고했다.  


  구석 가장자리부터 삽을 발로 꽂아 날을 집어넣고 흙을 파서 뒤집었다.  가지런하게 천천히 움직이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삽질에 남은 잡초들과 잔뿌리들이 뒤집혀 나왔고, 말지렁이들과 굼벵이들이 끌려나왔다. 잡초들이 다시 관리되는 일은 반가웠지만, 아직 땅 속이어야 할 생명들이 난리를 겪어야 하는 상황은 좀 미안했다.  그러나, 별 수 없는 일이다.  지렁이는 다시 흙을 파들어갈 것이고, 굼벵이는 텃밭관리 차원에서 보면 천적이나 다름없다.  알아서 다시 흙 속으로 들어가거나, 집주변을 돌아다니는 새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겠거니, 애써 관심을 지운다. 


  뒤집힌 흙이 물을 머금고 자아내는 짙은 색과, 그 사이에 뒤섞인 잔뿌리들과 꿈틀거리는 것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신성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인간은 땅 위에 발을 딛고 서서 살아가며, 땅의 자연함과 이어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땅 외의 모든 자연함 속에 인간은 존재한다.  거의 모든 것을 자본의 가치로 평가하여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자연함과의 이어진 연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문명이라는 인간의 거대한 틀 안에서 느끼는 불안은 인위를 바라보는 신앙으로 해결하려 한다.  인간의 근원은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땅에 있고, 나의 노동으로 뒤집어 놓은 땅의 역동이, 인간이 느껴야 할 신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자연함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존재이고, 인간을 어쩔 수 없게 하는 힘은 신성 그 자체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의 바이러스 앞에서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중이다.  


  삽으로 열심히 땅을 뒤집고 있으니, 집 옆 공터의 땅주인 아주머니가 오셨다.  올해는 뭘 심으려냐고 던지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기는 땅을 놀게 할 수는 없어서 뭐라도 심어두려고 포크레인을 불렀단다.  150평이 조금 안 되는 땅을 잠깐 작업하는데 10만원이란다.  땅의 신성함을 느끼다가 어쩔 수 없이 내 노동력을 계산해보았다.  대략 1-2만원 쯤 되어 보였다.  게다가 나는 맨손으로도 반나절 걸릴 작업을 천천히 하고 있으니, 내 노동가치는 몇천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야기는 부동산으로 이어졌다.  아주머니는 뭘 지을 생각은 없고, 땅을 팔려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팔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신성함 따위는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  집 지을 때 주택 말고 4층 원룸으로 지어서 임대를 했어야 하나 하는 작은 후회가 밀려왔다.  판다는 옆 땅을 우리가 사서 부수익을 위한 뭔가를 해 볼까 하는 불가능한 상상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싸늘한 일요일 낮에 바람은 세찼고, 땅을 뒤집기 전에 땅을 대충 거둔 아주머니는 내 신성과 경건을 깨부순 댓가로 겨우내 자란 무 열 뿌리를 건네셨다.  


  지난 주중에 3년생 모과나무와 유칼립투스, 멕시칸부시 세이지를 구입했다.  데이지는 여섯뿌리 서비스로 받았다.  그늘이 덜 지는 자리에 모과나무를 심었고, 집 입구 허브공간에 유칼립투스와 세이지를 심었다.  현관 앞 모서리에는 데이지를 일렬로 심었다.  유기질 비료 두 포대를 같이 사서, 하나는 텃밭에 뿌렸고 하나는 나무들에 넉넉히 나누어 주었다.  봄 준비는 척척 해 나가는 중인데, 날은 청명해도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다.  앵두와 살구, 자두꽃이 피었고, 감나무와 포도나무, 사과나무에서는 순이 굵어지고 있다.  이번 주는 남은 텃밭을 마저 천천히 뒤집을 생각이다.  그러면 잠시의 여유가 생기는데, 그 땐 집 주변과 마당의 잡초를 거두어야 한다.  일이 끊이지 않는 시기이다.  이 분주함, 조금은 피곤하면서도 바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