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일 기

민욱아빠 2020. 4. 3. 10:19

  나는 생각이 많다.  너무 많아서 판단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다.  생각을 줄이면 어떤 방향이든 결과가 명쾌해 질 것이라고 나조차도 생각할 정도다.  그럼에도 생각이 많음을 쉽게 고치지 못한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판단의 주저함, 모든 것이 너무 많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검도관이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어깨를 비롯해 몸에서 힘을 빼라고 한다.  검도나 배틀로프 같은 경우 어깨에서 힘을 뺄 수록 동작이 자연스럽고 원할해지며, 부상의 위험도 줄어든다.  운동 자체는 그런 조언을 따라 익숙해지고 있다.  그리고, 운동을 통해 나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그러나, 머릿 속 생각은 쉽게 덜어지지 않는다.  머리에서 힘을 빼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것이 진료를 보는 때에도, 일상에도 영향을 끼친다. 


  내 머리속과는 달리 일상은 아주 단순하게 흐르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도 없이 하루하루가 거의 같은 일의 반복이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의 반복은 실은 단순하지 않은 속내를 품는다.  코로나19로 인한 긴장과 불안이, 변화없는 꾸준한 일상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은 가까운 앞날을 예상할 수 없어 숨 죽이며 한발씩 걸어갈 뿐이고, 일상은 정부의 방역지침을 의식한 심리로 움직임이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한 반복만으로 그나마의 일상과 직업활동이 유지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것이 불안으로 축소되어 답답한 마음이 크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원래 인간의 활동반경은 넓지 않았다는 것, 사회적 범위의 개념으로서 로컬(local)은 인간의 생활반경에도 적용되어 협소라기보다는 적절한 한정(proper limitation)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단순하게 흐르는 삶의 시간 점점이 박힌 순간에는 생각이 무겁게 넘친다.  삶의 스탠스와 직업적 판단들이 생각과 맞물려 무겁지는 않은 갈등과 충돌을 자아낸다.  그것이 현실을 살아야 하는 나를 가르치고 조금씩 변하게 만든다.  좋게 말해 순응하는 삶을 배운다.  여전히 생각은 넘쳐서, 나는 잘 하고 있는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등등의 생각을 분명치 않은 판단의 기반 위에서 부유하듯 흔들리듯 고민한다.  어쩌면, 시대의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성정의 어쩔 수 없는 고난인지 모른다.  생각이 필요 이상으로 넘치는 일은, 내 성정의 문제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 피치 못할 과정이자, 스스로 만들어 낸 적응의 방식일 것이다.


  생각이 넘쳐나는 와중에 음력 3월이 진즉에 시작되었음도 깨닫지 못했다.  어느날 주차장 처마를 보니 제비들이 와 있길래 올해는 좀 빠르네 무심히 지나쳤다.  모종심어야 한다는 어느 형님의 스친 말에 달력을 보니 음력 3월이 시작 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올해 음력 설도 빨랐었다.  느긋하게 생각했던 텃밭일에 갑자기 조바심이 붙었다.  주말에는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다음 주 중에는 모종을 사다 심고 지주대를 세워줘야 한다.  마당일이 거의 마무리되어 좀 쉬자 싶었는데, 일은 나를 쉬지 못하게 종용한다.  


  4.3 이다.  이 섬에 들어와 10번 째 맞는 4.3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좀 무심하다.  4.3을 제쳐두는 것은 아니다.  다들 이 맘때면 4.3을 이야기하고 꺼내들지만, 꺼내든 것은 부식되기 시작한 화석임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4.3은 강렬한 기억과 경험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데, 다들 박제되고 부식되어가는 화석만을 이야기한다.  4.3의 현재는 말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한다.  이 점에서도 내가 힘을 빼야하는가 싶지만, 사실 힘은 진즉부터 빠졌다.  4.3을 아무렇게나 말하는 모습들에서 약간의 자조와 그보다 좀 더 많은 혐오를 품는다.  그렇다고, 70년 넘은 세월의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을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삶의 충실함에 뒤켠으로 던져저 박제되고 부식된 화석이 된 4.3, 그 딜레마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는 못한다.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또다른 딜레마..  삶은 이래서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못하다.  내 머리 속에서 생각이 넘치는 이유를 염치불구하고 이런 딜레마에 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