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텃밭일기

민욱아빠 2020. 4. 5. 11:14

  병원을 방문한 지인이 진료를 마치고 이제 집에 가서 모종을 심어야 한다고 했다.  내일 새벽에 비가 온다고 했다.  벌써 모종을 심어도 되나? 싶어 달력을 보니, 아뿔싸! 음력 3월이 시작 된 지 일주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막 양력 4월인데 벌써 음력 3월이라고?  생각해보니 올해 구정 설이 빨랐다.  며칠 전부터 주차장 처마 아래로 제비들이 오가고 있었다.  올해는 얘들이 좀 빨리 오는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조금 이른 마당과 풍경의 변화들을, 그저 춥지 않았던 겨울 이후 온도가 빨리 올라가서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계절과 풍경의 변화에 무심했던 것이다.  


  텃밭의 흙을 전부 뒤집고, 나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집 주변을 쪼그려 앉아 돌아다녔다.  하루는 집 북쪽 구석진 통로, 하루는 주차장 주변 가장자리로 잡초들을 정리하는 식이었다.  오전의 공기는 쌀쌀했지만, 햇살은 청명했고 불어오는 바람에는 분명 봄이 스며들어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통로 가장자리의 잡초들을 정리하고 뒤뜰과 마당을 살폈다.  남쪽의 경계를 이룬 로즈마리 덤불들을 높이는 놔 둔채, 옆의 통로를 확보하는 정도로만 전정했다.  곳곳에 보이는 사마귀 알들은 아직 깨지 않았지만, 겨울잠에서 깬 메뚜기 두어 마리가 로즈마리 줄기 위에서 햇볕을 받고 있었다.  몸이 분주하고 살짝 고단해서였을까?  어째서 나는 절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까?  풍경은 절기의 변화에 때 맞춰 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봄은 이미 완연해 있었다.


  그렇게 집 주변을 정리하고 이제 잠깐 쉬어도 되겠지 하는 찰나에, 음력 3월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텃밭에 다시 발을 들이기 전, 한 주 정도는 쉬어야겠다 생각했었다.  자연의 일은, 절기를 놓치면 결과가 좋지 않다.  몸이 변화를 서둘러 따라가야 하는 것이 텃밭 일이다.  이미 조금 늦었는지도 모른다.  주말 진료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나는 장화를 신고 삽을 들고 텃밭에 들어섰다.  잠시 서서, 이제까지 머리속으로 생각해 왔던 올해 작물의 배치를 다시 정리했다.  옆집 그늘에 가려지지만, 그늘은 점점 작아질테니까 남쪽 끝단 부분에는 토마토와 오이를 심을 것이다.  그 옆으로는 넓게 덩굴작물들을 심을 것이다.  물외, 애호박, 늙은호박, 참외, 수박 등을 생각하고 있다.  올해 고구마는 북쪽 가장자리로 배치를 달리해서 조금 작게 심을 예정이다.  나머지 자리에는 고추, 가지, 콩류, 바질을 심을 것이다.  바질은 지금, 포트에서 싹이 나오는 중이다.  


  땅에 삽날을 박았다.  그리고 이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작물들의 배치를 염두에 두고 한 삽 한 삽 흙을 퍼서 옆으로 쌓았다.  올해 이랑은 디자인 면에서도 독특했다.  일자로 늘어선 이랑의 모습이야 별다를 건 없지만, 덩굴작물들을 좀 더 심어보자는 욕심에 네모난 이랑을 만들었다.  흙을 조금 두텁게 올린 네모진 이랑을 가운데 움푹 패어 만들었다.  간격을 넉넉히 두어 네 모서리에 작물을 심고, 도장에서 죽도살을 얻어다가 작은 지주대를 세울 생각이다.  고구마 자리는 흙이 조금 많아야 할 듯 해서, 자리를 고려해보니 텃밭 경계를 따라 곡선으로 만들어졌다.  그 안쪽으로 고추나 가지가 심어질 이랑이 종횡으로 교차하는 모양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 나는 거의 세 시간 동안, 삽 하나로 이랑의 모양을 만들었다.  이랑을 만드느라 흙을 뒤집으니, 지렁이와 굼벵이와 장수지네 들이 수없이 나왔다.  작업을 마치고 텃밭에서 나오니 뒤이어 지나가던 새들이 텃밭으로 몰려들었다.  숨어있던 먹을 것들이 눈에 수없이 보이니 새들에겐 나름 잔치였던 것이다.  


  다음주 중에는 모종을 사다가 하나하나 심을 것이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는 지주대도 같이 세워 미리 묶어주는 것이 좋다.  이제껏 마당일을 하던 대로 조금씩 천천히 심어가다 보면, 좀 더 날이 더워져야 심을 수 있는 접붙인 수박이나 참외까지 느긋하게 이어질 것이다.  옮겨심은 뒤 잘 적응하려나 노심초사했던 사과나무 줄기에서 순이 나오고 있었다.  바람골에 옮겨심은 올리브나무는 이파리가 전부 말라 떨어졌다.  뿌리가 적응하느라 힘든건가 싶어 일단 놔두고 있다.  감나무와 포도덩굴에는 이파리가 무서운 속도로 올라왔다.  살구와 앵두꽃은 떨어진 지 오래 되었다.  마당 구석의 두릅에서 순이 열심히 올라왔다.  따보니 양이 넉넉해서, 서울의 어르신들에게 보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