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일 기

민욱아빠 2020. 4. 10. 09:59

  한 달 반 가까이 연기된 아이의 개학은, 가족 모두를 고민과 고난의 시간에 빠뜨렸다.  그것은 아들녀석을 좀 더 곁에 두고자 했던 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펼쳐진 현상이었다.  그리고 현실이었다.  예상하긴 했던 과정이지만, 바람과 반대로 느껴야 하는 이 아이러니를 나는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이제 중학생이며 사춘기의 논리없는 반항을 시작한 아들녀석과의 시간은 엉킨 실타래와 뿌옇게 피어오른 먹먹한 먼지 속 암담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도 이어진다.  이제 4일 정도면 개학이지만, 온라인 개학이라고 하니 그 이후의 상황은 어찌 될 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코로나19는 미증유의 상황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었다.  나와 우리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다.  공간을 집안, 가족으로 한정하자면, 크고 작은 전쟁은 집집마다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 중 하나, 적당한 규모로, 우리 집에서도 전쟁은 진행중이다.  부모가 보기에, 아들녀석의 일상은 좋을대로 망가지고 있었다.  속으로 넉살좋게, ‘그런 시간도 즐겨볼 필요는 있지.’라고 담담해 하면서도, 하루 14시간의 수면과 게임과 인터넷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녀석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은 괴로움과 답답함 그 자체였다.  그것은 부모의 막연한 불안과 기대에서 시작되는 감정이지만, 우리 집을 비롯한 집집마다의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었다. 


  자기 키를 넘어선 덩치 좋은 아들녀석을 아내는 버거워했다.  무표정을 유지하되 넉살좋은 속으로 일관하던 나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나는 일찍 퇴근한 어느 토요일 오후, 마스크를 쓰고 시내 서점으로 달려가 국제학교 다니느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초등학교 6학년 수학, 과학 참고서와 영문법 참고서를 구입했다.  읽을 만한 책도 두어 권 구입했다.  총 2주간의 속성 학습일정을 짜 주었다.  수학, 과학, 영어 하루에 한 단원씩 풀어낼 것.  엄마가 채점을 하고 틀린 문제는 오답노트를 작성할 것.  되도록 아빠가 퇴근하는 밤 10시 경에는 마무리할 것. 그리고 아빠에게 간단한 테스트를 받을 것.  그 때만 해도 3월 초반이라 개학이 2주 후로 예정되어 있었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 예비학습이기도 했지만, 아들녀석을 조금 극한으로 몰아붙여 보고자 내 주었던 숙제들이었다.  때마침 EBS에서 오전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아들녀석은 하루종일도 버거운 공부폭탄을 맞은 것이었다.  


  나는 아이가 어릴 적부터 체벌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하지만, 꽃으로라도 때리지 않으면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가 뒷목잡고 쓰러질 일이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수시로 매를 든 것은 아니었다.  매를 든 일은 딱 한 번 있었다.  아이가 네 살 때,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몇 번을 타이르다가 한 번은 유리로 된 반찬통을 집어던지기에, 그자리에서 바로 볼기짝을 때렸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몇 번의 회초리질과 함께 벌을 세웠다.  그 이후로 녀석은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위를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나서 물건을 집어들다가도 흠칫 하면서 멈추었다.  아이를 말로 타이르는 건, 끈질긴 인내를 겸비한 선함 그 자체의 도덕군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후로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일은 없었고, 다행히 아이는 아빠라는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조심했다. 


  선생을 하는 친구는 나에게 그랬다.  아이를 이해하려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나도 공감하고 그렇게 행동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녀석은 자주 짜증을 내고 엉성한 논리로 불만을 자주 표시했다.  때로는 말 그대로 지랄을 했다.  내가 내 준 공부폭탄에도 그런 반응을 보였다.  나는 주로 잠자코 있다가, 일정 선을 넘는 모습을 보이면, 녀석을 똑바로 마주보고 같이 지랄을 했다.  논리로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말도 안되는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먼저 감정을 드러내기에 논쟁은 쓸데없는 소모로만 끝나기 때문이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녀석은, 자신과 똑같이 눈 앞에서 지랄하는 아빠의 모습에 굴복했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잠자코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 많은 공부를 주어진 시간에 다 하기란 불가능했다.  알고 있었지만 몰아붙여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는 줄곧 짜증을 내면서도 착실하게 주어진 것들을 해 나갔다.  나는 옆에서 지랄만 한 것이 아니었다.  퇴근해서 아직도 아이가 숙제 중에 있으면, 씻고 옆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녀석이 마무리를 할 때까지 조용히 책을 읽었다.  하루의 분량을 채우든 채우지 못했든, 합의된 마무리 후에 우리는 다 같이 각자의 침실로 향했다.  녀석이나 엄마나 아빠나, 모두 고행의 시간이었다.  


  녀석은 착실하게 주어진 것들을 해 나갔다.  밀리면 자유시간이 주어진 주말에 마무리했다.  단 한 번, 주어진 분량을 제쳐두고 게임을 하다 지적당해 4일간 핸드폰 사용을 금지당했다.  이 역시, 아빠의 무서움과 지랄에의 두려움에 몇마디 궁시렁으로 별 수 없이 수긍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2주 간의 개학 연장이 발표되었다.  나는 또다시 2주간의 일정표를 짜 주었고, 지난 2주 보다는 많이 가벼워진 숙제에 녀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현재 녀석은, 학습지 뒤에 붙은 학습성취도 평가지를 풀고, 아빠가 정해 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며, 오전에는 여전히 EBS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그리고, 하루 20여 자 씩 중학교 한자를 외우는 중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유롭고 행복하게 키우겠다는 나의 다짐은 봉우리 부분이 20% 정도 꺾였다.  초등학생과 사춘기 즈음의 아이들에게 부여한 자유와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시대가 자아낸 그 시기 아이들의 현실적 풍경에 대한 불안과 자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운동을 시키고 자유롭게 돌아다녀 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다가오는 인생의 시기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하겠다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코로나19의 시대이다.  약간의 강압없이는,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가끔씩 부리는 지랄없이는 적절한 통제가 불가능함을 절절히 깨닫는 시간이다.  안팎으로 바라는 건, 코로나19의 사태가 어서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녀석이 학교에 다니게 된다면, 가족의 평화와 심신의 안정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코로나19 시대에도 일상은 이어지고, 나에게는 직업적 활동과 계절적 숙제가 여전히 주어진다.  그리고, 집안의 작은 전쟁을 감당해야 한다.  전염병의 두려움보다도 일상에 더해진 피로감이 더 버겁다.  이런 감정이 옳은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문명의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한 인간의 현실은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