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텃밭일기

민욱아빠 2020. 4. 28. 10:08

  날씨는 다시 추워졌다.  예년보다 더 추웠다는 이틀간의 날씨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맘을 졸이는 것 밖에 없었다.  모종을 심고 나면, 인간은 마음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거의 대부분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  하늘은 인간의 마음이 그러거나 말거나, 봄날의 변덕이라는 모습으로 무심하게 마당을 훑고 지나갔다.  변덕스러운 추위가 지나간 다음에나 인간이 할 일이 조금 생길 것이다.  약간의 위로가 존재한다면, 그건 10여년을 넘게 텃밭을 운영한 경험에서 비롯된 작은 체념 정도였다.


  모종을 심을 때만 해도, 이제 기온이 떨어지는 변덕은 없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모종을 심고 하루가 지나자, 변덕스러운 날씨가 한 차례 더 올 것이라고 예보는 말했다.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주 추워지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를 품었다.  변덕은 작은 기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더 추워졌다.  추위가 지나가고, 모종들은 견뎌내느라 고생한 모습이 역력했다.  고추모종들은 색이 창백해졌고, 물외와 호박은 냉해를 입었고 그 중 몇 주는 말라버렸다.  가지 역시 줄기에 물을 품지 못하고 색이 바랬다.  가장 심각하게 피해를 입은 것은 오이였다.  사실 오이는 좀 더 날이 더워지면 심는 것이 안전한데, 욕심을 내서 심다 보니 피해를 자초한 면이 있다.  오이 대부분의 이파리 가장자리가 누렇게 마르는 냉해를 입었고, 서너 주가 시들거나 말라 죽었다.  


  텃밭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종 심는 시기를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멀칭이나 비닐을 씌워주지 않는 한, 텃밭은 자연의 정황이나 절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마당에 텃밭을 만들어놓고 모종을 언제 심어야 하나 고민할 때, 집 옆 공터에 들어가 조용히 몸으로 농사를 가르쳐 준 앞집 할머니는 ‘음력 3월 1일이 지나면 괜찮다’는 조언을 주셨다.  절기가 빠르지 않는 한, 책에서 본 한반도 남부의 모종심는 시기와도 거의 일치해서, 나는 그 가르침을 매년 실천했다.  그러나, 봄날의 변덕은 그것이 꼭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올해는 그 사실의 정점이었다.  추워져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지나가던 변덕은 올해 유독 어렵게 지나는 기분이다.  변덕은 참 심술맞기도 해서, 이틀의 추위가 지나가더니 다음날엔 덥고 건조한 바람이 휘몰았다.  종잡을 수 없는 그 변화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인데, SNS의 어느 분은 5월이 시작되면 모종을 심는 것이 변덕스러운 봄날씨를 피하는 데도 유리하고, 어차피 더워야 자라는 모종들이니 시기가 그리 늦지 않다는 조언을 주었다.  납득할 만한 의견이었다.  물만 잘 준다면, 냉해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때이니 말이다.   


  사실 이런 혼란은 단지 변덕스러운 봄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 의존하는 일은 시기를 가늠함에 있어 적절한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약간의 느긋함도 필요하다.  나는 모종 심는 시기에 있어 조금 서두르는 면이 있었다.  그리고, 파종을 하고 모종을 심는 일도 씨앗과 모종의 종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고 한꺼번에 심는 경향이 있었다.  모종들이 냉해를 입는 건, 사실 나의 조바심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게다가 절기가 빠른 올해는, 나는 시기를 판단함에 있어 약간의 혼란을 겪었고, 그래서 좀 더 조바심이 생겼었다.  모든 것은 모종이 냉해를 입고 뒤이어 열풍에 가까운 바람이 모종을 말려버린 뒤에서야 깨달았다.  해마다 하는 작업이건만, 반복되는 경험에도 나는 아둔함을 버리지 못한다. 


  예보를 보니, 5월이 시작되는 이번 주에는 기온이 점점 오를 거라 한다.  시들고 죽어버린 물외 호박 오이모종을 다시 사다가 심을 예정이다.  모종을 다시 심는다는 건, 애써 들인 생명을 무심히 버리고 교체한다는 생각때문에 마음이 조금 걸리는 일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일에도 이렇게 마음을 쓰면서, 나는 어째서 매번 조심스럽지 못한지 다시 한 번 나의 아둔함을 깨닫는다.  점점 오르는 기온을 예상하며, 나는 참외와 수박 모종도 심을 예정이다.  이제는 정말 냉해는 있어서는 안되고, 기온은 쭉쭉 올라주기만을 기도해야 한다.  옮겨심은 올리브나무는 이파리가 다 떨어진 채 가지만 남았지만, 같이 옮겨심은 사과나무에는 꽃이 피었다.  옆집 땅주인 아주머니가 나보다 조금 늦게 고추모종을 심었다.  갈아엎은 공터 한 쪽에 심겨진 고추모종을 보니, 조금 이르게 심은 내 텃밭 풍경에 안도가 놓인다.  고사리철이라 우리 가족은 쉬는 날 산책삼아 고사리를 꺾으러 다녔다.  한낮에 꺾는 고사리는 얼마 안 되지만, 고사리 덕에 평소에는 생각지 못한 숨겨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고 있다.  그 풍경 안에서 가장 신이 난 건, 간만에 목줄이 풀려 뛰어노는 반려견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