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일 기

민욱아빠 2020. 5. 2. 16:09

  한 주가 지나갔다.  여느 한 주나 다름없이 비슷한 속도로 흘러갔지만, 숨통이 트이는 한 주였다.  이틀의 연휴, 남들은 황금연휴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나는 빨간날과 노동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도 이틀의 연휴가 어딘가!  나는 정말 이틀의 시간과 앞뒤로 붙은 자투리같은 몇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노력했다.  연휴 전날 퇴근한 밤에는 가족들과 야식을 즐겼다.  연휴의 첫날에는 아내와 함께 미니어처를 완성했고, 오후에는 마당에 그릴을 준비하여 지인들을 불렀다.  바람만 없었다면, 한 낮의 햇살을 부담없이 즐기기 정말 좋은 시즌이다.  그 기회를 최대한 즐기고 싶었다.  그릴에 양념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넣고, 천천히 맥주를 즐기고 라디오를 들으며 의자에 앉아 한낮의 여유를 즐겼다.  이튿날에는 느지막히 일어나 전날의 흔적들을 정리하고 텃밭에 물을 주었다.  오후에는 아들녀석과 반나절의 라이딩을 즐겼다.  라이딩을 다녀와서는 정리 후 편의점까지 반려견 녀석을 데리고 걸어 맥주를 사왔고, 시원한 해질녘의 여운을 맥주 한 캔으로 즐겼다.  밤에는 뒤뜰의 쌓인 나무들을 태웠고, 늦은 밤에는 100여 페이지가 남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완독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알차고 완벽한 이틀의 연휴였다.  보통 한 주의 기록을 일기로 남기려 노력하는데, 이번주는 알차게 시간을 채우느라 기록할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진료를 마치고 지금, 비가 온다는 오후를 차분하게 앉아 기록을 시작한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일정의 4일이 남았다.  제주에는 연휴기간 중의 지금까지 12만 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출퇴근하는 도로엔 평소의 비슷한 시간대 통행량보다 많은 차량들이 달리고 있었고, 주로 렌터카였다.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시기의 섬 사람들은 조용히 집에 있는 편을 택한다.  더욱이 지금같이 코로나19 시대를 보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행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현재의 사태에 갑갑해 하고, 그래서 그나마 갈 만한 곳으로 제주를 택한 듯 하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이 이해하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인 마음도 없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 분위기는 거의 바닥인데 정부나 도정은 생계지원에 대한 시원하고 확실한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알아서 버텨야 하는 도내 자영업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를 등에 업고 현재의 반짝특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관광업이 자영업과 서민들의 주요 생계수단인 이 섬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인간사회가 구축한 정치경제 시스템 안에서 생존하려면, 코로나19같은 자연의 위력을 두려워하면서도 감당해야만 하는 현실을, 이 섬의 사람들은 몸소 체험하고 있다.  여행은 선택이자 취향의 문제이지만, 그 맞은편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19 시대의 황금연휴, 그리고 이 섬의 북적이는 지금을 조용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누구를 비난할 수도,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다.  18만이 예상된다는 연휴 전 여행객 규모에, 법적 책임까지 각오하라 엄포를 놓은 도정만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생계지원에 별다른 의지가 없어보인다. 


  우리는 여전히 근로자의 날이라는 단어의 감옥 안에서 5월 1일을 보낸다.  근면하게 노동하는 사람만이 그 날의 의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5월 1일은 국제적으로 노동절로 불린다.  온전히 노동자를 위한 날인 것이고, 노동자들의 의미로운 쉼을 위해 많은 사업장들이 휴일로 지정해 보낸다.  그러니까, 근면하게 노동한 사람만 골라 쉬는 날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산물 안에서 생각하고 움직인다.  우리는 이렇게 느리다, 또는 바꾸려 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을 아직도 철폐하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고, 한라산 성판악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직도 5.16도로이다.  없는 의미를 곧바로 철폐하지 못하고, 필요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사고력은 더 이상 진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과 기대의 정점이 민주당인 것인지 모른다.  괴물과 싸우며 괴물을 닮아 생존방식도 거의 같아져버린 그들에게 우리는 참 많은 기대를 건다.  더 이상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그들은 현 체제의 유지를 위한 보수일 뿐인데, 누군가는 그들에게서 좀 더 발전된 희망을 기대한다.  선거때만 되면 바닥을 기어다니는 극우집단과 정치지형의 양대산맥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 사고에 족쇄를 채운다.  좀 더 다양하고 진보한 정치세력들 속에서 민주당의 존재는 하나의 보수적 기준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우리의 삶에 좀 더 긍정적 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 뿐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족쇄채운 사고력의 한계 때문일 지 모른다.  우리는 다시 극우꼴통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수도 있을 것이고, 굳어버린 사고체계에서 진보된 수단으로 생산되는 가짜정보들에 현혹되어 진실과 본질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족쇄의 반경 바깥으로 디뎌보지 못한 발걸음은 그렇게, 한계를 운명지운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다.  아들녀석과 타느라 MTB를 택했다.  무릎이 걱정이었는데, 보호대를 차고 달려 그런지 생각보다 걱정스런 증상이 없었다.  약간 좀 더 불편해지기는 했다.  감당할 만한 정도이다.  다시 라이딩을 시작해보고자 싶어 로드를 포함, 집에 있는 자전거들을 모두 정비해 둔 후였다.  사고 이후로 클릿에 대한 두려움은 남아 있어, 정비때 로드의 페달을 클릿에서 일반페달로 바꾸었다.  로드에 대한 욕심이 다시 생겼다.  내일은, 적당한 거리를 로드로 달려볼 생각이다.  여전히 무릎은 걱정이지만 그리 큰 부담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