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텃밭일기

민욱아빠 2020. 5. 10. 21:02

  얼마 전, 진료실에서 키우던 커피나무 두 그루를 보냈다.  지인의 집에서 잘 크지 못하던 3년생 두 녀석을 4년 전 데려와 키웠으니, 7년을 훌쩍 넘긴 것들 이었다.  서귀포 신시가지 언덕의 남쪽 통유리 구조인 건물 안에서, 녀석들은 원래 자신들의 고향인 열대 지역으로 착각한 듯 쑥쑥 자랐다.  몇 번의 꽃을 피우고, 두 세번 커피체리를 맺으며 자란 녀석들은 천정에 막혀 더 이상 자라지 못해 답답해 했다.  거침없이 자라는 모습에 뿌듯하던 나는 그 쯤 되니 뿌듯함은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좀 더 넓고 높고 따뜻한 공간을 수소문했다.  데려가겠다는 이는 많았지만, 신중함을 거듭해서 잘 돌보아 줄 새로운 주인에게 보냈다.  비어버린 진료실 창가는 무성했던 만큼 허전했다.  


  새로운 화분들을 들였다.  3년생 레몬을 들이고 유칼립투스 두 그루와 부룬펠시아 자스민 한 그루를 들였다.  아직은 작은 녀석들이라 공간을 충만히 채우지는 못했다.  채우지 못한 공간은 기대로 채우는 중이다.  들인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유칼립투스는 벌써 남쪽의 봄볕을 향해 줄기를 늘리는 중이고, 레몬은 꽃을 여러 송이 피워냈다.  남향 통유리 구조의 진료실은 어쩔 수 없이 화초들이 잘 자랐다.  손을 많이 주지 않아도, 알아서 키를 늘리고 잎과 꽃을 피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한나절을 머무는 진료실이 사람을 치료하는 공간인지, 화초를 키우는 공간인지 가끔 생각하게 된다. 


  집마당의 텃밭과 진료실에서, 식물들은 알아서 잘 자라주었다.  약간의 신경과 손을 써 주면,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키를 높이고 열매를 맺었다.  그 모습에 기대와 재미를 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위안이다.  사실, 내가 전업농부가 아니기에 그런 감정적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짙어지고 부풀어오르는 초록에 강퍅해진 마음을 내려놓는다.  사람을 만나고 아픈 곳을 치료하는 의사는 잘 회복된 환자에게 보람과 위안을 느껴야 하건만, 나는 마음을 온전히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의사로서 결격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쓰는 일의 일정 부분은 스트레스 그 자체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수반한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으로 약을 처방받으러 온 환자가 적절한 대화없이, 그저 버튼만 누르면 음료수캔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나를 대한다.  환자를 대하며 나는 어느 정도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환자는 내가 건네는 의학적 조언 안에서 혹시 비싼 진료를 일부러 권유하는지 의심한다.  작은 병원에서 필요한 의학적 절차를 대충 건너뛰고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환자는, 내가 고집하는 원칙에 표정이 일그러지고 살짝 짜증을 내며 진료실을 나간다.  나는 잘 하고 있는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 또는 부족하지 않은가 수시로 돌아보며 고민한다.  사람과 사람은 다양한 상호작용과 관계로, 보람 또는 상처 등등의 다양한 감정적 현실적 결과를 자아낸다.  그것은 자체로 인간의 삶이자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의 소모이다.  그것에 가끔 버거워할 때, 초록은 말없이 그리고 스스로 대사하며 내 옆에 자리했다.  


  마당의 레몬나무에 새순과 꽃봉오리가 올라왔다.  거기에 진딧물들이 잔뜩 붙어있길래, 유황을 희석해서 텃밭의 모종들과 마당의 나무들에 넉넉히 뿌려주었다.  그러나, 유황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별 수 없이 저독성 농약을 좀 더 묽게 희석해서 바람을 등지고 뿌려주었다.  그제야 진딧물들이 많이 사라졌다.  태풍같은 바람이 비를 뿌리며 한나절의 시간동안 불었다.  지주대를 세운 모종들은 무사했는데, 수박이나 물외같은 덩굴모종들이 바람에 꺾여버렸다.  꺾인 것들을 정리하고 새 모종으로 다시 심었다.  오이지주대에 그물망을 걸쳐 씌웠다.  그물망이 남아서 토마토 지주대에도 넉넉히 둘러 씌웠다.  알아서 퍼지라고 구석 공터에 심은 딸기덤불은 곳곳에 빨간 딸기를 맺었고, 그 옆의 귤나무에는 하얀 눈꽃처럼 귤꽃이 피기 시작했다.  마당의 반려견은 텃밭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가 어서 나와 놀아주기를 바라듯 빤히 바라보다가 지쳤는지 땅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텃밭일을 대략 마무리하고 나니 토요일 오후의 볕이 저물고 있었다.  몸에는 땀이 살짝 배이고 팔에는 흙먼지가 뒤덮였는데, 마음은 홀가분했다.  공휴일이 있었음에도 마음은 심란했던 한 주의 버거움이 두어 시간의 텃밭일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한없이 부드러워진 바람에 저녁빛이 실려 있었다.  이파리를 가볍게 흔드는 초록들은 여전히 말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생기만을 발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