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기/기본소득

민욱아빠 2015. 8. 2. 11:45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는 기본소득이 적용되면서 발생하는 사회계급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기본소득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예술, 정치, 지역서비스 등의 상품화되지 않은 형태의 생산적인 일에 사람들이 참여함으로서 권력균형의 변화를 유발한다.  둘째, 일반적인 자본주의 고용관계에 진입하는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조합없이 노동과 자본간의 권력균형에 기여한다.  셋째, 기본소득은 고용관계에 있어 개인의 힘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조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노동자들의 조직력이 강화될 수록 노사간의 관심사는 임금인상유무가 아닌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도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방식에 몰두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기본소득은 계급을 철폐하자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계급의 불균형과 격차를 완충할 장치를 만들어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소하자는 주장을 할 뿐이다.  필자의 시야에서 기본소득이 계급이슈를 말하지 않거나 예술행위 종사자들을 기본소득 수혜자로 광고하는 모습만 보이는 건,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략이거나 필자의 시야가 한정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한국사회의 임노동이 덜 발달했다거나 예술가들의 처지가 열악한 상황은 단지 국내의 암울한 진실일 뿐, 기본소득은 어느 사회에서든 열악한 사회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람들을 좀 더 다양한 사회활동에 종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사회 제반에 형성된 계급격차와 불균형의 근본적 변화를 유도한다. 

  예술가들이나 비평가들이 자본의 재생산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도 인정하듯이 현재 자본주의 제체에서 파생된 생각이다.  자본의 재생산에 기여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자본이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한 재원을 내놓도록 한다고 말하는데, 이 글 대부분의 주장이 그러하듯, 현실 자본주의에서나 고민될 수 있는 주장이다.  또 다시 말하게 되지만, 기본소득은 현실 자본주의 상에서 왜곡된 고민들을 근본적으로 되돌려놓는 제도이다.  예술가들이나 비평가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를 존중함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본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필자의 비판은 기본소득을 실현시키기까지 현실 자본주의 안에서 싸워야 할 것들에 대한 나열로서 존중될 수 있지만, 기본소득 이후의 사회에서는 거의 필요없어지는 고민들이다.  특히, 계급문제에 대한 오해는 조금 심각한 수준이다. 

    배짱이의 문제는 기본소득의 미묘한 문제 중 하나이다.  기본소득 문제에 대한 거리 인터뷰에서도, 기본소득이 실현되어도 나는 일을 이어가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일을 안할 것 같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던 것을 보더라도 말이다.  필자는 기본소득이 베짱이를 증식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지만,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없는 자본활동을 정리하고 분배의 균형을 유도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자본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보편필요의 자본활동은 필수이다.  즉, 기본소득의 수혜는 권리지만, 그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디테일은 여기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배짱이의 증식은 당연한 현상이면서도 권리유지를 위해 조절될 수 밖에 없는 민감함이다.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은 당연히 자산정도와 소득수준 등에 대한 면밀한 정보의 수집을 전제로 한다.  필자는 ‘무조건성’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혜택의 조건’은 ‘나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능력이 없고 가난하다’는 사회적 상태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혜자로 하여금 수치심을 유발하고, 조건을 심사하기 위한 장치유지를 위해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사회든 자산정도와 소득수준에 대한 정보수집은 사회유지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문제는 사회복지의 혜택을 부여하는데 요구하는 조건과 이를 심사하는 과정이다.  기본소득에서 문제삼는 것은 이 지점이다.  무조건성은 여기에서 파생된다.  필자의 오해는 계속 이어진다.  ‘연봉 1억원 의사와 연봉 5백만원 활동가에게 동등한 기본소득은 전자에게 세금 5천만원, 후자에게 세금 0원일때에만 가능’하단다.  이 무슨 코메디같은 소리인가?  기본소득은 기본세율로 유지된다.  그 수준은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 설계된다.  즉, 고액연봉자들에게도 높은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지만, 연봉이 낮다고 해서 세금을 물리지 않는게 아닌 것이다.  기본소득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다.  몇년 전 강남훈 교수와 곽노완 교수에 의해 설계된 가장 기초적인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해보면, 1인당 기본소득을 월 50만원씩 받는 설정에서 연봉과 1인 기본소득세 납부액을 따졌을 때, 연봉이 1억원인 사람의 경우에도 2인 가족 이상이라면 실질 소득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연봉 1억 이상인 사람의 사회구성원 비율을 고려해보면 전체인구의 90% 이상이 실질소득이 증가함으로서 조세저항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상모델이고 실제 이렇게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기본소득이 마치 있는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엄청나게 떼어 없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인 양 호도하는 것은 무지에의 오류나 다름없는 주장이다.  보편성은 꾸준하게 공부하고 설계하는 과정에서 수긍되고 형성된다.  세상사 그리 간단치 않은 줄 누가 모르는가..  간단치 않은 세상사가 뭔가 부당한 기분만 들게 만드니 좀 더 나은 방안을 고민해보고자 하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을 한국적 상황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수많은 사고의 오류를 유발하고 대안이 멀게만 느끼게 만든다.  필자의 말대로 우리는 사회와 노동의 이해수준이 낮고 열악하며, 좌파들은 파편화되어 쉽사리 뭉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도 이해수준이 낮은 것도 인정한다.  더 나아가 경제라는 걸 경제학자들 마저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는 생물이어서 다루기 힘들다는 누군가의 말을 저변에 두고 보면 말이다.  그러기에 비현실성에 대한 긍정이 가능해진다.  퇴행하더라도 대다수의 삶에 도움이 되고 더디더라도 함께 성숙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옳은 대안일 수 있다.  기본소득은 대다수가 의도치 않은 불평등을 겪어야만 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고민될만한 대안이다.  동시에 이 요원한 길을 꾸준히 걸어나갈 체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따라서 비판도 좀 더 분명한 시선과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충분한 공부 후에 제대로 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왜 기본소득 이후의 세상에 대해 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 자본주의 세상에서나 고민되어야 하는 문제들을 곧이곧대로 대입하는 방식으로 비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마치 맞지않는 조각을 억지로 끼워넣으려는 테트리스를 보는 느낌이다.  조각은 끼워지지도 않을 뿐더러 게임은 금방 끝나버린다.  뒤로 갈 수록 기본소득 사회가 일방적인 복지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처럼 묘사하는 것도 흐름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나 역시 얕은 지식으로 기본소득을 공부하고 바라보고 있지만, 이제껏 기본소득을 제대로 비판한 글은 ‘기본소득론자들이 현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막무가내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한 글 하나밖에 없었다.  기본소득은 유혹적이지만 동시에 비판되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런 부분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는 글을 만나고 싶다.  나도 공부를 좀 더 해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