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맛집&멋집/제주서부권

민욱아빠 2016. 10. 8. 12:34

  제빵과 제주의 향토요리를 시연하시고 강의도 하시는 양용진 선생님의 반찬만들기 강습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단순해보이는 레시피 사이사이 양념같이 끼어들어 있는 손질의 팁이나 맛을 내는 작은 팁들이 깨알같은 즐거움을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들어야만하는 구나 싶었구요.  스스럼없이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여기저기 다니면서 설명과 손질을 지도하시는 수수한 모습도 감사하고 보기좋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강좌와 시연으로 지내시던 분이 어느날 식당을 하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어머니이신 김지순 향토음식 명인과 지역 음악계의 중심이자 홍차에도 일가견있는 양호진씨와 함께 유수암 언덕 한 켠에 향토음식 전문점을 차리신 것입니다.  사실 가장 기대가 컸던 프로젝트이기도 했습니다.  맛집이라지만 객관적인 기준도 없고 음식들 자체의 본류나 흐름도 잘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맛으로만 소개하는 입장에서는 어딘가 밋밋하고 깔끔하지 못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거든요.  그런 와중에,  '제주 향토음식의 재해석'이라는 분명한 의미를 제시하고 선보이는 음식들은 과연 어떤 모습과 맛일까 하는 기대역시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주라는 섬에서 낭푼밥상의 맛은,  하나의 기준점으로 역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낭푼밥상은  적당한 상 위 한가운데 양은그릇에 푹 떠 담은 밥을 놓고 제철 반찬들을 아무렇게나 올려놓고 먹던 제주서민들의 옛 밥상을 의미합니다.  물질에 밭일에 하루가 정신없을 때, 정성스런 밥을 차린다는 건 또다른 고난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커다란 양은그릇에 밥을 크게 담고 텃밭에 고추 배추잎 등등에 된장 자리젓갈 등등의 반찬 대충올려놓고 먹다가 다시 물질이나 밭일하러 다녔겠죠. 낭푼밥상이라는 상호의 글씨는 우리나라 캘리그래피의 한 축을 세우고 있는 신동욱 작가님이 쓰셨다고 합니다.


    김지순 명인이 주축이 되어 꾸려지는 이 공간은 넓고 현대적이지만, 실내의 인테리어는 시간을 곳곳에 밴 자연스런 소품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적당한 조명과 함께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들이 조화를 이룬 너른 공간은 차분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면 테이블세팅이 된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날의 음식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각자 삼다수 한 병씩 주어집니다.  음식리스트는 계절이나 때마다 달라집니다.  그리고 예약을 하지 않아도 자리가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죠.


  준비가 한창일  때, 선보였던 메뉴들과는 많이 달라진 리스트였습니다.  두 번째의 방문이었는데 간극이 좀 있으니 계절이 달라져 제철메뉴라는 컨셉에 맞게 달라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에피타이저의 시작은 제주토종 참기름을 넣어 반숙한 독새기(달걀) 반숙입니다.  이전에 반가운 손님이나 귀한 손님이 집에 오면,  그에 대한 마음으로 이렇게 내어주었다 하더군요.  제주토종 참기름이란 재료에 반할 수 밖에 없었던 메뉴였습니다.  향이 무척 은은하고 깊었거든요.  아내는 이 메뉴를 맛보고 제주토종 참기름을 구하고 싶어했습니다. 


다음 메뉴로는 제주 푸른콩된장으로 만든 소스와 제주산 채소를 혼합한 드레싱입니다.  저는 제주전통주를 따로 주문했기에 혼바당이라는 제주 전통막걸리 한잔이 같이 나왔습니다.  제대로 만든 음식이란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제주 푸른콩된장의 담백함과 감칠맛이 짠 맛 없이 채소를 잘 감싸줍니다.  거기에 혼바당의 약간 달달한 듯하면서도 정제된 맛은 투박함이라는 주제아래 샐러드와 막거리를 잘 어우러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바릇죽과 물김치입니다.  바릇죽은 제주해변에서 나는 것들을 재료로 만든 죽인데 깅이(게), 해초, 보말 등등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 맛을  굳이 일부러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갯것 특유의 풍부함이란 두말할 것 없으니까요.  실제로 가장 맛있다는 칭찬이 들어오는 메뉴라 했습니다.  그리고 물김치..  사이다 섞어 차게만 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갈하고 담백하고 은은한 온도로 바릇죽과 잘 어울렸습니다.


  다음은 빙떡과 옥돔구이입니다.  접시와 장식이 참 잘 어울립니다.  빙떡의 맛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웹툰작가 올드독이 자신의 최근 제주의 음식이야기에서 이야기했듯, 아무 맛 없는 빙떡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맛있어진다는 사실은 참 불가사의한 일이죠.  입안에서 은은하게 맴도는 빙떡의 맛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제가 제주에 좀 살아서인지 점점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은은함을 즐길 수 있을 때, 낭푼밥상의 빙떡을 맛볼 수 있다는 건 다행이기도 합니다.  빙떡은 원래 옥돔구이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라 하더군요.  거기에 전 오메기술을 더했습니다.  조합을 보니, 아무래도 빙떡 두 세줄과 옥돔구이 두어마리 옆에 놓고 오메기술 주거니받거니 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삼색전과 맑은바당 전통주였습니다.  삼색전은 고사리해물전, 미수전, 몸메밀된장전으로 구성됩니다.  옆의 별모양은 간장젤리인데,  젤라틴이 아닌 우뭇가사리로 만든 젤리라고 합니다.  전 하나에 간장젤리 하나 얹어 먹으면 적당한 간과 진득한 식감이 좋습니다.  거기에 전통막걸리를 한 번 더 걸러만든 맑은바당 한 잔을 곁들였습니다. 


  다음은 전복 양념찜과 날초기구이입니다.  전복은 잘 손질되고 간도 잘 되어 있어서 식감을 즐기며 맛볼 수 있습니다.  소금은 클로렐라를 넣어 볶은 것으로 간이 좀 심심하면 찍어먹어도 좋다고 하더군요.  날초기는 표고버섯의 제주어인데, 육고기 비슷한 질감은 환상적입니다.  거기에 녹고의 눈물을 한 잔 곁들입니다.  도수가 점점 올라가는데, 이 술은 제주오가피로 숙성시킨 술이라고 합니다.


  한치무침이 나옵니다.  싱싱한 재료들의 식감과 달달한 한치의 조화가 조금은 달달한 듯 좋습니다. 

   

  이쯤 되면 배가 부르기 시작합니다.  사실 식사는 천천히 즐기며 오래도록 먹어야 속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는 너무 급하게 많이 먹곤하죠.  급하게 먹으면 위에 음식이 충분히 찬 건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과식하는 거죠.  낭푼밥상에서는 적은 양으로 다양하게 그리고 천천히 먹음으로서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에피타이저의 마무리정도 되는데 포만감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본상은 아직이죠.


  돼지고기 수육과 같이 쪄낸 야채들, 그리고  레디쉬 피클입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거품은 간장을 거품내어 낸 것이라 합니다.  수육을 찍을 때 접촉면이 많아지고 적당히 묻게 되어 좋더군요.  수육은 촉촉하고 잡냄새가 없었으며,  피클은 상큼했습니다.  거기에 전 백년홍주 한 잔을..  도수가 좀 더 올라갔습니다.

 

  배는 부른데 드디어 본식이 나왔습니다.  전 호박잎국과 접짝뻬국 중에 뻬국을 선택했습니다.  가운데 놋그릇에 조밥이 담겨나오고 각재기조림이 각자 한 마리씩 나옵니다.  반찬은 개인상으로 조금씩 담겨나오구요.  쌈채에 조밥을 얹고 자리젓갈을 얹어 먹는 그 맛도 감칠맛 가득하고, 고기가 붙은 돼지뼈로 끓인 뻬국 떠먹으며 조밥에 제피된장 찍어올려 먹는 맛도 참 좋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양애장아찌는 새로움이었고,  감저(고구마)줄기김치는 어릴적 할머니의 손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우리집 고구마는 왜 줄기가 김치담글만큼 굵어지지 않는건지 아쉬워졌습니다.  전 여기에 조금 독한 고소리술 한잔을 더했구요.


  배는 이미 충분히 불렀습니다.  이제는 조금 버거운듯 싶을 때, 후식이 나옵니다.  오미자차와 감귤정과, 그리고 꿩엿을 올린 송애기떡이 나옵니다.  송애기떡은 부부의 금슬을 상징해서 두개의 떡이 찰싹 달라붙어 나온다는군요.  오미자차의 시큼함과 감귤정과의 새콤함,  그리고 송애기떡의 적당한 질감이 마무리를 만족시킵니다.


  코스는 드디어 마무리되었습니다.  길었던 코스 하나하나에 제주전통음식의 재해석이라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있는 밥과 반찬을 올렸을 낭푼밥상의 맛이 이렇게 정갈하거나 정성스럽지는 않았겠지만, 재해석의 관점에서 맛은 '이랬겠구나'하는 충분한 실마리와 지역만이 가지는 향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코스가 시작되어 마무리되는 시간은 대략 한시간 반입니다.  천천이 이야기하고 음미하며 즐긴다는 의미에서도 훌륭한 컨셉이었습니다.  노동으로 고난한 삶을 살았던 서민들의 밥상인 낭푼밥상이 왜 이리 비싼가라는 의문만이 조금 남는데,  고난했던 삶을 대변하던 음식들은 대부분 노동하던 사람들의 손에서 직접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귀해진 세상이라는 데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고난했던 삶을 고난하지 않게 함으로 손수의 음식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고난했던 삶을 대량생산과 획일화의 시스템으로 몰아넣으면서 시스템화된 음식을 강요했고,  그로 인해 손수만든 음식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그 가치는 발굴되고 해석되어야 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고 박제화되었기 때문이죠.  낭푼밥상은 그런 의미와 가치를 다시 살려놓는 작업으로 노력을 존중받을만 하다 생각합니다. 


  낭푼밥상의 의미는 이주민의 입장에서 훌륭하고 그만한 맛을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선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선주민들의 호불호와 여러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구요.  제 고향 전주비빔밥이 어릴적 아무렇게나 맛있게 먹던 맛에서 지금은 비싸기만 한 이상한 음식이 되어버렸음을 느끼듯, 선주민의 마음 어느 한켠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껏 맛 본 제주음식들의 본연의 맛에 통찰적인 기준을 다시 세웠다는 점입니다.  이주민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 집은 제주음식의 본연을 제대로 느끼려면 꼭 한번은 들러보아야 할 맛집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음번엔 낭푼밥상의 2층으로 올라가보겠습니다.  브런치와 함께 온갖 다채로운 달달한 디저트와 함께 홍차의 맛과 도구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  까페 판이 있기 때문이죠.  낭푼밥상은 먹거리의 향유라는 관점에서 거대한 아우라를 지닌 존재입니다.

      

언제 가보나..제주..^^
다음 제주 여행은 선생님 올리신 맛집 탐방이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 맛집 리스트도 정리가 좀 되긴 해야 하는데.. 나름 만족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