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제주에 살다

민욱아빠 2015. 3. 19. 11:55

  걸어서 5분이 조금 걸리던 출근길, 현관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걷기 시작하면 우측으로 바로 보이는 바다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린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틈새라 하기엔 조금 넓은 높은 두 건물 사이에 조각으로 보이는 바다는 아침마다 창을 통해 바라보며 그날 그 날을 확인해도 다시금 보게 된다.  애증이라 하기에도, 애정이라 하기에도 뭔가는 애매하지만 옆에 없어서는 안 될 대상..  제주에 머무는 나에게 그것은 바다이다.

 

  제주로 내려간다는 통보에 어머니는 이내 서운해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로 말씀하시길 '물가에 적어도 12년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바다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친화력을 발휘한다.  1층 입구를 지나 걷기 시작하자마자 고개는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바다의 표정을 읽는다.  한겨울엔 매서운 북풍이 두 건물 사이를 지나며 더욱 거세어 진 채 얼굴을 그대로 때리고, 때로는 빰과 이마에 눈송이를 꽂아넣듯 날리지만, 출근의 시작은 언제나 한결같이 그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고나서 나는 검은 돌담이 옆으로 흐르는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건입동은 곳곳이 어중간한 분위기이다.  변화하는 듯 바뀌다가 어느 순간 멈추어버린 듯, 과거와 근대와 현재가 뒤섞인 모습이다.  사람들도 흐르는지,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흘러 다시 자리를 잡고, 그 자리를 어디선가 흘러온 사람들이 채워간다.  그 흐름을 옆에서 덤덤히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때 그 모습을 부지불식간에 유지하며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5년전의 간판은 변하지 않은 채, 딱 그만큼의 시간을 거쳐 나의 마지막 출근길까지, 덤덤히 사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토박이 지인의 어릴적 기억에서까지 함께했다는 저 간판과 이발사 주인..  흐르는 시간을 묵묵히 바라보는 몸을 반쯤 그 안에 담근 바위같은 모습이다.

  건입동 어린이집을 지나면 바로 퐁낭 두 그루를 지난다.  맑은 때면 멀리 한라산의 선명한 자태를 배경으로 한기서린 풍광을 만들어낸다.  한겨울의 퐁낭은 특유의 정취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따스함이라던가 정감이라기보다는 제주에 부는 바람과 한기에 가깝다.  운치라기보다는 서늘함이다.  이제 잔가지들에는 서서히 연두색의 순들이 올라올 것이다.  그것도 잠깐이고 짙푸른 녹색의 이파리들이 무성해지면 어느순간 그 이파리들을 모두 떨구고 모세혈관같은 잔가지들만을 드러낸 채 겨울의 완연한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서 퐁낭은 원래 이파리가 없는 나무인가 싶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퐁낭은 제주의 바람이다.  바람을 그대로 안고 산쪽으로 기울어진 퐁낭들에 비하면 이 나무들은 매력적인 그림을 자아내지만, 잔가지만 남은 모습은 자체로 바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서든 퐁낭은, 바람이다.


  퐁낭을 지나고 담장너머로 매화가 보이고 대나무가 보이는 집을 지나 우측으로 꺾으면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차들도 많이 보이는 출근길 골목의 마지막 구간이 나타난다.  차가 많기도 하지만, 구도심의 특징인 좁은 도로를 억지로 2차선 도로같이 꾸미다보니 길은 좁고 주차된 차들 사이로 사람들은 지나다닌다.  아침시간인지라 아이들을 데려가려는 노란 버스들과 그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돌담에서 시멘트블럭으로 변한 담장 안으로 소철과 매화와 하귤과 무화과의 높은 키들이, 어설피 변하다 만 듯한 이 동네가 실은 유서가 깊은 동네임을 말해준다.  부엌을 겸하는 거실에서 문을 열자마자 아스팔트 도로인 집들이 즐비하고 사이사이로 넓다란 정원이나 2층 벽돌집이 보이는 규모있는 집들이 혼재하는 모습은, 살림의 있고없음이 뒤섞인 채 머물러버린, 구도심 중에서도 오래된 동네의 어떤 독특함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그 광경 안에서 천천히 걸어나간다. 

  담장 너머로 움푹 파인 땅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듯, 먼지와 이끼와 웃자라버린 무화과 나무가 점령해버린 좁다란 슬레이트 지붕집이 시야 아래로 보인다.  대문도 낡아 녹이 슨 지 오래다.  가끔 이 집과 주변을 두 세사람이 기웃거리며 살피는 걸 보았다.  아마 부동산업자와 의뢰인일 것이다.  제주의 미친 부동산 경기는 오래되었고 가난한 동네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고나면 어딘가는 부서지고 어딘가는 솟아오르는 제주의 분위기가 이곳에서는 좀 덜하긴 하지만, 어딘가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발견되곤 한다.  사람들은 틈새에 간신히 만들어 놓은 대문안의 좁다란 공간에도 삶을 펼쳐놓는다.  출근길에 종종 보게되는 노인복지시설차량은 그런 좁다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어서 가자 재촉한다.  차에서 내려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시설직원의 표정은 피곤과 익숙함이 밴 무표정과 덤덤함이었지만, 이 곳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반가워 아침일찍 좁은 방을 나서는 노인들이 많다.


 

  저 국수집도 5년을 나와 함께 했다.  아니, 저 집도 오래전부터 이 곳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봐오던 집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각별하기도 한 집이다.  할머니, 딸, 손주 3대가 모두 내 환자였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저 간판에 국수 한 번 먹으러 가지 않았던가 못했던가..  의사들은 병원 바깥에서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는 일에 익숙치 않다.  일부러 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미각과 욕구는 간사하다.  이 집이 어느 순간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 역시 더 이상 모른척 할 수 없는 집이 되었다.  가끔 점심을 해결하러 가는 집이 되고 만 것이다.  주인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고 한껏 웃어주신다.  병원 바깥에서의 어색함이 무안해지는 순간순간들이었다.


  이제는 일부러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나서지 않는 한, 출퇴근 길에 이 길을 걸을 일은 없어졌다.  만 5년 하고도 2개월을 휴가나 휴일이 아닌 한 꾸준히 오간 출퇴근길..  때로는 점심시간을 집에서 보내고자 한낮에 걸었던 길..  이 길을 걸었다는 건, 그만큼 나에게 여유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5분의 산책같은 발걸음은 나에게 또다른 흥미거리를 즐기게 해 주는 길이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시간이 배어있는 길이었다.  가난과 빛바랜 부가 뒤섞여있고, 단단히 박은 뿌리와 부유가 공존하는 동네였다.  언제부터인가 변화를 겪다가 말아버린 어설픔과 이제 막 변화가 시작되려는 다급함도 뒤섞여있었다.  주정공장터 절벽 위에 높다란 두 아파트가 바다를 가렸지만, 그 틈새로 바다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나의 게으름과 먹고사니즘의 번잡함은 지난 5년간의 기억을 추억이라는 단어 안에 가두어버리고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나마 남겨둔다.  내 머리와 몸은 새로움에 적응해 갈 것이다.  그렇지만, 제주에서의 생활이 순조롭고 풍요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길이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 진실을 과거로 두며 내가 아둔해지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적당히..... 그래도 즐겁게 살았네.
새집에서도 즐거운 추억들이 많이 생기기를...
오늘 밤에 잠깐 봅세....ㅎㅎㅎ
오자마자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형님이 더 부러울 때가 많아요.. ㅎ
이사한 새 집에서의 생활도 기대해 봅니다 ^^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아직 정리가 덜 되었네요.. ㅎ
와 저 제주맛집찾다가 선생님 블로그에 들어오게되었다가 뜻박의 사진을 보고 눈물 흘렸습니다
저 아파트입구의 경사진길!
두아이 걸으며 막내 유모차태우고 시장갔다오면 경사져서 유모차 미끄러질까 쑥내려가느라 바다 볼 생각못했었어요

저 국수집과 나무 주민센타가 생기기전 낮은 집들을 지나 동초등까지 지나가던길들

사라봉가려고 나갔던 길들이 떠오릅니다
저의집은 특히나 정문 관리실 맞은편 동이였어요
제일 밖의집이어서 더 춥고 중앙난방이여서 추웠던 그집!
바다는 동과동 사이 놀이터에서 세아이들 데리고 보았던기억!
큰애가 곧잘 제주말 배워 기어다니던 막내에게 '뭐 하멘?'하던 기억들
그 길들이 잊어먹고있었는데 사진상에서 보니 옛기억온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은 너무 먼 옛일이된 제주의추억들이 저 길 사진한장에 제마음을 흔들어놨습니다

혹시 102동 801호 사셨나요? 병원 관사호였는데.. 저 제주내려가기 전에 먼저 다녀가신 분인지도 모르겠네요.. 반갑습니다. 저도 외도로 이사오고 나니 여기도 추억의 공간이 되어버렸네요.. ㅎ
우연히 들렀다가 한시간 넘게 보고 갑니다. 좋은 글 좋은 사진 너무 보기 좋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종종 들러주셔요.. ㅎ
가끔 저 사진들 보러 왔습니다.제주를 떠난후에 다시 제주를 가도 건입동쪽엔 안가서요..
선생님 사진으로 추억과 기억 되살려봅니다.저희남편도..gs였습니다.
관리실 맞은편에 동의 6층인가 였어요..딸둘 동초등 학교 보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올수능치고...딸들과 제주가서 한번 둘러보려고요..아파트 놀이터에서 바다 보였었다고..
초등 1학년 제주에서 들어갔다가 대학 들어가기전에 한번 돌아보려고요..딸들에게도 좋은 추억이였어요...사진 지우지 말아주세요.막내아들...유모차 태우고 저 경사진 아파트 정문 내려가던 추억이...
이젠 노형동에 아파트나 사놓을걸 하는거 보면 저도 속물이 다 되었나봅니다.
제 사진이 추억이 되어드린다니 감사합니다. 저는 제주 지박령이 되어갑니다. 외도에 자리를 잡고 서귀포로 매일 오가는 날입니다. 4살 때 제주에 온 제 아들은 이제 중학생이 되었구요.

제주 많이 변했습니다. 살고 있는 제 눈에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요. 그렇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이 남아 있습니다. 추억이 있다면 더욱 정겨울 겁니다. 잘 둘러 보셔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