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영화

민욱아빠 2020. 1. 5. 15:05

  시작, 그러니까 감정의 시작은 언제나 우연이다.  갑작스레 덮치는 감정의 파도에 몸은 조용히, 그리고 격렬하게 요동친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 그 격정을 밖으로 표현하거나 발설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에게 쏘아 올린 화살 끝에 날카로운 화살촉이 달렸는지, 아니면 마시멜로같은 달콤함이 달렸을 지는 맞는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엘리오의 어깨를 주무르던 올리버는 엘리오의 긴장한 어깨를 느끼고는 마르치아를 옆에 끌어들인 뒤 가버린다.  후에 올리버는 이야기한다.  그게 신호였다고, 그런데 마치 추행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반응해서 그냥 거리를 두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어쨌든 그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첫사랑은 강렬하다.  또는, 흔들리는 정체성 앞에서 나에게 다가온 강렬하고 뜨거운 것을 거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숨이 막힐듯해서 거칠게 쉬어지지만 충분히 깊고 묵직한 호흡으로 나에게 다가온 뜨거운 무엇을 어쩔 수 없이, 거부할 수 없는 무기력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단순히 뜨겁다거나 열정적이라는 단어로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시간과 공간의 모든 것이 사랑으로 경계지어진 시야 안으로 가득 차, 청량한 액체같은 것이 맹렬하게 흐르고,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안으로 잠기거나 격렬하게 휘둘린다.  그 엄청난 대전환은 너무도 급격하고 재빨라서, 오히려 세상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그러했다.  우연으로 시작된 만남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되어, 서로에게 급격한 대전환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너무도 잘 어우러진다.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상대에게 불안과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 둘의 사랑은 이탈리아의 여름 안에서 완벽하게 잘 어울렸고, 아름답게 잘 어울렸다.  그 모습이 불편했다면, 그것은 영화를 보는 당신의 취향이 다른 것이거나 편견일 뿐이다.  세상의 원리는,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감정과 물질을 포함한 현실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행위의 모든 것에 양심을 대입하고, 그것이 걸러내는 결과에 판단을 적용하여 움직이고 느낀다.  역사의 시간 위에서 자행된 무의미한 희생과 불필요한 폭력은 대부분 편견과 합리적이지 못한 이기적인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탈리아 크레마의 아름다운 여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사랑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이 완벽한 조화와 일체감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었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사실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말해준다.  


  사랑의 자연함, 자연의 아름다움, 그 완벽한 일체감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은 엘리오의 부모들이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두 사람만의 시간을 배려해준다.  그리고, 올리버가 떠나 슬픈 엘리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 깊이, 충분히..  17살의 아들에게 그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충분히 겪도록 배려해주는 부모의 모습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그저 자연스러움임을 다시 한 번 강변한다.  자신을 따라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파산’할 아들의 아름다운 시절을 품위있게 그리고 넉넉하게 존중해주는 부모의 모습은 ‘부모로서 우리는 그래야 한다’는 메세지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해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갖추어야 할, 세상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하한선이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삶의 상식적 하한선을 녹여넣는다.  배려라는 적절한 거리를 바탕으로 타인과 세상을 존중하는 방법..  올리버를 사랑하는 엘리오의 묵직한 배경으로서의 부모는 영화가 품은 여러 메세지를 탄탄하게 다지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랑은 언제나 이별을 수반한다.  첫사랑의 이별은 첫 이별이기에 더욱 아프다.  ‘call me by your name’은, 엘리오와 올리버가 나누는 전화 위에서, 더욱 가슴아프고 뜨겁게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그리고 벽난로 앞에서 슬픔으로 아픈 엘리오의 절제된 눈물이 흐른다.  영화는 끝까지 엘리오를 배려한다.  가족들은 엘리오의 뒤에서 영화의 흐릿한 시선으로 각자의 일을 하며 엘리오와 거리를 유지한다.  여전히 그 느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영화는 마무리된다.  모든게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인간의 감정과 한여름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이 잘 어울린다.  그 안에 절제와 배려라는 삶의 작은 상식들이 배어 있다.  그렇게 영화는 모든 것을 조화롭게 섞어놓고, 관객으로 하여금 시선과 감정을 놓지 못하게 휘어잡는다.  어쩔 수 없이 집중하던 내가 마지막에 집중을 방해받았던 이유는, 절제의 눈물을 흘리던 엘리오의 셔츠 위로 돌아다니던 파리 한 마리였다.  아, 감독님.. 그 장면 파리 좀 잡고 다시 찍으면 안되었을까요?  감정연기를 해야 했던 티모시 샬라메가 많이 힘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