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ELF/나의 잡담

민욱아빠 2016. 9. 1. 11:41

  지난 한 달간은 냉장고와의 동거였다.  아내와 아이가 한 달여의 시간을 두고 나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먹고 살아야 하는 나는 별 수 없이 같이 시간을 보낼 상대로 냉장고를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즐거웠다.  냉장고는 나의 창의욕을 자극했고 그만큼 풍성했다.  마당의 텃밭과 냉장고 옆 찬장과 손을 잡고서 나를 종용했다.  어서 무언가 먹을 것을 만들어보라고..  외식을 좋아하지 않고, 집 주방에서 무언가 뚝딱거리기 좋아하는 나에게 이 기회는 놀이터 하나를 전세 내어 놀아보는 기분이기도 했다.  냉장고 파먹기는 그렇게, 기회는 예정되어 있었지만 생각은 갑자기 그리고 순간적으로 시작되고 실천되었다. 

  십여년 전, 저수지 송어플라이 낚시에 재미들려 있던 그 때, 잡은 송어는 풀어주기도 했지만, 버터바르고 소금 후추 뿌려 구우면 맛있기도 해서 종종 집으로 몇마리 들고 오던 때가 있었다.  손질해서 간을 한 송어는 호일에 싸서 레인지 그릴 기능에 바로 구워 먹었는데, 남은 송어는 손질된 그대로 냉동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고는 오랜 시간을 잊어버리곤 했는데, 어느날 냉동고를 열어보니 깊은 구석에서 호일에 싼 송어가 발견되었고, 이게 언제 넣어둔건가 짐작을 해 보니 대략 3-4년 전이라는 시간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이었다.  ‘이 정도면 냉동고에서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벼운 농담을 했지만, 속으로는 송어에게 미안했고 생각없이 냉장고로 처박아두는 사람의 행위에 적지않은 무게감으로 문제를 느꼈던 것이다.  사실 지금의 나는 남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냉장고에 넣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고, 냉장고 안의 남은 음식을 바로바로 먹거나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만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기에, 그래서 이런저런 일들로 문제를 삼다보면 시끄러워질 일이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저 바깥 일에만 신경쓰며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혼자 있게 된 첫 며칠은 탐색의 기간이었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재료들이 무엇무엇이 있는지..  일단 냉장고 안에는 갖가지 밑반찬이 남아 있었고, 달걀 여러개와 몇가지 채소들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때마다 남은 것을 비닐팩에 담아 냉동실에 얼려둔 밥과, 텃밭에 엄청나게 많은 양으로 열린 꽈리고추, 고추 그리고 가지였다.  얼린 밥은 양이 무척 많아서, 탐색 중에는 일단 라면을 끓여 얼린 밥을 조금씩 넣어 같이 끓여 먹었다.  라면은 단순하게 끓이지 않았다.  일단 냉장고에 있는 다시마와 다진마늘을 조금 넣고, 야채칸에 시들한 고추가 있으면 가위로 잘라 넣고, 계란도 하나 넣었다.  포장을 뜯은 만두도 있어서 가끔 한두개씩 넣어 끓여 먹었다. 
 


  텃밭의 채소들을 거두고 난 다음엔, 오래도록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을 만들기로 했다.  일단 꽈리고추는 냉동실에 있던 멸치를 꺼내어 간장 물엿을 넣고 꽈리고추 멸치볶음을 만들었다.  꽈리고추는 교잡이 된 탓인지 무척 매웠지만, 최종결과는 처음 만든 것 치고는 간이 너무 잘 되어서 맛이 좋았다.  풋고추는 다시마 물에 살짝 데쳤다.  그것을 고추가루 다시마육수 참기름을 넣고 볶은 집된장에 그대로 박아서 된장고추 장아찌를 만들었다.  이 역시 처음 만든 것 치고 매우 성공적인 맛이었다.  두 가지 반찬은 한 달 내내 내 식탁의 한 켠을 자리했고, 아내가 만들어 둔 소고기 달걀조림을 다 먹고 난 후에도 든든한 반찬이 되어주었다.

  밑반찬을 만들었다고 퇴근후 날마다의 저녁을 일일이 만들 수는 없었다.  냉동밥도 너무 많았고, 날마다 밥짓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서 일주일 단위의 먹거리를 만들어 두기로 했다.  첫번째 시도는 카레와 우거지된장국이었다.  텃밭에서 캐서 모아둔 감자가 있었고 호박도 많았다.  친구들을 모아 구워먹으려 한 돼지 앞다리살 한 팩이 냉장고에 그대로였다.  살코기만 잘 발라내어 크기대로 썰고, 감자 호박을 썰어 찬장에 있는 카레 한 봉 분량의 카레를 한 솥 끓였고, 작년 겨울 삶아 말려 얼려둔 우거지를 냉동실에서 꺼내 녹여 다진 뒤에 집된장과 감자 호박을 넣고 우거지 된장국을 한 솥 끓였다.  카레야 그렇다 쳐도 우거지된장국은 처음 만드는 것이었는데도 맛이 좋아서, 일주일간 아침 저녁 국거리로 아주 유용했다.  몇년만의 폭염이라는 무더위가 버거웠지만, 작은 냄비에 국을 옮겨담고 얼린 밥을 넣어 끓였다.  쏠쏠한 재미와 만족할 맛, 무더위로 땀이 비오듯 흐르지만 않는다면 정말 좋았을 순간이었다. 

  가지무침은 실패였다.  텃밭의 가지가 너무 많아서 쪄 낸다음 양념해서 가지무침 반찬을 하려 했는데, 일단 찌는 시간이 너무 길어 대책없이 물러지면서 물이 너무 많이 나왔고, 병든 껍질을 제거했어야 했는데 괜찮겠거니 그냥 썼다가 쓴 맛이 생겨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깝지만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다음 한 주는 무얼 만들어 먹을까 고민하다가 김치찌개를 생각했다.  국물을 조금 많이 잡고 양을 넉넉히 해서 일정기간 끼니로 먹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었다.  이번엔 김치냉장고를 살펴보니 슬슬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 잘 익은 열무김치가 있었다.  배추김치가 낫긴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것부터 먹는게 낫겠다 싶으니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잘 다져서 큰 냄비에 넣고, 어느 집이든 냉동실에 언 채로 있을 법한 돼지고기 국거리를 꺼내어 같이 넣고 멸치 약간 다진마늘 넣고 물 넉넉히 넣어 끓인 뒤, 남아도는 호박과 양파를 썰어넣고 고춧가루 고추 넣어 간을 했다.  그것은 그대로 다시 작은 냄비에 옮겨지고 냉동밥을 넣어 끓여 끼니마다 먹는 것이다.  조금 부드럽게 먹고 싶다면 여기에 달걀 하나 거의 끓었을 시점에 넣어 풀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끼니를 해결했다. 

  다시 눈에 띄는 재료들을 둘러보았다.  우거지는 너무 많아서 관심을 보이는 지인에게 몇 팩 넘기기도 했다.  그리고 안쪽 깊숙히 손질되어 언 채로 보관된 작은 조기 몇마리가 보였고, 냉동된 작은 꽃게와 오징어도 보였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쌀떡도 먹다가 남은 것들이 포장된 채 얼어 있었다.  그리고 어묵이..  조기는 다시마 육수에 무를 넣은 뒤 그 위로 올려 양념장 뿌리고 자작하게 끓여 조기조림을 만들어 한 끼 식사로 해결했다.  그리고 게와 오징어, 어묵 가래떡은 그대로 해물떡볶이 재료가 되어 지인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요리가 되었다.  냉동된 밥은 아내와 아이가 돌아올 무렵 즈음 다 먹게 되었다.  밥을 하기엔 귀찮아서, 라면과 냉동실의 생면이 눈에 들어왔는데, 때마침 냉장고 구석에 시판 농축장국이 있어 멸치육수에 호박넣고 장국 풀어서 소면넣고 국수로 한 끼를 해결했다.  가장 마지막 끼니는, 남은 가래떡을 해동하여, 간장 참기름 다진마늘 고춧가루에 볶아서 간장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의 냉장고 파먹기는 대략 이렇게 정리되었다.  평일의 출퇴근을 고려하면 끼니는 복잡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니 혼자서 해 먹는다는 것은 오랜 시간 간단할 수 있는 방법과 준비가 필수요소이다.  장은 딱 세 번 보았다.  주로 집에 친구들이 오는 때, 냉장고만 뒤져서는 나올 수 없는 음식 준비를 위해서였고, 그렇게 준비하고 남은 재료들은 그대로 내 끼니의 재료들이 되어 주었다.  두루치기가 그랬다.  돼지고기만 있으면 야채는 텃밭과 냉장고에서 나와주었으니 말이다.  냉장고 안은 비교적 여유로워졌다.  텃밭것들로 만들어 둔 장아찌나 피클류들을 손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여전히 수북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한 달간을 파먹고도 우리집 냉장고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담아두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파먹기가 최근 주부들 사이에 유행이라는 기사도 언뜻 보기는 했지만, 그런 흐름에 편승한 것은 아니다.  냉장고가 있어 편리해진 생활만큼 낭비와 불필요한 축적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냉장고에 자꾸 무언가들이 쌓여가는 것이 싫어서, ‘우리집 냉장고라면 전시에도 6개월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라는 평소의 농담을 증명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문득 시작해 본 일이다.  서서히 냉장고가 비워져 간다는 재미와, 한정된 냉장고재료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재미와, 그런 창작욕이 뭉쳐져 만든 하나의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한 달간 우리집에서 펼쳐진 것이다.  거창한 의미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수많은 곳에서 축적과 낭비에 대한 자성이 넘쳐난다.  집 안에 사람이 다시 늘면, 냉장고는 별 수 없이 다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현재, 채워졌다.  아쉽지만, 아쉽기만 할 수 없다.  채워둘 수 밖에 없는 풍요로운 물질주의의 삶의 당연한 한 모습이려니 해야 할 것이다.  좀 더 가벼워질 수 없는 삶이 아쉽지만, 재미지고 즐거웠던 한 때의 일탈 프로젝트로 부담없는 의미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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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더웠던 8월이 가고
가을의 길목 9월입니다.
스치는 바람에도, 맑은 햇살에도
벌써 가을 느낌이 나는 듯 합니다.
파란 가을하늘처럼 쾌청하고
가을바람처럼 상쾌한 9월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