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JEJU/기고문

민욱아빠 2015. 11. 3. 11:23

 

강정천 다리건너 꺾어지는 2차선 도로 안으로 바닷바람에 모래가 흩날리고 있었다.  모래더미가 시작되는 도로 가장자리로는 덤불이 우거져 있었고, 저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밭일을 나가는지, 해가림용 모자를 푹 눌러쓴 아주머니 두어 분이 걷고 있었던 듯도 하다.  차를 타고 강정을 지나며 보았던, 내 기억 속의 5년 전 강정의 모습이다.  그 다음의 기억 속엔 광경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높다란 펜스가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어설프나마, 그것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고립, 격리시키고자 설치한 분리장벽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또, 무언가 영영 사라져버리는구나, 이별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어린 시절, 이모님은 전라북도 서해안의 변산해수욕장이 가까운 마을에 살고 계셨다.  부안군 산내면이라는, 그 당시엔 하루에 버스 지나다니는 횟수가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고, 이모님 집은 버스에서 내려서도 40분 이상을 걸어들어가야 하는 깊은 시골마을이었다.  나는 여름이면 이모님 댁에 놀러가 버스정류장 옆 다리까지 낚싯대를 들고 걸어나와 망둥어를 잡았고, 이모가 갯벌에 나가 게를 잡고 조개를 캐면 그 옆에서 나도 게를 잡고 조개를 캐곤 했었다.  시간이 흘러 그 때의 경험은 추억으로 남아지고, 내 머리를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도 자잘한 먼지조각마냥 아스라이 흩날릴 정도로 희미해질 즈음 새만금사업이라는 거창한 국가사업이 발표되었고 내가 망둥어낚시를 하던 갯벌위 다리는 거의 정확하게 방조제의 남쪽 끝지점이 되었다. 

  전쟁기지 없는 평화의 섬이라는 거창한 대의 또는 신념은 일단 접어두고 마음이 조금 바빠졌다.  무언가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고 이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순간 나는 그 무언가를 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펜스는 빙 둘러쳐졌어도 올레길 중덕 삼거리에서 구럼비로 들어가는 길은 아직 열려있을 때, 나는 5살 아들의 손을 잡고 구럼비를 만났다.  1.3km에 육박하는 거대한 바위는 잔잔한 너울 또는 파도인듯 부드럽게 물결치고 있었다.  그 위를 걸어 바다를 만났을 때, 아이는 거친 바닷바람으로 이마를 드러낸 채 부서지는 포말을 그대로 맞았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여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기타치며 노래도 불렀고, 나는 맨발로 바위위에 서서 한낮 태양의 온기를 머금은 너럭바위의 포근함을 즐겼다.  사람들은 밤낮으로 그 바위 위에서 무언가를 도모하고 몰두하고 즐기고 모였다.  수천년을 조용하고 한적하게 ‘거기 그 자리에 있었을’ 거대한 바위 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다니는 모습은 자체로 커다란 변화였을 것이다.  그 바위위 뿐만이 아니다.  주변의 온실재배시설과 귤농장들은 서서히 철수를 준비하며 풍경의 변화를 만들었고, 진입로 공사 예정지 앞에서는 마을 주민들을 위시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구럼비를 뒤로 하여 배수진을 치고 있었다.  천막이 세워지고 마을의 성수였던 할망물은 저항의 보급지가 되었다.  변화는 급격하고 커다랐지만, 이 역시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이모부와 이모는 행복했을까?  오랜 시간을 살아온 마을이 변하고 적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생존의 터전으로 오가던 갯벌이 메워져 땅이 된다고 했을 때, 두 분의 마음은 어땠을까?  거칠기만 했던 먹고사는 일과 불편하기만 했던 공간이 ‘보상과 기대감’으로 ‘보상’받게 된 사실에 기쁘셨을까?  아니면, 직접적인 주수입을 안겨주지 않았어도 쏠쏠하게 먹거리와 자잘한 수입을 안겨주던 동네 앞 갯벌이 없어진다는 사실에 서운하셨을까..  모든 것들이 황망하게 지나가 현재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굳어져버린 이 시점에서 나는 갑작스레 두 분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객관적으로 알려진 해군의 회유는 분명 문제가 있었고 위법적이기까지 했다.  화순과 위미에서 호되게 당하고 난 뒤, 어떻게든 제주 남부에 기지를 만들겠다는 고집은 강정에 와서 상당히 치밀해지고 교활해진 것이 사실이다.  해녀들과 마을회장을 회유하여 마을주민 극히 일부분만을 회관에 소집, 박수를 치는 형식으로 해군기지 마을승인을 얻어낸 모습은 그런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충분히 교활했고 조잡했다.  하지만 나는 궁금해졌다.  구럼비가 사라진다는 것은 강정마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하고 말이다.  적은 수의 합의이지만,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싸움이 본격에 돌입했을 때 해군기지에 찬성한 상당수의 마을 주민들이 있었음을 볼 때, 해군의 회유에 구럼비를 내어 준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회유의 강력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찬성한 주민들이 해군기지의 존재이유와 필요성에 대해 면밀히 고민하거나 그런 이야기들에 이해를 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들이 평생 짊어져 온 삶의 무게, 먹고사는 일의 지리함과 고난함에 지쳐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친 마음이 알량하고 거짓섞인 회유에 보상에의 기대를 안고 삶의 무게를 단번에 내려놓을 기회를 잡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순과 모순이 뒤엉켜 널브러진 곳이다.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농도를 더해간다.  먹고사는 일은 직접노동을 통한 생산보다는 자본을 거머쥔만큼 갖추게 되는 구매력에 의해 수월해진다.  그만큼 직접노동은 가치를 잃어간다.  직접노동을 통한 생산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함에도, 사람들은 직접노동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자본력을 갖추기를 희망한다.  노동을 통한 생산 자체가 좀 더 가치있는 일임을 사람들은 알지만, 자본은 그것을 애써 부정하게 만든다.  평생을 물질하면서, 밭을 가꾸면서 살아도 뭔가 좀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회유는 아픈 허리와 다리를 이제 좀 쉬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희망이었지 않았을까..  알다시피 구럼비는 완벽히 폐쇄되고 어느 이른 봄날 새벽에 울린 폭음을 시작으로 시멘트 구덩이에 매몰되어 버렸다.  힘겨웠지만 힘차게 움직였던 저항, 지리하고 지쳐갔지만 지치지 않았던 오랜 싸움 속에서 나는 평화의 의미를 배웠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열매맺고 퍼뜨리는 동안 그러하도록 가만두어지는 것’임을..  하지만, 우리는 그런 평화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군사기지 없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국가라는 폭력이 지배하는 공간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국가는 평화에의 유지를 폭력으로 이루어나간다.  국가라는 폭력을 벗어난 온전한 공동체안에서의 평화란, 우리에게는 없는 경험이라는 점이 강정에 존재했던 또다른 모순이었다.


  얼마 전, 이모가 살던 그 동네를 돌아보았다.  새만금 방파제의 남쪽 끝은 정확히 내가 뻘밭에 발을 담그고 게를 잡던 곳을 모서리삼아 바로 앞으로 끝나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니 하얗게 말라버린 갯벌은 회색의 먼지를 일으켰고, 키높이까지 자란 이름모를 갯가 식물들만 을씨년스럽게 무성했다.  돌과 흙을 올려 더 높아진 둔덕에는 해산물 포장마차 몇 개만이 자리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버스정류장 표지판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모가 살던 집까지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길은 넓어지고 조금은 반듯해졌다.  차만 있다면, 다니기 훨씬 수월해지고 편리해진 건 사실이었다.  이모부는 지역단위 조합에서 직책을 맡았다고 하고 이모는 부안 읍내로 나아가 이런저런 일을 하신다 했다.  흰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어른들에게 그때보다 행복하냐고는 물을 수 없었다.  사라진 갯벌에 대해서도 어떤 기분인지 물을 수도 없었다.  다만, 노년기 특유의 부드러워진 표정말고는 두 분은 여전히 분주했다.  새만금은 알다시피 국민세금을 들여만든 국가최대의 토건산업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전라북도의 경제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전망과는 달리, 그리고 그러한 발언에 한껏 들뜬 도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땅만 만들어진 채 붕 떠버린 애물단지 비스무레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분명한 계획도 없이, 그대로 두었다면 갯벌의 경제적 가치가 돈으로 얼마 정도가 될 거라는 후회, 모순된 가치의 세상답게 사람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인 돈의 액수로 표현된 뒤늦은 한탄이 덧붙여졌다.  갯벌을 터전으로 살던 사람들이 알량한 보상을 받고 어디론가 떠나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보태어지지 않았다.  더이상 이어나가지 않아도 되었던 고난과 맞바꾼 ‘보상’이라는 건 현 시점에서 보았을때 충분했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는가에 대한 추적도 없다.  남은건 다만, 길다란 시멘트 방파제와 그 위를 한가로이 거니는 무심한 사람들 뿐...



  강정 해군기지가 새만금같이 무책임한 국책사업의 결과물이 될 거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전략상의 위치가 맞느냐는 문제와 추진과정에서의 위법성과 무모함등은 분명 존재하지만, 제주라는 섬의 전략적 위치상 미중관계 사이에서 강정에 만들어지는 해군기지는 일정 역할을 할 것임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볼 수 있다.  다만, 나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이 궁금하다.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에도 꾸준하게 나오는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물질없이는 살 수 없는 그들은 함선들이 떠다니는 바다 앞에서 예전처럼 물질하며 풍성한 수확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물질이 힘들고 밭일이 힘들어 해군이 제시한 보상을 덥썩 받아들인 사람들은 맞바꾼 만큼의 고난을 덜어내고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을의 오랜 공동체가 해군기지 공사와 더불어 갈등을 겪고 변화를 감내한다는 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강정의 싸움은 여전히 지속되겠지만, 자본과 국가폭력의 힘은 너무도 강력해서 지금까지의 흐름에서 읽을 수 있듯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해 낼 수는 없어보인다.  긍정적이지 않은 결론의 뒤켠에서 폭력과 저항에 뒤엉킨 사람들의 삶은 점점 희미해져 각자도생이라는 또다른 간접폭력에 휘말릴 것이다.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말이다.

  해군기지 공사는 꽤 많이 진전되었다.  길다란 방파제는 점점 모습을 갖추어가고 구럼비를 딛고 올라가는 건물들도 모습을 더하는 중이다.  어차피 무모하게 시작한 공사, 마을주민들과의 약속따윈 중요치 않다는 듯, 기지공사 길 건너에 아무렇지 않게 관사아파트도 지어지고 있었다.  강정포구로 내려가는 길에는 식당이 하나 더 늘었고 요즘 잘 올라오는 한치로 물회를 만들어 판다는 안내판도 걸려있었다.  포구의 배들은 여전히 서로의 몸을 묶고 너울댄다.  포구 끝으로 몰려드는 차들은 방파제 끝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차들이었다.  기지 공사과정을 둘러보러  디딘 방파제 끝 테트라포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낚시에 몰두하고있었다.  타인의 취향 위로 한두마디 얹어 볼 생각은 없다.  다만, 모순되고 왜곡된 가치, 그 정도를 더해가는 세상의 흐름은 어쩌면 권력을 거머쥔 소수의 욕심과 개인의 이기심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다수의 무관심이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난 5년간 강정에서 벌어진 일들, 토건족들에 의해 구럼비를 생매장시켜야만 했던 일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제는 쓸모없어져버린 후회 몇마디 글 끄트머리에 얹어본다.       

법환포구에서 강정까지 바닷가를 따라서 구 올레길을 걸어갔지요.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법환포구에서 한 발 한 발 나아갈수록 커다란 기중기와 방파제 등 인공구조물로 가로막힌 강정이 시각적으로 흉물스럽더군요.
강정에 위치한 켄싱턴리조트 앞 경관이 망쳐지고있는거니까 가장 큰 피해를 본거아닐까 싶던데 가만있나봐요~
옛날에, 제가 초등학교때 살던 산골마을을 다 파헤쳐서 바다를 메워 지금의 시화공단을 만들었지요.
저는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렸는데...누군가는 시화공단에서 근로를 해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으니 할 말이 없기는 해요~(이 무기력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