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순 heston

좀 더 멋있게~ 좀 더 알차게~

둘레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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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0. 6. 4.

 

명색이 시인이라고 하면서 시를 써본지가 오래되었다. 시와 관련된 책이나 다른 시인들의 시는 많이 읽으면서 내 시를 쓰는 것에는 인색했다. 작년 이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겨우 한편을 쓸까 말까 할 정도이니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가 부끄럽다.

시를 잘 쓰지 못하는 이유는 게으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심이라는 것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시와 멀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다가온다. 그래서 최근엔 시의 종자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근처 불암산의 둘레길을 걷곤 한다. 

 

 

우선 집을 나서면 지난봄 하얗게 꽃을 피웠던 목련의 나뭇잎들이 손을 흔든다. 이젠 잎을 키울 만큼 다 키운 상태이기에 색깔만 더 진한 녹색으로 바꿀 일만 남은 것 같다. 목련도 그렇지만 그 옆에서 빨갛게 꽃을 피워 눈길을 사로잡았던 철쭉의 푸른 잎들을 보면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봄에는 많은 이들이 예쁘다고 사진을 열심히 찍던 곳인데, 이젠 아무도 눈길을 보내지 않고 있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말 꽃을 피워 자신의 존재가치를 크게 알리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말 일생에서 꽃다운 시절은 얼마나 될까? 

 

이 주변엔 목련이나 철쭉뿐만 아니고, 개나리, 진달래, 영산홍 등의 꽃들이 계절에 맞게 피어 각각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 꽃이 다 떨어져서 그 존재감이 사라졌고, 잎을 키우면서부터는 서로 잘났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꽃의 시절이 지나면 나무도 겸손해지는 것 같다.

 

물론 이 푸른 잎들도 가을이 되면 누렇게 변하다가 떨어져서 땅에 묻힐 것이다. 꽃들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시간이 되면 다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 물론 계절이 바뀌어 나무들은 다시 꽃을 피우겠지만, 사람의 삶에서 '다시'라는 것은 없다. 오로지 시간은 계속 갈 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속도감은 빠르게 느껴진다.

60대라는 나이가 어느 날 나에게 친한 것처럼 찾아왔듯이 어쩌면 70대도 소리 없이 다가올지 모른다. 

 

지난해 나뭇잎의 생을 마감하고 이제는 볼품없이 누워있는 낙엽 사이로 조그만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저 나무들 중 몇 개는 큰 나무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물론 지독한 가뭄이나 바람과 추위를 여러 번 견딘다면 말이다. 사람도 그렇다. 고통이나 인내 없이 큰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 시도 그렇다. 밋밋한 생활 속에서 좋은 시가 나오기는 어렵다.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벌과 나비들이 열심히 꽃 속을 파고든다. 만약 꽃이 없었다면 저렇게 많은 벌과 나비들이 여기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꽃이 있는 곳에 벌과 나비가 있다. 

 

도시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산들이 다 그렇겠지만, 불암산에도 각종 운동기구들을 갖춘 체육시설 공원과 약수터들이 여기저기 있다. 각종 운동기구 중 오늘따라 눈길을 끄는 것은 철봉이다. 철봉에 매달려 보았다. 턱걸이를 간신히 한 개 하고는 매달려 있기도 힘들다. 다시 숨을 고르고 도전했다.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다닐 때 다른 학생들에 비해 턱걸이를 잘하는 편으로 15개는 거뜬히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두 개를 못하고 헉헉거리고 있다. 나이를 먹으며 늘어난 몸무게가 나를 비웃고 있다.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험한 길을 택했더니 오르막도 많고 굴곡도 심하다.

인생도 굴곡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 길처럼 인생 길도 꼬불꼬불하고 힘들 때가 많다. 쉬운 길보다 오히려 힘든 길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며 정도(正道)라는 것을 그려 보았다. 당연히 사람은 모두 정도를 가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범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정도를 걷는다.

정도가 분명 옳은 길인 것은 맞지만, 과연 살아가는데 최선의 길인가를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세상은 정도를 가는 자들이 이끌고 가는 것 같지가 않다. 초한지나 삼국지 등의 책에서 보면 정도라는 것은 오히려 승리와 거리가 멀다. 전쟁에서는 오히려 정도가 필패로 이어지곤 한다. 정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삶에서 정도만 고집해서는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돌 다방이라고 부르는 곳에 와서 돌의자에 걸터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예전에 자주 오던 곳이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한참을 그곳에 있었다.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사람도 자기 자리라는 것이 있다. 남의 자리를 탐내지 말고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영원한 것은 없다. 떠날 때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며 가야 한다. 

 

큰 흔적 없이 왔다가는 길가의 이름 없는 풀이나 들꽃이라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잘 난 사람이라는 기준도 따지고 보면 사람마다 다 기준이 다르다. 무엇보다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인간적인 매력이나 좋은 인간관계가 가장 좋은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누구에게나 숨겨진 다른 면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을 단순하게 재단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