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애호가의 삶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거듭 읽어 느끼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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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8. 11. 20.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학생 시절의 기억이 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학교를 그만 둔 이후, 매일 부산 시내에 있는 시립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었고 인터넷을 쉽게 사용하지 못했다. 따라서 어떤 저자가 좋은 저자인지,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에 대한 정보는 지금에 비해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책을 읽어보며 책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 시절에 나는 어떤 책이 제대로 된 책인지, 어떤 저자가 제대로 된 저자인지에 대한 감식력을 조금씩 발달시키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책을 찾아낸 다음에는 그 책을 떼는것이 중요했다. 예를 들어 수학의 정석을 떼거나 성문종합영어를 떼는 것처럼, 한 분야에서 정평이 나 있는 특정한 책을 거듭 읽고 생각하고 직접 글로 써 보며 완전히 숙달하는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수학의 경우 수학의 정석이 아니라 수학독본을 읽었고, 경문사에서 출판된 수학사’, ‘수학의 기초와 기본개념을 읽었다. 물리학의 경우에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차동우 선생이 번역한 물리이야기를 읽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책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나 자신의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 역시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17살에서 19살까지 스스로 익힌 이와 같은 습관은 그 이후의 나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대학시절에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공부한 적이 거의 없다. 나는 대개 책들이 꽂혀 있는 도서관 자료실 한쪽 끝에 있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나는 책 옆에 공책을 펴 놓고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 나오면 베껴 썼고,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은 글로 썼다. 나에게 도서관은 남다른 공간이었다. 도서관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을 훑어보면서, 내가 이 공간에서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한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졌다.

  

   이후 기술적인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오늘날 나는 휴대전화 하나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적 소통 역시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휴대전화로 인터넷 포털에 접속하면 온갖 종류의 기사들을 읽을 수 있고, 유튜브에 접속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에서 최근 행해진 강의들을 시청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정보의 범람 속에서 행복함보다는 지침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내 나이 서른일곱이니 이제 나도 아저씨가 되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고요함 속에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씀으로써 위안과 행복을 느낀다. 나는 이번에 학예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같은 책을 거듭 읽으며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오늘날의 저자들이 가진 능력은 결코 지난날의 저자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읽어야 할 글들, 접해야 하는 정보들이 너무 많다. 이에 비례해서 저자들 사이에서의 논쟁도 빈번하며, 우리는 이러한 논쟁들의 내용을 다양한 경로들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나에게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주장에 대비되는 나의 주장을 제시해야 하는 이 상황이 낯설고 어색하다. 오히려 나는 내가 학창시절 그랬던 것처럼 내가 떼야 하는몇몇 중요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거듭 공부하여 익히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전공은 과학의 역사와 철학이니, 이에 관련한 몇몇 고전들을 거듭 읽고 생각하여 철저하게 익히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책들을 읽기보다는 과학사의 정석’, ‘과학철학의 정석과 같은 책들을 거듭해서 읽으며 숙달하고 싶다. 이 책들은 해당 분야에 관한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세부 내용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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