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애호가의 삶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자유로운 애호가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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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0. 8. 19.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시선을 나에게서 바깥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중간 중간 적절한 시기에 그 시선을 내 안으로 향했다. 나는 내 밖에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내 의식의 초점을 외부보다는 내부로 맞춤으로써 나 자신의 삶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했다.

 

    나는 오래 전 학생 시절부터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와 나의 사회적인 의무를 이항 대립의 관계로 여겼다. 학생 시절 나의 사회적인 의무는 공부를 하는 것이었고, 나는 공부를 하는 대가로 개인적인 자유를 얻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홀로 산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자연의 비밀,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세계가 작동하는 이치를 탐구하는 것을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탐구가 나의 사회적인 의무와 완벽하게 합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제시하는 시험은 자연에 대한 순수하고 깊이 있는 탐구와는 거리가 있었다. 학교라는 제도는 기본적으로 경쟁에 기반한 제도였다. 학교는 시험이라는 기준으로 학생들의 우열을 판가름하고자 했다.

 

    내가 개인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결정들 속에서 잘 드러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나는 내 개인적인 사고의 자유를 중점적으로 추구했지 다른 친구들과의 우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추구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교 동기들과 선후배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나는 검소하게 생활했으며,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고, 그저 남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쓰고 싶은 글들을 썼을 뿐이다. 나는 내가 받아야 하는 합당한 학점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나의 선택과 실천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적인 의무로서 대학에 입학하여,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장을 받았을 뿐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육군 정보통신장교로 복무하면서도 여유 시간에 나는 항상 홍천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과연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던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대학원생으로서 공부를 해야 하는 나의 의무와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나의 자유가 서로 합치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정식으로 공부했던 2년의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많은 것들을 배운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나는 대학원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나는 취직 준비를 해서 직장인이 되었고, 이전까지 내가 꾸려왔던 삶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한 편에는 나의 사회적인 의무가 있고, 이러한 의무와는 별개로 다른 한 편에 나 개인의 자유로운 삶이 있다. 자유로운 시간에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시청한다. 이러한 애호가적 활동이 나를 즐겁고 기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학계에 한 쪽 발을 담근 상태에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감히 전문가라고, 제대로 된 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공부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전문적인 학자라고 하기에는 자질이 별로 없고 능력도 뛰어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학문의 전문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는 나의 학문적인 역량이 턱없이 부족함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소 어정쩡한 학문 애호가로서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고자 한다. 누군가 나에게 원고나 강의 부탁을 하면 최대한 들어주고,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거나 학회지에 논문을 투고할 기회가 있으면 일단 시도하고 본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는 학문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나는 학문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순수한 애호가로서 내가 학문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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