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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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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20. 8. 22.

   뉴턴에 관한 과학관 특강을 준비하며 예전에 사 둔 리처드 웨스트폴의 책 [뉴턴의 물리학과 힘 : 17세기의 동역학](차동우․윤진희 번역, 한국문화사, 2014년)을 읽는다. 갈릴레오의 역학, 데카르트의 역학에 관한 장을 막 읽었다. 과학사학자 웨스트폴의 문체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고 조경철 박사님께서 번역하신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찾아서 읽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그때 [프린키피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도서관에는 멍청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과학책들이 아주 많았다. 나는 그 시절부터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과학이 있고, 이 교과서에서는 배우지 않는 책들 속의 과학이 있다. 나는 책들 속의 과학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이러한 책들 속의 과학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히 머리가 좋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이해가 안 되어도 그저 책을 읽는 일은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계속 읽다보면 뭔가 좀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시험 문제를 풀이하기 위해서 꼭 그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시험 문제 풀이에 적응하고 이를 숙달하면 된다. 나는 지금껏 내가 치러야 하는 시험들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시험들에 적응했고 그럭저럭 통과해 왔다. 어떤 주제, 어떤 사람에 대해서 글을 쓰기 위해서 반드시 그 주제 또는 사람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특정한 시점이 다가오면 그저 내가 아는 만큼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쓸 수 있다. 이는 잘 하는 사람에게나 못하는 사람에게나 평등하다. 물론 그 글에 대한 평가 결과는 글을 쓴 사람마다 달리 나오겠지만.

 

    조경철 박사님이 번역하신 [프린키피아], 이무현 박사님이 번역하신 [프린키피아], 안상현 박사님께서 쓰신 [프린키피아], 웨스트폴이 쓴 뉴턴의 전기들, 차동우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뉴턴의 [광학], [과학고전선집]에 포함되어 있는 뉴턴의 글들, 박민아 박사님께서 쓰신 데카르트와 뉴턴에 관한 책 등. 나는 이런 책들을 거듭 읽으며 계속 뉴턴으로 돌아온다. 아인슈타인이 [나의 세계관]에서 쓴 글에도 뉴턴이 나오고, 그의 자서전적인 글에서도 뉴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과학관 특별전에도 뉴턴이 나온다.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뉴턴은 중요한 인물인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계속 뉴턴에 대해서 읽고, 생각하고, 그렇게 뉴턴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뉴턴에 대해서 읽고 생각하는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뉴턴이 아닌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주제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없으며, 공원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등 다른 활동을 할 수 없다. 뉴턴에 대해 더 잘 이해하기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어쩌면 나의 삶의 방향을 어느 정도 정한 것이다. 이번에 내가 웨스트폴의 [뉴턴의 물리학과 힘]을 읽는다고 해서 내가 뉴턴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게 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저 뉴턴에 대한 나의 이해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뉴턴에 대한 글을 쓰고, 그에 대한 강의 자료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뉴턴을 더 잘 이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턴을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의 근원을 더듬어 보면, 더 깊은 곳에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자연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나의 욕망을 만난다. 이 욕망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패러데이와 맥스웰, 아인슈타인을 이해하고 싶다는 내 욕망의 근원과도 같다. 나는 그저 이 자연세계, 아름다우면서도 두렵고, 이해할 수 있을 듯 말 듯한 이 세계를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이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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