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애호가의 삶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과학관 학예사의 글쓰기 공간입니다.

30 2020년 11월

30

일상 학문에의 헌신이라는 이념

나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 학위 논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머리가 비범하게 뛰어난 친구들이 있다. 또한, 이들만큼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지는 않아도 제법 좋은 머리에 어린 시절부터 아주 좋은 교육을 받아 우수함을 유지한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두 부류 모두에 속하지 않았다. 나를 특성화시키는 두 단어는 ‘순진함’과 ‘고집’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자연을 단일하고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학과 물리학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그 아름다움을 순진하게 믿은 것이다. 또한 나는 수학과 물리학의 의미를 나 스스로 철저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다. 나 스스로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

댓글 일상 2020. 11. 30.

25 2020년 10월

25

일상 다만 느리게 걸을 뿐

나는 나의 능력에 걸맞지 않은 욕망을 가졌다. 나는 학생시절 고려대학교 김종오 교수가 번역한 [상대성 이론]과 한상훈씨가 번역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지동섭씨가 번역한 [물리 이야기]를 읽으며 아인슈타인에게 매료되었다. 임경순 교수가 편역한 [100년만에 다시 찾는 아인슈타인]에 수록된 아인슈타인의 지적인 자서전을 읽은 것도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글 속에 통합되어 있는 물리학적이고 철학적 통찰이 학생이던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인 능력이, 수학적 물리학적 철학적 고찰을 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학창 시절 나의 주변에는 비범한 지적 능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고, 나는 그 친구들에 비하면 지..

댓글 일상 2020. 10. 25.

26 2020년 09월

26

일상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일

“너는 너의 현실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너의 환상 속에 살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마치 내가 신성한 종교의 탐구자이자 사도라도 되는 양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나는 세상에서 중요한 존재가 전혀 아니었지만(지금도 그렇다), 나는 내가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신비로운 비밀의 숲 속을 탐험하고 있다는 상상에 빠졌다. 비록 우연에 의해서였지만 나는 스스로 과학과 철학이라는 비밀의 숲을 발견했고, 이 숲 속에서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책 속에 쓰인 철학적 언어가 안겨주는 심오함과 깊이는 나를 현혹시키고 만족스럽게 했다. 나를 매료시킨 이 거대한 환상은 그 시절의 나를 붙잡고 내 삶을 이끌었다. 돌이켜보면 지극히..

댓글 일상 2020. 9. 26.

26 2020년 08월

26

일상 과학관의 학예사?

작년에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관하는 학예사 직무교육에 참석한 바 있다. 올해 나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주관하는 학예 전문인력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온라인으로 교육을 진행 중이다. 교육을 통해 민속박물관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재미있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예 분야의 업무에 관한 한, 비록 과학관에서 3년 이상 근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초보다. 사실 과학관에서 학예업무를 배우고 익히기가 쉽지는 않다. 과학기술자료를 모으고, 관리하고, 조사하고, 연구하고, 전시하는 일이 아직까지 중앙과학관을 제외한 다른 국립과학관에서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왜 과학관이 학예업무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물론 ..

댓글 일상 2020. 8. 26.

22 2020년 08월

22

일상 이해하는 것

뉴턴에 관한 과학관 특강을 준비하며 예전에 사 둔 리처드 웨스트폴의 책 [뉴턴의 물리학과 힘 : 17세기의 동역학](차동우․윤진희 번역, 한국문화사, 2014년)을 읽는다. 갈릴레오의 역학, 데카르트의 역학에 관한 장을 막 읽었다. 과학사학자 웨스트폴의 문체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고 조경철 박사님께서 번역하신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찾아서 읽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그때 [프린키피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도서관에는 멍청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과학책들이 아주 많았다. 나는 그 시절부터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과학이 있고, 이 교과서에서는 배우지 않는 책들 속의 과학이 있다. 나는 책들 속의 과학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이러한..

댓글 일상 2020. 8. 22.

19 2020년 08월

19

일상 자유로운 애호가의 윤리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시선을 나에게서 바깥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중간 중간 적절한 시기에 그 시선을 내 안으로 향했다. 나는 내 밖에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내 의식의 초점을 외부보다는 내부로 맞춤으로써 나 자신의 삶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했다. 나는 오래 전 학생 시절부터 나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와 나의 사회적인 의무를 이항 대립의 관계로 여겼다. 학생 시절 나의 사회적인 의무는 공부를 하는 것이었고, 나는 공부를 하는 대가로 개인적인 자유를 얻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홀로 산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자연의 비밀,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세계가 작동하는 이치를 탐구하는 것을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탐구가 나의 사회적인 의무와 완벽하게 합치하는 ..

댓글 일상 2020. 8. 19.

17 2020년 08월

17

일상 글쓰기에 대한 욕망

사람들은 각자 자기 고유의 강한 욕망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음식에, 어떤 사람은 차에, 어떤 사람은 음악에 대해 강렬한 욕망을 갖는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끝까지 그 가게에 찾아가서 음식을 맛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음악가의 음반이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 순간부터 자나 깨나 그 음반을 듣는 생각만 하며 지내다 결국 그것을 듣고 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옷에 별로 관심이 없다. 크기가 맞고 너무 추레하지만 않으면 거리낌 없이 입고 다닌다. 음식도 웬만해서는 다 잘 먹는다. 딱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이 없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이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도 크지 않다. 나는 좋은 컴퓨터, 좋은 ..

댓글 일상 2020. 8. 17.

07 2020년 08월

07

일상 어렵게 어렵게, 겨우 겨우

중학교 1학년 때 이문열씨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나의 독후감은 이 소설의 핵심을 전혀 제대로 짚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정에 넘쳐서 독후감을 썼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이문열씨의 소설에서 제법 감동을 받았던 나는 이문열씨의 소설들을 찾아서 한 권 한 권씩 읽어 나갔다. 그렇게 그의 소설들을 제법 읽고 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예전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하게 독후감을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것을 잘못 이해하고 그것에 엉뚱하게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파고들어 시간이 제법 지난 후에야 겨우 겨우 그것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 이는 나와 같..

댓글 일상 2020.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