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지민이의 식객 2020. 10. 10. 07:37

부여 장하리라는 곳은 궁남지가 있는 부여읍에서도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독립지사가 많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장하리가 속한 지역은 장암면으로 구령촌 일대는 구룡평야에 해당하며 유물·유적으로는 정암리 와요지(사적 제373호)와 장하리 삼층석탑(보물 제184호), 흥학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등이 있는 곳입니다. 

 

 

우연하게 가는길에 장하리 삼층석탑을 발견하고 멈추어보았습니다. 이곳에도 사찰이 있었는지 장하리사지라고 명명이 되어 있네요. 조금 특이합니다. 보통 사찰의 이름이 세글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 사찰의 이름은 네글자였습니다.  

부여에 자리한 대부분의 사찰은 불타버리고 대부분 이렇게 사지로만 남아 있습니다. 패망한 국가의 아픔이기도 하며 그 문화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할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부여에는 석탑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석탑은 정림사지석탑(국보 제9호)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건립되어 있고 그 형식을 충실히 모방한 작품으로 고려시대에 건립된 백제계석탑에 소속되는 대표적인 탑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적지 않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1931년에 초층탑신에서는 범문다라니경(梵文陀羅尼經) 단편과 은제합(銀製盒)·목제합(木製盒)·상아제불상(象牙製佛像)·목제소탑(木製小塔)·수정·옥·은제환(銀製環) 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잘생긴 모습의 석탑입니다. 탑의 각 부재의 돌다듬기 수법이나 구조, 탑 안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들에 의하여 볼 때 이 석탑의 조성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깨지고 적지 않게 마모가 되었지만 그 형태는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광대한 옥개석을 시각적으로 보완하여 낮고 좁은 2, 3층의 탑신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석주는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배흘림기둥으로 되어 있어 탑신이 전체적으로 위가 좁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여에 자리했던 백제는 사라졌지만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에도 부여는 있었습니다. 부여의 장하리 삼층석탑은 오랜 시간을 이자리에서 견디며 저 같은 사람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