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지민이의 식객 2020. 10. 16. 07:25

어쩌다보니 밥을 먹는 것보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필수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부가 '전국적 대유행' 가능성을 우려해 그동안 수도권에 적용하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이날부터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도 23일부로 잠정적으로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밀집도가 높은 수도권부터 3단계 먼저 올리고, 지방 격상에도 대비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3단계가 되면 필수만을 제외하고 모두 닫아야 되기 때문에 실업율의 급등뿐만이 아니라 경제의 타격도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이너스 두 자리수의 경제성장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될까요. 

마스크 의무착용과 함께 개인방역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실내로 들어갈 경우는 이런 부분은 확실하게 체크를 해야 합니다. 

 

운영이 중단되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의 발열 체크는 바로 오른손목 발열체크를 통한 후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QR코드도 가능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과 같은 공공시설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시전은 23일부로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으며 언제 개재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백제금동신발, 1,000리를 가다라는 기획전시전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만나볼 수 없다습니다.  

백제의 세력이 있었던 화성, 서산 부장리, 공주 수촌리, 공주 무령왕릉, 고창 봉덕리, 고흥 길두리, 나주 복암리, 익산 임정리, 세종 나성동등에서 모두 백제 금동신발 출토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발은 지역마다 역사마다 다른 형태로 진화를 해왔습니다. 네덜란드와 일본과 같은 경우 물이 항상 있었던 곳이라서 나무로 만든 나막신이 자연스럽게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역사속에서 시대 지역에서 신발은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기능뿐 아니라 그 사람의 신분 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왔습니다. 궁남지에서 출토된 짚신을 보면 앞쪽 반이 접힌 채 출토되어 짚신의 뒷면을 볼 수 있는데 부들로 짚신을 만든는 것은 백제 짚신의 특징입니다. 

신발이라는 것은 발을 보호하기도 하면서 다른 동물과 달리 척박한 땅과 차가운 눈 등 거친 환경에서 발을 보호해주었으며 인간을 멀리까지 이동하여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백제 부여 능산리 유적같은 곳에서는 나무신도 출토가 되었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백제금동신발로 3장의 금동판, 좌측판, 우측판, 바닥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좌측판과 우측판을 발등과 뒤꿈치에서 못으로 고정하여 결합한 것이 특징입니다. 

금동신발에 탈부착으로 할 수 있는 철제 못신은 신발 밑창에 붙여 사용하는 신발 부속구로 미끄럼을 방지하는 기능을 하였다고합니다.  딱 보아도 지금의 아이젠과 비슷한 모습으로 사람의 무게를 견디기에 충분한 강도의 철제 못신이었다고 합니다.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었던 전시전의 공간은 1부, 2부, 3부로 구분이 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한성백제 시기 지배력 확대를 위해 지방 세력에 내려준 금동신발을 전시하고, 2부에서는 백제가 영산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한 시기의 금동신발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3부에서는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을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을 해두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떻게 변화가 될지 하루하루, 1주가 지났을 때 예측하기가 힘들지만 국민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이시기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쉽지만 역사를 만나는 시간은 뒤로해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