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문화·여행

세상다담 2011. 5. 26. 00:08

 

 

 

 

 

 

 

 

   체자리는 자기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슈호프가 들어온지도 모르고 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하-123번 죄수이다. 수용소 생활을 이십 년째 하고 있는 근육이 굵은 사람이다. 지금 그는 죽을 먹고 앉아 있다.

   「바체카! 그렇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체자리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고 있다. 「객관적인 측면에서는 에이젠슈타인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반 뇌제」만 보더라도 말입니다, 천재적이지 않습니까? 친위대원들의 횃불춤 장면이라든가 사원에서의 장면을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너무 과장되어 있어요!」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다 말고, 하-123번이 강경한 어조로 말한다. 「지나치게 예술적인 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에요! 빵 대신 후추와 양귀비씨만 잔뜩 뿌려놓은 거나 매한가지예요! 게다가 혐오스러운 그 정치 이념이란 것은 말이오, 개인의 전제정치에 대한 변호로 일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삼대에 걸친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기억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냔 말이오!」(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죽을 먹고 있다. 저렇게 먹으면, 먹으나 마나가 아닌가.)

   「하지만, 무슨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까……」

   「오호라, 무슨 해석이 가능하냐구?! 천재라고 하는 말은 빼야지요! 상전이 시킨 일을 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적당한 말이 없어요. 진짜 천재는 자고로 압제자의 구미에 맞추느라 왜곡해서 해석을 하는 일은 없어요!

   「음, 음」교양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중단시키기는 송구스러운 일이기는 했지만 슈호프는 어쩔 수 없이 헛기침을 했다. 슈호프라고 마냥 서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체자리는 몸을 돌리더니 슈호프를 쳐다보지도 않고 마치 죽그릇이 혼자 저절로 날아오기라도 한 듯, 손을 뻗어 자기 죽그릇을 받아들면서 여전히 토론에 열중이다.

   「그러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예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123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책상을 탁탁 쳤다.

   「천만의 말씀이요. 그 어떻게라는 것이 우리에게 선한 감정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게 다 무슨 쓸모가 있단 말입니까!

   슈호프는 죽그릇을 건네주고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체자리가 혹시 담배를 권하지는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체자리는 슈호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등뒤에 슈호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슈호프는 돌아서서 가만히 그곳을 나왔다.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100~102쪽,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민음사, 2010.7.15. (1판 32쇄)

 

 

 

 

   그 외에도 솔제니친은 예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단순하고 평범한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솔제니친은 예술과 문학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서 <예술 과잉은 이미 예술이 아니며> 그것은 마치 <빵 대신에 후추와 겨자만 먹고 살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고 논평하고, 에이젠슈타인의 「이반 뇌제」라는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하면서, <혐오할 정치 이념, 개인 전제의 변호로 일관되어 있는 작품>이며 <삼 대에 걸친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기억을 우롱한 작품>이라고 비난하고 그런 작가는 <상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여념이 없는 아첨꾼>이며 <진짜 천재는 압제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해석을 왜곡하거나 하지는 않는 법이다>라고 피력한다.

 

   즉, <예술이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가 문제가 된다>고 하는 입장에 대해, <‘어떻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어떻게>라는 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심을 보여주었던 20세기 초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 상징주의자들, 추상주의자들에 대해 넌지시 비난하고 있으며, 순수예술이라는 허상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난의 어조를 높이고 있다. (...)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217쪽(작품해설, 이영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민음사, 2010.7.15. (1판 32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10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민음사

 

노벨문학상 작가 솔제니친이 직접 경험했던 노동수용소의 생활을 소재로 쓴 소설. 평범한 한 인물 '이반 데니소비치'의 길고 긴 하루 일상을 가감없이 따라가며 죄없이 고통당하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지배권력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인간군상이 등장해 스탈린 시대 허랑한 인물상, 종교, 인성의 문제 등을 에둘러 역설한다.

 


 

     

잘 보았습니다. 조용히 흔적 남기고 갑니다..그럼...
박태광 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
은근 어렵네요..요즘에 담아갑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이든 님, 제가 딱 요 부분만 실어서 그래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랍니다. ^^*
그렇군요..알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사상[思想]이란
철학[哲學]이란
예술[藝術]이란 모두가
고독의 길인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스쳐지나갈수 없는 길...

진정한
사상이나
철학 예술이란
어려운 환경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나봅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노동수용소에서의 처절한 하루 하루는
차라리 차라리
새로움을 동경할만도 하지만..

어떻게 이순간을 피해갈것이냐가 아닌
무엇을 하면 이 순간이 보람될가를 알아가게 하지요

바로
세상에 한촉의 촛불을 밝혀내는
의로움의 길이지요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한 일상이 되세요
완전초보 님, 오랫만이세요. 잘 지내시죠?

사상과 철학, 예술이 모두 고독의 길이라는 것...
전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물론 고독과 고통과 고민이 더 깊은 생각을 낳겠지만,
'나'에 머물지 않고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사상, 철학, 예술이라면...
하루하루가 꼭 처절하지만은 않을거야... 에궁... 결국 같은 말인가요? ^^*

네, 예술이란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이란 고민이...
세상에 한촉의 촛불을 밝혀내는 의로움의 길이겠죠?
'그 어떻게라는 것이 우리에게 선한 감정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게 다 무슨 쓸모가 있단 말입니까!'

본문인가요? 참 중요한 내용입니다. 예술이 왜 필요할 까요?

우리 그림스승께서 예술엔 삶의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에 예술을 한다 하데요.
예술은 클림트처럼 광기가 필요하고, 어쩌면 고흐신발처럼 처절하게 고독하고 찌들어야 하고, 피카소처럼 다면적 눈을 가져야 보여지는 것 만이 예술일까? 한 때는 여러 면에서 예술을 바라보았지만.
나이 먹어가면서 느낀 것은..예술을 하면서 맑아지고 선해지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고
변화시키고...아름답게 승화하는 삶을 자극해 주고..하는 것들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손모아 님, 참 고운 생각이세요. ^^*
더불어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했던 '성공의 정의'도 떠올려 봅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