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심리

세상다담 2011. 7. 25. 00:03

  

   

    

  이곳에서 내가 행한 최초의 성찰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말해야 할지 어떨지 나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보통의 일반적인 것에서 유리되어 있어, 모든 사람의 취향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택한 기초가 충분히 견고한지 어떤지를 사람들의 판단을 받기 위해 그것을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서는 아주 불확실하다고 알고 있는 의견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그것에 따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오래 전부터 인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다.

 

  하지만 당시 나는 오직 진리 탐구에만 전념하기를 원하고 있었으므로 이와는 정반대의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있는 것은 모두 절대적인 오류로 간주하여 폐기해야 하며, 그 다음에 내 신념 속에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남아 있는지 어떤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우리의 감각은 때로는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상상하게 하는 대로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정하려고 했다. 다음에 기하학의 아주 단순한 문제에 관해서조차 추론을 잘못하여 오류추리(잘못된 추리)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범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전에는 논증으로 간주하고 있던 추리를 모두 허위로 보고 폐기해 버렸다.

 

  끝으로,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생각은 모두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더구나 이 경우 참된 것은 하나도 없음을 고려해서, 나는 그때까지 자신의 정신 속에 들어와 있던 것들을 모두 꿈의 환상(幻想)과 마찬가지로 ‘참’이 아니라고 가정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 직후에 다음과 같은 점에 생각이 미쳤다. 즉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하려하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필연적으로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라는 이 진리는 회의론자들의 터무니없는 상정(想定)이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고 확실한 것임을 인정하고, 이 진리를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망설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검토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확인했다. 어떤 신체도 내가 갖고 있지 않다는 걸 가상할 수가 있었고, 또한 내가 그 속에 존재하는 어떤 세계나 장소도 없다고 가상할 수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상할 수가 없다는 것을. 오히려 내가 다른 것들의 진리성을 의심하려는 생각 자체가 극히 명증적이고, 극히 확실하게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귀결된다. 반대로 만약 내가 ‘생각하기’를 그만둔다고 한다면 가령 이전에 상상했던 모든 다른 것들이 참[眞]이었다고 해도 내가 존재했다고 믿을만한 그 어떤 이유도 없어진다. 이러한 것으로 해서 나는 다음의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나의 실체이며, 그 본질 내지 본성은 생각한다는 것에만 있을 뿐, 존재하기 위해서는 하등의 장소도 필요치 않고, 어떠한 물질적인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고. 따라서 나, 다시 말해서 나를 지금 존재하게 만들고 있는 혼(魂)은 신체[물체]로부터 완전히 구별되어, 게다가 신체[물체]보다 더 쉽게, 가령 신체[물체]가 없었다고 해도, 완전히 지금 상태대로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 방법서설, 58~62쪽, 데카르트, 범우사, 2005.3.25. (초판 2쇄)

 

 

♣ 방법서설 (方法序說, Discours de la méthode(불))

1637년에 간행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方法序說)>은 종종 사상영역에서 ‘인권선언’으로 불리어왔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이성을 정확하게 끌어내어 모든 학문에서의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 방법의 시도가 광학․기상학․기하학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학문에 관한 여러 가지 고찰, 저자가 탐구한 방법의 주요한 규칙 등 제6부로 구성되어 있다. ※ 원제 :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여러 가지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의 서설 (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erité dans les sciences)》

  

♣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불), Renatus Cartesius(라), 1596. 3. 31 ~ 1650. 2. 11)
프랑스의 대표적 수학자, 중․근세철학자이다. 데카르트 좌표계로 대표되는 해석기하학을 창시하였고, 방법적론적 회의를 거쳐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제1 원리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틴어: Cogito ergo sum, 프랑스어: Je pense, donc je suis)의 명제를 선언하여 근대 이성주의 철학의 정초를 닦았다. 수학자 데카르트는 처음으로 방정식의 미지수에 x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위키백과)

 

 

  

  방법서설 - 8점
  데카르트 지음, 김진욱 옮김/범우사

 

1637년에 간행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方法序說)>은 종종 사상영역에서 ‘인권선언’으로 불리어왔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이성을 정확하게 끌어내어 모든 학문에서의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 방법의 시도가 광학․기상학․기하학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학문에 관한 여러 가지 고찰, 저자가 탐구한 방법의 주요한 규칙 등 제6부로 구성되어 있다.

 


 

     

좋은 정보 고마워요.놀러 오세요
근사모 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
사진 좀 퍼갈께요. 미리 말씀드리고 했어야 하는데....
저장하고 생각이 나서... 죄송합니다.-_-
퍼가기 안되면 바로 내릴께요
강수호 님, 괜찮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데카르트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겼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책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