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미래

세상다담 2015. 4. 16. 23:56

 

 

 

 

 

우리는 총 대신 국화를 들고...

 

 

아버지가 말했다.
변화가 다가오고 있어. 어떤 변화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변화를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분명히 변화가 오고 있어. 뭔가가 들떠 있는 느낌이야. 사람들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거야.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빛이 그의 억센 구레나룻을 비췄다.

그는 바닥에서 돌맹이 몇 개를 모아 엄지손가락으로 공깃돌처럼 퉁겼다.
“난 모르겠어. 당신 말처럼 변화가 오고 있는 건 맞아. 오하이오 주 애크런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얘기를 들었지. 고무 공장에서 싼 임금 때문에 산골 사람들을 데려왔다더군. 그런데 이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해 버렸어. 그래 가지고 엄청난 일이 벌어진 거야. 가게 주인이나 퇴역 군인 같은 사람들이 전부 소리를 질러 댔다더군. ‘빨갱이!’ 그 사람들은 애크런에서 노조를 몰아낼 작정이었대. 목사들도 그 문제에 대해 설교를 하고, 신문들도 아우성을 치고, 고무 회사 쪽에서는 곡괭이도 준비하고 독가스도 샀다지. 젠장, 누가 봤으면 그 산골 청년들이 악마인 줄 알았을 거야!”

 

그는 말을 멈추고 돌멩이를 더 모아 손가락으로 퉁겼다.
“그런데…… 지난 3월, 어느 일요일에 산골 사람 5000명이 교외로 칠면조 사냥을 나갔지.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총을 들고 시내를 행군했단 말이야. 그렇게 나가서 칠면조 사냥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들어왔어. 그게 다야. 그런데 그 후로는 전혀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대. 시(市) 위원들은 곡괭이를 회사에 돌려주고, 가게 주인들도 그냥 가게를 돌보고. 몽둥이에 맞은 사람도, 누명을 쓴 사람도, 다친 사람도 없었지. 죽은 사람도 없었고.”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말했다.
“여기 사람들도 점점 못되게 굴고 있어. 천막촌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야, 우리도 전부 총을 갖고 있잖아. 우리도 칠면조 사냥 클럽을 만들어서 일요일마다 모임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들은 발을 불안하게 움직이며 몸의 무게를 한쪽 다리에서 다른 쪽 다리로 옮겼다.

 

 

 

우리는 총 대신 국화를 들고... 총 대신 국화를 들었을 뿐인데도...

 

* 글 : 분노의 포도2, 247~248쪽, 존 스타인벡, 민음사, 2013.11.27. (1판19쇄)

* 사진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광화문 분향소와 서울광장, news1, 2015.4.16.

 

 

 

 

  분노의 포도 2 - 10점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민음사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대공황 시기 미국의 참혹한 현실을 직시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약속의 땅을 향한 고통스러운 여정과 절망 속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생명력과 희망의 가능성이 담겨있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말 실업자가 천만 명이 넘은 미국의 대공황 시기다. 살인죄로 감옥살이를 하다 가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톰과 이주노동자가 된 그의 가족이 중심이 되어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작가는 한 가족의 경제적 고통과 비참함을 미국의 현실과 함께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내면을 치밀하게 포착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인간의 존엄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