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6. 12. 6. 23:39





미리암이 떠난 이후 나는 일주일이 넘도록 혼자 지냈다. 정교수로 임명된 이래 처음으로 수요일 수업조차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인생의 학문적 정점은 논문을 준비하고 책을 출간하던 시절이었다. 그 모든 것이 이미 십 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학문적 정점? 혹시 그냥 정점이 아닐까? 어쨌든 당시엔 내 존재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후로 내가 집필한 것이라고는 『19세기 문학저널』이나 간혹 더 드물게는 내 전공 분야와 관련된 시사가 있을 때 『마가진 리테레르』에 기고한 짤막한 칼럼들이 전부였다. 나의 칼럼들은 명료하고 예리하고 재기가 넘치는데다 마감 기일을 절대 어기지 않았던 만큼,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한 인생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것일까? 하기는 무엇 때문에 한 인생이 정당화되어야만 한단 말인가? 


동물들 전부가, 그리고 압도적인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당화의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들은 단지 사니까 사는 것이다. 그뿐이다. 이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들은 아마 죽으니까 죽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으로 고민 끝이다. 나는 위스망스 전공자로서 적어도 이들 보다는 조금 나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 (55~56쪽)


잠에서 깨어나 피가 날 때까지 발을 긁어대는 광경을 연출하던 무수한 밤들 중 어느 날 밤, 나는 문득 일어나 창가로 갔다. 새벽 세시였지만, 파리가 늘 그렇듯 도시의 일부만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창문을 통해 수백여 채의 그만그만한 건물들 틈에 삐죽 솟은 십여 채의 고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건물들 안에는 수천 개의 아파트와 수천 개의 ‘가구’가 있으리라. 가구라고는 해도 파리의 가구당 인구수는 대개 한 명 내지 두 명이었으며 그나마 한 명으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이 시간, 저 대부분의 감옥들은 불이 꺼져 있었다. 


나에게는 저기서 살고 있을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자살을 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심지어 그럴 이유가 적기까지 했다. 나는 실질적인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았으며,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심지어 존경까지 받는 세계-분명, 극도로 문이 좁은 세계이다-의 일원이었다. 물질적 측면에서도 불평할 거리가 없었다. 내게는 죽을 때까지 프랑스 평균 임금의 두 배가 넘는 고소득이 보장되었다. 그 대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그럼에도 나는 자살을 분명히, 가깝게 느꼈다. 단지 비샤*가 말한 “죽음에 저항하는 활동의 총체”가 서서히 쇠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단순한 생의 의지만으로는 평균 서구인의 삶에 점철된 고통과 근심의 총체에 저항하는 것이 내게는 역부족이었다. 나로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까.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인류애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물며 역겹기까지 했다. 나는 인류를 전혀 나의 형제로 여기지 않았으며, 나의 동향인들이나 나의 옛 동료들이 인류의 극히 제한된 한 부분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쾌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이 인간들이 나와 흡사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실은 바로 이 유사함이 내가 그들을 피하는 이유였다. 


결론적으로, 여자가 필요했다. 고전적이고 검증된 해결책이었다. 물론 여자도 인간이지만 조금 다른 유형의 인류에 속했다. 여자는 삶에 어떤 이국적인 향취를 가져다 준다. 같은 시기에 위스망스도 의문을 품어보았음 직한 문제였다. 그때 이후로 상황이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 아니면 차이점-하지만 이것조차 충분히 과장된 것이다-이 불확실하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완화되고 서서히 마모된 것인지도 모른다. 위스망스는 결국 다른 길을 걸었다. ‘신神’이라는 보다 과격하게 이국적인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길 또한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250~252쪽) 


* 마리 프랑수아 자비에 비샤. 프랑스 해부학자, 생리학자. 인체 조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조직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했으며, 생명을 죽음에 저항하는 활동의 총체로 보았다.


: 복종, 미셸 우엘벡, 문학동네, 2015.7.24. (1판 2쇄)



내 존재의 정당성... 

작가의 말이 옳다. 「무엇 때문에 한 인생이 정당화되어야만 한단 말인가?」

내 존재가, 내 삶이 왜 정당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내 존재와 내 삶의 이유...

미셸 우엘벡이 제시하는, 여자? 종교? 

아니다. 내 삶의 수단이 될 수는 있겠지만 내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나는 오늘을 살아가며, 나는 단지 존재한다.

나를 위해서, 내 인생을 위해서...





복종 - 10점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문학동네


극우 정권에 대한 위기감에서 좌파와 우파 정당들이 이슬람 정당과 연합하여 프랑스 사상 초유의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프랑스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정교분리 원칙이 깨지고, 공립학교가 이슬람 학교로 바뀌면서 교수들이 개종을 하고, 여학생들은 베일을 쓰게 된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면서 여성들은 점차 가정에 편입되고 여성 노동력의 제한은 곧 실업률 감소로 이어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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