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세상다담 2016. 12. 20. 23:12



저자 후기

망각에 의해 본연의 모습 되찾은 《농담》 

- 작품에 대한 평가와 잘못된 번역에 대하여


" 내게 있어 역사적 상황은 복수, 망각,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사와 인간의 관계, 본래 행위의 소외, 섹스와 사랑의 분열 등

나를 매혹하는 실존의 주제를,

새롭게 극도로 날카로운 빛으로 내리쬘 때만이 의의가 있다. "


밀란 쿤데라


작가 자신이 인정하는 것만이 ‘작품’


(...) ‘작품’에 대한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가가 쓴 모든 것을 작품으로 보는 것. 이 견지에서 본다면, 예컨대 유명한 플레야드 총서에서 나오는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여기에는 작가의 편지와 일기를 포함하여, 작가가 남긴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다. 또 하나는 작가의 자신이 저울에 달았을 때, 스스로 인정할 만한 것만을 작품으로 보는 견해다. 나는 언제나 후자의 견해를 열렬히 옹호해 왔다. 어떤 작품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으로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내 ‘작품’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는 ① 미숙한(청년기의) 것, ② 성공하지 못한 것, ③ 단순히 부수적인 것을 들 수 있다. (...)



출판 가치가 있는 작품 아홉 - 《농담》외


그럼 내가 생각하기에 출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러시아의 침공 후 고독 속에 물러나 있던 나는, 내 자신에게 중요한 유일한 것은 장편소설임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문예 장르 속의 단순한 하나의 장르로 보지 않았다. 이것은 내게 있어, 모든 예술(유럽의 새 시대를 함께 형성한 예술) 속에서 음악과 함께 자기 존재를 내건 독립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소설의 기법》에 실린 첫 에세이의 마지막 말로 표현했다. “나는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가? 신에? 조국에? 민족에? 개인에? 대답은 성실한 만큼 우스운 것이다. 나는 세르반테스의 과소 평가되어 온 유산 이외의 아무것에도 의존하고 있지 않다.” 내가 일찍이 쓴 것 가운데 유일하게 중요하고, 재판을 허용하는 유일한 것은 나의 장편소설이다. 작곡가의 예를 따라, 그것들에 작품 번호를 붙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작품 1. 《농담》(Žert), 1967.

작품 2. 《우스꽝스런 관계》(Směšné lásky), ~1974.

작품 3.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Život je jinde), 1970.

작품 4. 《작별의 왈츠》(Valčík na rozloučenou), 1971.

작품 5. 《웃음과 망각의 책》(Kniha smíchu a zapomnění), 1978.

작품 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Nesnesitelná lehkost bytí), 1984.

작품 7. 《불멸》(Nesmrtelnost), 1990.


이 일련의 장편소설 외에, 무조건 마음에 들고, 출판하고 싶은 책을 두 권 썼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비(非)장편소설도 소설 기법과 결부되어 있다. 하나는 디드로를 찬미한 희곡 《자크와 그 주인》(Jakub a jeho pán)으로, 이것은 장편소설 작가인 내게 있어서는 특별히 의미가 깊은, 디드로의 장편 《운명론자 자크》의 자유로운 번안이다. 또 하나는 대부분이 프랑스어르 쓴 일곱 편의 에세이를 모은 것으로, ‘습작’에서 따온 《소설의 기법》(L'Art du Roman)이란 제목으로 1986년에 출판되었다. 출판할 만한 나의 책은 이것뿐이다.


여기서 《농담》에 대해서 한마디하겠다. 이 작품의 스케치를 시작한 것은 1961년에 접어들어서라고 생각된다. 탈고한 것은 1965년 12월. 초고는 약 1년 동안 검열에 걸려 있다가 최종적으로는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출판이 허가되었다.  이 장편소설은 1967년 봄에 햇빛을 보았고, 그후 계속하여 두 번 출판되었다. 1968년 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작가동맹상’을 받았다. 나는 친구인 감독 야로미르 이레슈를 위해, 이 장편을 시나리오로 각색했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나는 지금도 이 영화를, 젊음을 잃지 않은 우수한 작품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은 나의 모든 다른 책과 함께 발매 금지되었고,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이때 이후 《농담》이 체코어로 처음 출판된 것은 1989년, 토론토의 슈크볼레츠키 부부의 출판사에서였고, 그곳에서는 과거 15년 동안 내 모든 장편소설을 출판해 왔다. (...)



잘못된 번역 바로잡아 다시 태어난 《농담》결정판


(...)



역사적 상황 망각에 의해 오히려 본연의 모습 되찾은 《농담》


내가 불만스러웠던 것은 번역만이 아니다. 비평가들의 해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아마 체코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한마디해 두어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통찰력이 아주 날카로운 몇몇 비평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농담》에 대해서 1967년에 오페리크 포홀스키, 바츠라프체르니 또는 코주민 등이 쓴 것들이다. 여기서 나의 장편소설은 결코 정치적 팸플릿과 같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실존의 장편소설’(원래 이 말은 코주민이 《호스트 드 돔》지에 기고한 비평문의 제목이다)로서 다루어졌다. 1967년의 림과의 대화에서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나는 15년 후의 파리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되풀이했다. 


역사적 상황이 이 소설 본래의 테마는 아니다. 내게 있어 역사적 상황은 복수, 망각,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사와 인간의 관계, 본래 행위의 소외, 섹스와 사랑의 분열 등 나를 매혹하는 실존의 주제를, 새롭게 극도로 날카로운 빛으로 내리쬘 때만이 의의가 있다. 60년대 후반의 문학 비평에 있어(당시 체코의 문학 비평은, 나중에 내가 국외에서 인정한 것처럼,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자세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그동안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중요한 문예잡지와 문학에 대한 진지한 에세이를 싣던 잡지가 모두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문화의 권위는 저널리즘이나 대중 매체의 권위에 길을 양보하고, 시사 문제의 위협적 요소는 문예 비평에까지 침투하고 말았다. 《농담》은 어디서나 평가의 대상은 되었으나(다름아닌 러시아의 전차에 짓밟힌 나라의 작가를 어찌 칭찬하지 않으리오!), 유일하게 뛰어난 클로드 루아의 비평을 제외하고는, 당시 《농담》에 대한 모든 비평은 천박한 정치적 코멘트나 서정적 절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운명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에서 비롯된 모든 예술의 운명이고, 바츠리크와 하벨, 브란디스와 미워슈, 콘위츠키와 프라발 또는 키슈의 운명이기도 했다. 단순히 시사적(時事的)이고 정치적인 영역으로 좁혀진 예술 작품은, 이렇게 하여 자동적으로 현대 예술의 상황에서 제외되어 갔다(정치적 영역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예술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중앙 유럽의 예술에 있어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따라서 장편소설에 있어 이보다 나쁜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망명 초부터 이러한 저널리즘의 양상에 대해, 때로는 노여움을 포함시켜, 일관된 태도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옹호했고, 이것이 마침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데 대해 자랑스런 만족을 느끼고 있다. 


내 책의 새로운 출판자들은 모두 《농담》으로 몰려, 다시 간행하고 있다. 1982년에는 미국에서, 1983년에는 영국에서, 1984년에는 스페인에서, 1986년에는 이탈리아와 브라질에서, 1987년에는 독일에서, 1988년에는 네덜란드에서. 그래서 《농담》은 프라하에서 초판 발행된 후 15년, 20년이 지나, 세계 각국에서 본래의 예술적, 문학적 길을 걷게 되었다. 따라서 발행 부수도 많아져 오늘날에는 포켓판의 형태로 서적 시장에 정착하게 되었다. 1985년 프랑스어 판 출판에 즈음하여, 아라공의 서문을 대신한 나의 저자 후기는, 《농담》의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하고 있다. “오늘날 시사 문제를 반추하는 사람들은 이미 프라하의 봄과 러시아의 침공을 잊고 있다. 이 망각에 의해, 《농담》은 역설적으로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장편소설이고, 장편소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 농담, 저자후기(435~444쪽) 중에서, 밀란 쿤데라, 문학사상사, 1996.7.15(초판 5쇄)



농담 - 8점
밀란 쿤데라 지음/문학사상사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밀란 쿤데라는 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들』 두 권만 고국 체코에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10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민음사

역사의 상처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 보지 못한 현대인, 그들의 삶과 사랑에 바치는 소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어느 쪽이 옳은가. 니체의 영원한 재귀는 무거움이지만 실제요, 진실이다. 반면 우리의 삶은 단 한 번이기에 비교도 반복도 되지 않아 깃털처럼 가볍다. 질투 없이는 사랑할 수 없는 약한 테레자, 사비나의 외로운 삶. 토마시에게 테레자는 무거움이요 사비나는 가벼움이다. 일인칭이면서 전지적이요 직선이 아닌 반복서술, 그리고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의 와해, 그런 메타포에서 탄생한 인물들. 쿤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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