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영혼

세상다담 2016. 12. 26. 23:33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는 등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 무렵, 그에게 암이 찾아왔다. 환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오던 서른 여섯 살의 젊음 의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아무도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었지만, 불확실한 앞날을 생각하면 온몸이 마비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 그리고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환자? 과학자? 교사? 생명 윤리학자? 아니면 에마의 말대로 신경외가 의사 복귀? 집에만 있는 아빠? 작가? 대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가? 


의사 시절 나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이 마주친 문제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었고, 바로 이런 순간을 그들과 함께 깊이 파고들기를 원했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던 청년에게 불치병은 완벽한 선물이 아닌가? 죽음을 실제로 겪는 것보다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들지, 또 얼마나 많은 영역을 탐구하고, 조사하고, 정리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의사의 일이란 두 개의 선로를 잘 연결해서 환자가 순조로운 기차 여행을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이토록 혼란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인류의 양심을 벼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 영혼을 들여다보니, 연장은 너무 약하고 불은 너무 뭉근해서 인류의 양심은커녕 내 양심조차 벼리지 못했다. 


죽음의 단조로운 황무지에서 방황하던 나는 수많은 과학 연구들, 세포 내 분자 통로, 생존 통계의 끝없는 곡선에 아무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결국 다시 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솔제니친의 《암 병동》, B.S. 존슨의 《운 없는 사람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네이글의 《정신과 우주》, 울프, 카프카, 몽테뉴, 프로스트, 그레빌, 암 환자들의 회고록 등 죽음에 관한 글이라면 뭐든 읽었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다. 


직접 체험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문학 작품이나 학술적인 연구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내 경험을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밍웨이 역시 비슷한 형태의 저술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풍부한 경험을 하고 충분히 사색한 뒤 글을 쓰는 것 말이다.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이 필요했다.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 <숨결이 바람 될 때>, 177~180쪽,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2016.11.19.(초판 30쇄)




숨결이 바람 될 때 - 8점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흐름출판

서른여섯, 전문의를 앞둔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 해. 하루 열네 시간씩 이어지는 혹독한 수련 생활 끝에 원하는 삶이 손에 잡힐 것 같던 바로 그때 맞닥뜨린 폐암 4기 판정은 폴 칼라니티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의사로서 치명적인 뇌 손상 환자들을 치료하며 죽음과 싸우다가 자신도 환자가 되어 죽음과 마주친 그의 마지막 2년의 기록이 지적이고 유려한 언어로 펼쳐진다.




반성하지 않는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 (53쪽)


이토록 무섭고, 도전적이었던 젊은이에게 순식간에 죽음이 찾아온다. 서른 여섯 살의 젊음 의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방황하던 그는 결심한다. 불확실한, 아니 너무나도 뻔한 미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180쪽). 』


2016년, 나에겐 무슨 일들이 있었나... 반성해보려다가 문득 나는 제대로 살았나 싶어 아프다. 올해, 나는 '나'에게 충실했나... 올해, 나는 '너'에게 충실했나... 올해, 나는 '우리'에게 충실했나... 아직은 철이 덜든 나. 그래서 아직은 '나'와 '너'가, 아직은 '나'와 '우리'가 부딪힐 때가 많다. 내년엔 부디 이 세 가지, '나, 너, 우리'가 올해보단 서로 좀 덜 부딪히는 한 해 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