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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다담 2017. 1. 31. 23:12







그리스·로마의 음악 → 서양 중세음악 → 르네상스 음악 → 바로크 음악 → 고전주의 음악 → 낭만주의 음악 → 20세기 서양음악

                    1600-1750        1750-1810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고전주의 음악(古典主義音樂, Classical Music)이란 음악에서, 1750년경부터 1810년경까지 주로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발전한 서양음악사조를 말한다. '고전'이라는 말뜻에는 '모범적 예술, 균형적 형식,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는 성격, 시대초월적 성격'이 포함되어 이미 질적인 가치를 함축하고 있다. 고전주의 음악의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음악사학자는 아마데우스 벤트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독일문학에서의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모델로 삼아 고전적이라고 명명하였다. 음악에서 '고전(Klassik)' 이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는 시대 개념이 아니라,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과 다른 음악을 구별하는 질적 개념으로 쓰였다. 이들의 교향곡이 1800년 초 음악회장의 모범적 레퍼토리로 고정되면서, 호프만(E.T.A Hoffmann)과 같은 사람들이 이를 기악음악의 절정으로 평가하였다. 반할, 보케리니, 클레멘티, 케루비니, 메율 등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작곡 양식을 썼으므로, '고전'은 음악사에서 이들 전체를 통칭하는 시대 개념으로 쓰이게 된다. 고전파 음악은 '자연스러움', '단순성', '보편성'을 강조한 결과이다. '자연스러움'은 파악이 어려운 변화나 이론적 딱딱함을 가지고 듣기를 강요하지 않는, 감정적으로 자연스럽게 '같이 느끼게 하는' 방식을 추구하게 된다. '단순성'의 추구는 예술 음악의 출발점을 민요적인 것으로 삼게 한다. '보편성'은 세상 사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세계성을 지향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초기에만 강력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약화되어 베토벤과 같이 예술가의 독창성과 작품성이 강조된다. 고전파 음악의 특징으로는 주요 3화음을 중심으로 한 기능 화성법의 확립, 소나타 형식에서의 제1, 제2주제의 조성을 으뜸음과 딸림음과의 관계에서 파악하여 두 주제의 성격적 대비를 갖게 했다는 점, 그리고 주제를 유기적으로 전개하는 '주제노작(主題勞作)'원리의 확립, 2관편성의 오케스트라, 소나타 형식에 바탕을 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의 여러 가지 악곡형식을 낳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고전주의 음악 )




                    

하이든(1732-1809)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

교향곡의 아버지                         음악의 신동                             음악의 성인



고전파 음악의 핵심 작곡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이들은 모두 빈에서 활동했다. 그래서 ‘빈 고전파’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왜 빈이었을까? 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었을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음악의 도시’라 불리는 까닭이 있었다. 1789년경 빈을 살펴보면 인구가 23만 정도로 독일의 베를린보다 훨씬 컸다. 유럽의 독일어권을 대표하는 중심 도시로 손색이 없었다. 동시대 런던의 인구는 80만 이상이었고 파리는 50만 정도, 나폴리는 40만이었다. 빈은 이들 도시보다는 작았지만 런던, 파리, 나폴리를 잇는 대도시이자 음악의 도시였다. 이를 빈의 ‘하드웨어’에 대한 설명이라 한다면 그 ‘소프트웨어’는 더욱 풍성했다. 젊고 야심찬 음악가들이 속속들이 빈으로 모여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빈에는 스페인에서 보헤미아(현 체코), 헝가리까지 광대한 영토를 소유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가 있었다. 합스부르크 궁의 주변에는 궁정에 종사하는 귀족계층과 부유한 직업인(의사, 은행가, 법률가, 상인) 등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음악을 향유하고 장려할 수 있는 막강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 빈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막론하고 음악을 지원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인프라가 풍부한 도시였던 것이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이른바 ‘고전파 3총사’는 모두 빈에서 활동했으며 빈 고전파 음악을 완성했다. 또한 빈이라는 도시는 문화적 포용력과 다양성이 풍부한 도시였다. 당시 빈에서는 이탈리아 음악, 프랑스 음악, 독일 음악이 동시에 향유되고 있었다. 이런 문화적 다양성이 고전파 음악의 보편성과 범시대적 특성을 형성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은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어권의 음악적 유산만을 흡수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 음악의 등장은 세계주의적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18세기의 시대상과도 맞닿아 있었다. 고전파 음악의 완성을 본 것은 빈을 비롯한 독일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프랑스, 이탈리아의 음악이 있었다. 당시의 음악적 사정을 살펴보면 유럽의 여러 궁정에서 일하던 음악가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인이었다. 고전파 음악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한 빈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저력을 바탕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민족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그리 크지 않았다. 외국 태생의 군주들이 각 나라를 다스렸다. 영국, 스웨덴, 폴란드에는 독일 출신 왕들이 있었고, 나폴리에는 스페인 출신 왕이, 투스카나에는 프랑스 공작이, 러시아 여제로는 독일 출신의 카타리나 2세가 재임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프랑스어를 쓰는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제 궁정에 머물렀고, 이탈리아 시인 메타스타지오는 빈의 독일 황제 궁에 있었다. 파리에서는 독일 출신의 교향곡 작곡가들이 활약했고 독일과 스페인, 영국, 러시아,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이 여왕을 모시던 하녀의 일기를 보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각종 언어가 등장한다고 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당시 빈에서는 유럽 각국의 문화가 풍요롭게 향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음악가들은 빈이라는 도시가 주는 포용력과 다양성에 무한한 매력을 느끼고, 빈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 출처 : 네이버캐스트, 고전파 음악이란?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869 )




빈, 비엔나 (독일어: Wien 빈, 오스트로바이에른어: Wean, 프랑스어: Vienne 비엔, 영어: Vienna 비엔나)은 도나우 강변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이다. 1273년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리로서 번영하였다. 교통의 요지여서 11세기에는 십자군의 통로로서 융성하였고, 15세기 이후는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발전하였다. 전성기 시절엔 인구 200만을 넘나드는 대도시였다. 근세에는 오스만 제국군이 두 차례(1529년, 1683년) 빈 문턱 앞까지 왔으나 모두 저지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프랑스군이 두 번이나 빈을 공략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빈에서 《꿈의 해석》을 출간한 1900년경, 빈은 다소 고색창연하기는 하지만 우아한 대도시로 비쳐졌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성 슈테판 대성당이 우뚝 서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 출처 : 위키백과, 빈(1683년 경의 빈) )



       



계몽주의 (啓蒙主義)란 프랑스어로 Siècle des Lumières '빛의 세기'를 뜻하는 말로 17, 18세기에 유럽과 신세계를 휩쓴 정치, 사회, 철학, 과학 이론 등에서 광범하게 일어난 사회 진보적, 지적 사상운동으로, 현재의 자본주의의 근간이며 계몽사상이라고도 부른다. 계몽주의는 실제적인 도덕을 지향하였으며 형이상학보다는 상식, 경험, 과학을, 권위주의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특권보다는 평등한 권리와 교육을 지향하였다. 이 계몽주의는 1760년경 이후 강력히 대두되게 된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은 이성으로 적법성을 판단할 수 있으며, 이성은 권위의 요소이자 권위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계몽주의 운동이 거의 동시에 이런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대서양 주변 국가에서 일어난 각종 혁명을 통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러시아,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런 움직임을 따랐으며, 라틴 아메리카 역시 아이티 혁명을 통해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다. 미국 독립 선언과 영국 권리 장전(1776), 프랑스 인권 선언(1789),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제정한 1791년 5월 3일 헌법은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계몽주의" 또는 "계몽주의 시대"라는 용어는 어떤 하나의 운동이나 사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속하는 사상가들은 서로 충돌되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고,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계몽주의는 어떤 사상의 집합체라기 보다는 가치의 집합체에 더 가까웠다. 전통적 관습, 의례, 도덕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계몽주의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여러 대립하는 철학 사이에도 비슷한 부분이 상당했다. 심지어 계몽주의에 반대했던 철학자들까지 계몽주의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성의 시기"는 보통 계몽주의 사상의 전주곡으로 여겨진다.




                                                           계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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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음악사] 고전파 음악 -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http://blog.daum.net/hjandej/6027795

놀람ㅣ Symphony No.94 (Surprise) Mov.2 - Haydn, http://blog.daum.net/hjandej/6027798

복수ㅣ Queen of the Night (The Magic Flute) - Mozart, http://blog.daum.net/hjandej/6027791

합창ㅣ Symphony No.9 (Choral) Mov.4 - Beethoven, http://blog.daum.net/hjandej/6027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