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영혼

세상다담 2017. 5. 3. 22:46






그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신을 고지식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다. 젊은 시절 그는 스스로 고지식하다고 생각했다. 매우 관습적인 데다 모험을 싫어해서, 미술학교를 나온 뒤에도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며 그림을 그리고 잡일을 하면서 들어오는 돈으로 먹고 사는 쪽-사실 이것이 그의 은밀한 야망이었다-을 택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착한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망보다는 부모의 소망에 부응하여,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고, 안정된 생계를 위하여 광고계에 진출했다. 그는 자신이 평범한 인간, 결혼생활을 평생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뭐라도 내놓을 인간 이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 그런 기대를 안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혼은 그의 감옥이 되었다. 그래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잠을 자야 할 시간에도 그를 사로잡는 수많은 괴로운 생각 끝에 발작적으로, 고민하면서, 밖으로 나갈 터널을 뚫기 시작했다. 그게 보통 인간이 하는 일 아닐까? 그게 평범한 인간이 매일 하는 일 아닐까? 아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하고 다닌 이야기와는 반대로, 그는 어떤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멋대로 하고 다닐 자유에 굶주렸던 것이 아니다. 정반대였다. 그는 자신이 놓인 처지를 혐오하면서 내내 뭔가 안정된 것에 굶주려 있었다. 그는 두 삶을 살고 싶어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순응에 따르는 한계나 그것이 주는 안락 어느 쪽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저 질질 끄는 수치스러운 결혼 전쟁이 잔뜩 낳아놓은 그 모든 추한 생각을 마음에서 비워버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특별하고자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나약했고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고 혼란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인생의 반을 발광 상태에서 살지 않으려다보니 죄 없는 자식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자신도 사면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종말과는 무시무시한 만남? 나는 이제 겨우 서른넷인데! 망각을 걱정하는 일은 일흔다섯에 가서 하면 돼!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머나먼 미래에는 궁극적인 파국 때문에 괴로워할 시간이 남아돌 거야!


: 에브리맨, 38~39쪽, 필립 로스,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16.7.14. (1판 18쇄)




에브리맨 - 10점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건강과 젊음이 떠나고 쇠잔해지는 육체. 찬란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곧 찾아올 영원한 망각을 기다리는 삶. 서글프고 애닲지만 그것이 바로 늙어가는 것임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삶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것은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우리가 맞아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