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문화·여행

세상다담 2017. 4. 11. 23:52




나는 끝없는 분실을 자연의 섭리라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였고, 귀찮기만 한 멕시코 노래를 받아들였고, 8월 오후의 찌는 듯한 무더위를 받아들였고, 러시안 룰렛과도 같은 구토와 설사를 받아들여 갔다. 그것들은 나를 피곤하게 했고 진절머리나게 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나로 하여금 그런 체념에 이르게 하는 진전이야말로, 인간을 피곤하게 만드는 온갖 것들을 자연스럽게 묵묵히 받아들여 가는 단계야말로, 여행의 본질일 것이었다. 이 말은 너무 극단적인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피곤하다느니 하는 것은 구태여 머나먼 멕시코까지 오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에서도, 뉴저지에서도 간단히 얻어낼 수 있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런 걸 찾으러 구태여 멕시코까지 가야만 했는가?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해서는 나는 비교적 명확한 말로 대답할 수 있다. 왜 나는 피곤을 찾아서 일부러 멕시코까지 다녀와야만 했던가? “왜냐하면 그런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어낼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나는 대답하겠다. 또한 “멕시코에 오지 않고서는, 멕시코의 공기를 들여마시고 멕시코 땅을 발로 밟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가 없는 그런 피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피곤을 거듭 받아들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멕시코라는 나라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라고 대답하겠다. 이상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물건을 한 가지씩 잃어버릴 때마다, 한번 설사를 할 때마다, 시간에 늦어 한 번 버스를 놓칠 때마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이 새치기를 할 때마다, 내 마음속엔 멕시코란 나라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농담이 아니다. 독일에는 독일 나름대로의 피곤이 있고, 인도에는 인도, 뉴저지에는 뉴저지 나름대로의 피곤이 있다. 하지만 멕시코의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을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인 것이다. 한 가지 피곤으로 다른 피곤을 상대화하는 일, 한 가지 피곤으로 다른 피곤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해 내는 일. 그것이 워크맨으로 릭 넬슨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생각이었다. 이건 마치 모택동의 말과 같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피곤은 피곤으로 극복해 내야만 한다. 피곤을 극복해 내는 건 피곤 이외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 (68~69쪽)



         



결국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무리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백 엔이라도 더 싼 호텔을 고생 고생 찾아 헤매는 가난뱅이 여행을 하고 있더라도, 찌는 듯한 무더위와 쌓여 가는 피로와 식중독으로 아무리 곤욕을 치르더라도, 내가 그 청년처럼 굶주리는 일은 아마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을 끝마치고 나면 내게는 분명히 돌아갈 곳이 있다. 거기에는 나를 위해 마련된 장소가 있고 내가 할 역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서 헤매기 시작하면 그대로 영원히 헤매며 돌아다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어떤 궁지에 몰린 듯한 절박함이 거기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 잘도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했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어디론가 가 보고 싶어지면 그대로 집을 뛰쳐 나가 기나긴 여행을 했다. 아마도 나는 그런 ‘헤매며 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는’ 여행이 내게 부여해 주는 환상 같은 것을 몹시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환상을 나는 절실히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나는, 지금 이렇게 멕시코를 여행하고 있는 나는, 일찍이 15년이나 20년 전쯤 내가 품고 있던 그런 환상을 다시 한 번 고스란히 체험해 보고 싶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라 게브라다의 다이버들이 아카풀코로 찾아오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가진 환상을 재현시켜 주기 위해, 날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저 벼랑 위에서 위험한 다이빙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참 처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환상의 환상성(幻想性)이 더욱 뚜렷이 인식되면 될수록, 우리가 내보내는 에너지의 양에 비해 받아들이는 양은 점점 더 적어져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떠안는 많은 피곤에 비해 비교적 적은 양의 환상밖에 얻지 못한다-는 결과에 이른다. 이것은 마치 장기간에 걸쳐 복용하고 있는 약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약효가 떨어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옛날에 비하면 훨씬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환상이 아직 엄연히 존재하는 수도 있다. 주의깊게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잘 들어 보면 그런 환상은 지금도 어김없이 내게 호소해 온다. 그리고 그런 환상들은 젊은 시절엔 볼 수 없었거나 아니면 비록 보이기는 했어도 그저 무심코 지나쳐 버리고 말았을 환상이었다. 그래, 릭 넬슨도 노래했듯이, “흘러간 추억밖엔 부를 노래가 없다면 난 차리리 트럭 운전수나 되고 말겠어.” (70~72쪽)


: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13.11.29. (초판 30쇄)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문학사상사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변경이 소멸한 시대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 속에는 아직까지도 변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추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런 궁극적인 추구가 없다면, 설사 땅끝까지 간다고 해도 변경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다 - 무라카미 하루키




      

나의 인생이라는 것은-반드시 내 인생에 국한된 일은 아니지만-수많은 우연들이 산처럼 쌓여 생겨난 것이다. 인생의 어떤 과정을 지나면 우리는 어느 정도 산처럼 쌓인 우연성의 패턴을 소화시킬 수 있게 되며, 그 패턴 속에 뭔가 개인적인 의미성을 찾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약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것을 이유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역시 근본적으로는 우연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우리가 그 우연성의 영역을 넘어 설 수 없다는 기본적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45쪽)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환상을 좇아 어딘가로 가서 그 환상을 손에 넣는 것이다. 그들은 그 환상을 얻기 위해 적잖은 돈을 쓰기도 하고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돈이고 시간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그 환상을 손에 넣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 (60쪽)
아무리 멀리까지 갔더라도, 아니 멀리 가면 갈수록 우리가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 하루키의 여행법, 175쪽,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13.11.29. (초판 30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