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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전남 완도 격자봉(433m) 常綠의 섬 보길도의 진한 봄내음(201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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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200대명산(完)

2017. 3. 14.



1. 산 이 름 : 격자봉 (格子峰, 200대명산 155번째)

2. 위 치 : 전라남도 완도

3. 높 이 : 433미터
4. 산행일시 : 2017. 3. 12(일) 08:10-12:15 (4시간5분, 순수산행시간 3시간)
5. 산행거리 : 10.5Km

6. 산행코스 : 보옥리 → 공룡알 해변 둘레길(알바) → 뽀래기재 → 누룩바위 → 격자봉(정상) → 수리봉 → 큰길재 → 곡수당 → 세연정

7. 동행자 : 참벗산악회 37 





- 오랜만의 무박 산행. 모처럼 마누라도 동행하였다. 오늘은 인왕산을 다녀 오며 술을 많이 마신데다가 보길도 산행을 취소할 생각으로 저녁을 먹으며 소주 한 병을 더 먹었더니 컨디션은 엉망이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후다닥 짐을 챙겨 나오느라 슬리퍼를 빼 먹었더니 영 불편하다. 하루종일 등산화를 신고 있었는데 또 신발을 신고 자야 하니..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어두운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하여 배가 뜨기를 기다린다.


- 적자봉이 있는 보길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숨은 진주다. 해가 수평선으로 가라앉을 때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는 무지개빛 노을이 장관이다. 이처럼 찬란한 빛이 황홀경을 되쏘는 봉우리라서 ‘적자봉’이라 한다. 이 산은 남쪽에 누운 거대한 암소가 새끼를 어르듯 북으로 광대봉, 망월봉, 일락봉 등 300미터 안팎의 산들을 품고 있다. 정상 부근에는 섬회양목 등 많은 희귀식물들이 향기를 뿜고 기암괴석들이 능선을 잇는다. 멀리 해남의 땅끝과 달마산, 완도의 상황봉까지 사철 동백나무, 예덕나무, 정금나무, 곰솔 등 250여 종의 식물들이 수해를 이루어 늘푸른 산의 생기를 불어 넣는다. 가까운 예송리의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상록수림과 해수욕장도 가볼 만하다.
적자봉을 중심으로 광대봉, 망월봉, 일락봉이 둥근 원을 그리듯 펼쳐져 있고 안쪽으로 고산 윤선도의 적거지였던 부용동에 유적지(사적 368호)가 남아 있다. 보길도는 조선 중기의 탁월한 가객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로서 그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산림청 자료 참조)


- 산림청 자료는 격자봉을 '적자봉'으로 소개하고 있다. 적자봉이라는 명칭이 일제시대에 처음 나타났다고 하니 매우 부적절한 안내자료이다. 조선시대 문헌부터 나타난 '격자봉'이라는 이름 역시 그 유래는 불분명해 보인다. 윤선도가 지었다고도 한다.


- 보길도와 격자봉은 뚜렷한 이름의 유래를 알 수 없다. 산 이름, 지명 사용에 대하여 항상 답답해 하는 바와 같이 옛사람들이 현지에서 부르던 "말"은 사라지고 그 말을 음사하여 이두 형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글"만 남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현재 남은 "글(한자)"의 뜻을 가지고 해석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들이 넘쳐 난다.

 

- <완도군 향토사>의 보길도 지명 유래를 살펴 보자.

"'뾰죽섬'이 보길도가 되었다. 한자로 '뾰죽'을 기록할 때면 된소리를 ㅆ ㅃ 따위로 기록하지만 한문은 질(叱) 자로 쌍 받침을 대용한다. 그러나 '질'로 음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받침으로 읽을 때와 한자로 읽을 때의 음이 달라진다. 보질(甫叱)을 음으로 읽으면 '보질'이 되고 약속대로 읽으면 '뿄'이 된다. 그럼으로 약속대로 적어놓고 후세사람이 읽으면 '보질'로 읽으나 구개음화 되어 '보길'로 읽게 된다."


- '격자봉'이라는 이름에는 이와 같은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단서를 찾을 수 없는가 보다. 보길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가 최소 천년은 넘었을 터인데 섬의 중앙부, 전체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산을 지칭하는 그들만의 이름이 왜 없었겠는가.

문맹의 토착민들의 '말'은 사라지고 후대에 글깨나 안다는 작자들이 남긴 왜곡된 이름들이 떠돌아 다닌다. 하물며 힘 좀 썼다는 권력자들이 멋대로 붙인 한자 이름이 지명 유래의 원조로 행세하고 있으니...

오랜 세월 보길도 주민들이 불렀을 옛이름들은 무엇이었을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 망각의 공간에서 옛사람들의 잊혀진 삶의 편린을 짐작이나마 해 본다.


- 보길도 하면 으레 윤선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알고 보니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선도가 사랑한 보길도" 내지 "윤선도의 자취가 남은 보길도" 정도로 알고 있었더니 아예 "윤선도의 보길도"이다. 물정모르는 관광객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완도군 등 지역민들은 그 오해를 풀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윤선도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보길도를 작은 '왕국'으로 건설하고 온갖 호사를 누린 마당에야..

윤선도 스토리텔링이 관광객 유치를 위한 유용한 홍보전략의 일환이라 하더라도 무수한 지역 주민의 공시적, 통시적 삶의 애환과 참다운 문화인류학적 가치의 발굴에 우선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윤선도라는 한 개인과는 무관하게 보길도의 자연환경과 역사는 충분히 아름답고 경쟁력있게 개발, 보존될 수 있는 천혜의 관광자원이이므로 산업경제적 측면에서도 어리석은 安住에 불과한 선택이라 하겠다.


- 윤선도가 보길도를 접수(?)한 1600년대 이전에도 이 섬에는 별처럼 많은 민초들이 자신들만의 삶의 서사를 이어 왔을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윤선도의 보길도'는 그들과 그들 이후의 무수한 소우주(小宇宙)들을 역사에서 지워 버리는 만행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현재를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을 모독하는 오해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제 보길도를 가게 된다면 윤선도의 유적 따위만을 찾아 다닐 필요는 없다. 그저 섬 자체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 그리고 이 섬의 진정한 주인인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관찰, 체험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며 또한 그러한 태도야말로 보길도의 참아름다움에 잠시나마 공감하려 하는 손님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 해남 땅끝마을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 06:40 첫배를 타고 출발한다.

선상 일출을 바라보고 있자니 비행기가 자주 지나 다닌다. ▼



▼ 보옥리에 도착해서 산행리더가 헤매는 바람에 시간을 날린다.

이곳에서 도로가 끊겨 있음을 아예 몰랐던 모양이다.

망월봉의 모습. ▼





▼ 보길도 이름의 유래가 된 뾰죽산. 멀쩡한 좋은 이름을 놔두고도 한자를 써서 보족산으로 표기한다.

산행리더가 반드시 사전답사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산행 코스에 대한 정보쯤은 충분히 학습하고 왔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이 먼 곳까지 오면서 들머리도 모르고 오다니..

내가 몇 번을 지적했음에도 모든 회원을 이끌고 공룡알해변 둘레길로 들어 서는 바람에 어이없는 알바가 시작된다. ▼




▼ 예전 따라 왔던 기억으로는 이 산악회는 줄지어 함께 가는 스타일이다. 내가 몰랐던 길이 있나, 가능하면 맞춰 주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후미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와 마누라는 되돌아 가기로 했다. ▼



▼ 다시 공룡알해변을 지나니 바로 산행 들머리가 나타난다. ▼



▼ 산행 리더 덕분에 이래저래 40여분 이상을 허비했다.

기왕지사 해변 탐방길도 걸어 본 셈 치고 더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보옥교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





▼ 뽀래기재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대로(大路)이다. 걷기 편한 길..

좌우 식생은 홍도 깃대봉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





▼ 동백꽃도 가끔 보이고.

한참을 걷다 보니 문득 묘한 기분이 든다.

이 곳은 봄은 커녕 아예 여름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녹색숲을 오래 걷다 보니 완전히 계절을 잊고 말았다. ▼






▼ 온통 녹색, 녹색이다.

늦가을 깃대봉을 오르며 상록의 숲에 감탄했더니 여기와는 댈 바도 아니다. ▼




▼ 뽀래기재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이국적인 숲길을 걷고 있노라니 여유가 넘쳐 난다.

직진하면 보길저수지로 하산하는 길이요, 격자봉가는 길은 우측으로 펼쳐진다. ▼





▼ 가파른 숲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첫번째 조망바위가 나타난다.

왼쪽의 뾰죽산과 오른쪽의 망월봉이 바라다 보인다. ▼





▼ 기장찬 상록의 숲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조망바위가 나타난다.

가야 할 길. ▼



▼ 잠시후 내려 설 부황리 방면 풍경.

최악은 아니지만 오늘 날씨도 시계가 충분히 맑은 것은 아니다. ▼



▼ 보길대교를 잇는 장사도와 노화읍 전경. ▼



▼ 뾰죽산의 앙증맞은 자태. ▼






▼ 지나온 방향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









▼ 낮아도 섬에 있는 산이다.

생각보다 오르막이 길게 이어져 삐질 땀이 난다. ▼




▼ 작은 봉우리를 넘자니 처음으로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우리 일행들이다. 길이 없어 막무가내로 치고 오른 곳이 여기였다고 한다.

후미는 아직 한참 아래쪽에 있다는데... ▼




▼ 산악회 일행들은 만났지만 따로 떨어져서 걷는다.

산에서 줄지어 몰려 다니는 건 아주 질색이다.

사실 산에서는 마누라와도 항상 10여 미터 떨어져 걷는 편이다. ▼




▼ 등산로 옆 무명바위 위로 올라 섰더니 기가 막힌 조망 포인트이다.

지나온 길. 망월봉은 어느덧 산봉우리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








▼ 누룩바위.

이 능선길에서는 공식적인 이름을 가진 유일한 바위인가 보다. ▼




▼ 뒤에서 바라본 누룩바위. ▼



▼ 누룩바위에서는 격자봉 정상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






▼ 생각보다 금방, 힘 안 들이고 격자봉 정상에 올라 섰다. ▼



▼ 정상에는 묘한 구조물이 새워져 있다.

나무에 가려져 있는 정상부 조망을 보완하기 위한 시설인가 보다.

산악회 일행들과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쉬어 간다. ▼






▼ 격자봉에서 수리봉 가는 길도 무난하다.

경사가 좀 가파를 뿐이다. ▼




▼ 그것 참.. 아무리 봐도 여름철의 숲, 그것이다.

봄을 마중나왔건만 성급한 여름이 먼저 머리를 내밀었다. ▼








▼ 수리봉 가는 길.

보기는 멀어 보여도 금방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






▼ 조망은 격자봉보다 수리봉이 훨씬 좋다. ▼




▼ 가야 할 길. 광대봉까지 이어지는 긴 능선길을 따라 가면 노화읍이 지척인 바닷가에 이르게 된다. 오늘은 시간 관계상 저 곳까지 갈 수는 없다. 곡수당으로 내려가서 관광도 해야겠기 말이다. ▼









▼ 지나온 수리봉도 되돌아 보고. ▼





▼ 오른쪽은 예송리 해변가. ▼




▼ 예송리 해변가 너머 보이는 섬들은 예작도와 당사도이다. ▼






▼ 큰길재에 도착했더니 지역 산악회가 시산제를 한다고 줄까지 쳐 놨다.

무슨 종교행사같은 엄숙한 분위기여서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큰길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예송리에 닿게 되는데 그들중 진행요원 한 명이 소리죽여 오른쪽으로 안내하길래 거절하고 왼쪽으로 향하였다.

이들의 뜬금없는 금줄 탓에 실제로 일행 한 명이 예송리로 하산하는 낭패를 겪었다고 한다.





▼ 큰길에서 곡수당 가는 길은 평지에 가까운 오솔길이다.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는 길이지만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숲은 여름이다.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





▼ 곡수당으로 내려 서니 봄꽃들이 만개하였다.

숲은 여름이요, 들판은 초봄이니 바야흐로 혼동의 계절이로다. ▼








▼ 건너편 산자락에 동천석실도 당겨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저기에 올라 윤선도의 깜냥을 느껴 본다는데.. 나에게는 까짓 관심 밖이다. ▼




▼ 우리 버스를 발견하였지만 세연정까지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

의미없는 아스팔트길을 꼬박 30분을 걸어서 세연정을 둘러본 후에야 뒤따라 내려 온 버스에 올라 노화도 선착장으로 향한다.

버스는 쉬고 사람은 쓸데없이 걷게 하는 주최측이 영 마뜩찮다.

배에 타기까지 2시간도 넘게 남았으니 말이다.

관광지들은 차로 한 바퀴 휙 돌면 금방 여러 곳을 둘러 볼 수 있었을텐데.. 에잉... ▼

 

* 사진이 쓸데없이 많아서 산행기 외의 모습들은 따로 모아 올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