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순의 E&F 커뮤니케이션

에브리데이 해피 2006. 12. 11. 00:04
케네디 리더쉽(JOHN F. KENNEDY on Leadership, 존 바네스 지음, 마젤란)

케네디는 선천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나 대중연설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말을 더듬거렸고 너무 빨리 말을 하는 경향이 있었고 목소리는 다소 신경을 곤두세우는 높은 톤이었다. 보좌관 프레드 듀튼은 연설자로서 아주 부족한 사람이다. 그는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드라마틱하게 말하는 법 없이 원고를 줄줄 읽는 사람이었다. 그는 연설시에 거의 모든 사람들을 실망시켰다라고 기술했다. 대중연설이나 웅변에 관해 정식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1956년 민주당 집회에서 아들라이 스티븐슨을 위한 추천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케네디는 선거본부에서 건네준 연설 초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연설을 준비하여 멋진 연설을 했다. 그리고 멋진 연설 덕분에 스티븐슨의 유력한 부통령 후보감이 되었다. 독특한 보스턴 비읍으로 말한던 존F.케네디의 대중연설은 그의 대중적인 활동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으로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많은 미국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세기 내에 다른 일과 더불어 달에 가는 일을 완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전쟁무기가 우리를 파괴하기 전에 우리가 전쟁무기를 파기해야 합니다."

1. 스스로를 위한 최고의 연설원고 작성자가 돼라.
훌륭한 대중연설가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대개 자신의 연설문을 스스로 쓴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한 최고의 연설원고 작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를 작성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사실들이나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기록해 두라. 당신이 발견한 재미있는 기사를 스크랩하고 저장해가며 독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케네디는 경력이 쌓여가면서 연설준비를 위한 뭔가 시스템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케네디 시스템의 중심은 "두되에 대한 신뢰'다., 그는 자기 직원들 뿐만 아니라 외부의 비공식 조언 그룹에게도 정보를 제공한 뒤 피드백을 얻는 것을 좋아 했다.

2. 메시지를 다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라
연설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케네디가 고용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그가 1952년에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난 직후, 2번의 5분 인터뷰를 통해 선발한테오도어C.소렌센이다. 소렌센은 표현이 정확하고 논리정연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의 적설적인 스타일로 글을 썼는데 이는 케네디에게 잘 맞았다.

3.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라
당시 정치연설은 장황하고, 미사여구가 가득하며, 다분히 감정적인 연설이 대부분이었다. 냉철하고 논리적인 케네디에게 이러한 스타일은 어울리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연설을 짧게 한 뒤 유권자들이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두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통해 연설자는 청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갈 수 있었다.

4. 자신에게 효과적인 스타일을 개발하라
수사적으로 케네디의 연설 스타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대위법적인 문구를 선호했다는 점이다. 대조를 이룬 수사를 사용함으로써 리듬의 반복을 주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유롭고 솔직하게 협상에 임한다면, 우리는 자유를 놓고 협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While we shall negotiate freely, we shall not negotiate freedom) 또는 '전쟁이 인류를 끝장내개 전에 인류가 전쟁을 끝장내야 합니다.(Mankind must put an end to war, before wat puts an end to mankind)'처럼 단어를 교체하거나 도치함으로써 운율을 살렸다.예전에 다른 대통령들도 이런 기교를 사용하였지만, 소렌센은 케네디가 이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하여 케네디가 행한 모든 주요 연설에 인상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케네디의 수사학적인 트레이트마크가 되었다. 케네디가 선호했던 또 다른 기교는 대조되는 표현이나 반대되는 단어들을 나열해 되풀이하는 대구법의 사용이다. 그는 주제에 과한 양 극단의 입장을 정리한 뒤,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청중들이 보다 절제되고 이성정적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좋은 예는 아메리칸 대학에서 있었던 세계평화에 대한 연설이다. 케네디는 소련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과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평화를 유지'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사람들 모두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평화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 그 자체를 살펴봅시다. 우리들 가운데에는 평화가 불가능하닥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평화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하고, 패배주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전쟁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인류는 불행한운명을 타고 났으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각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문제는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사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원하는 만큼 커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류가 당면한 그 어떤 문제도 인간의 존재 자체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흔히 인간의 이성과 영혼은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을 해결해왔으며, 우리는 또다시 그렇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판타지아 몽상 속에서 그려지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우주의 평화와 선의의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희망과 꿈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이를 우리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목푤 삼는다면 좌절과 자신감의 상실만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대신 좀 더 달성가능한 평화에 초점을 맞춥시다. 즉 인간 본성의 갑작스런 변화가 아닌, 인간이 만든 제도의 점진적인 개혁을 기반으로 하여, 일련의 구체적인 행동과 모든 당사자들의 이해를 조정하는 효과적인 협정을 맺어나갑시다.

케네디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한 말들이 당신의 사후에도 수십 년간 살아남지는 못할지라도, 당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면 당신이 남긴 말들은 당신이 연단을 떠난 후에도 청중들의 귀에 오래도록 울려퍼지게 될 것이다.


5. 적절한 단어를 고른다.

케네디는 자신이 내뱉는 단어들의 가치와 힘을 알고 있었다. 소렌센은 케네디에게 있어 단어들은 장인이 재료를 정성스레 고르고 다듬는 것처럼 세심하게 다루는 연장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케네디와 소렌센은 마크 트웨인의 지상명령, "알맞는 단어를 선택하라. 그렇지 않으면 반딧불이의 빛과 천둥번개의 빛과 같은 차이가 날 것이다."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청중과 상황에 보다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는 케네디의 노력은 1963년 6월26일, 서베를린에서 있었던 연설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2천 년 전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나는 로마 시민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제 자유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랑거리는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이다)입니다. 세상에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의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또는 모르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보고 베를린을 오라 합시다. 공산주의가 미래의 흐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보고 베를린으로 오라 합시다. 유럽과 일부 지역에서는 공산주의자와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보고 베를린으로 오라 합시다. 심지어 공산주의는 나쁜 제도이지만 경제 발전의 기회를 준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Lass' sie nach Berlin kommen(그들에게 베를린으로 오라 합시다)

케네디는 베를린 시내를 지나가는 동안 서베를린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을 본 케네디는 준비한 것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번 째로 유명해진 그의 대중연설은 거의 대부분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는 놀라워서 행사장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6. 당신의 주장에 이유와 논리와 증거를 보강하라
아무추어 연설가들은 흔히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정적인 주장은 많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 당신이 가진 견해의 정당성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사실과 논리를 사용하는 것어 더 낫다. 감정은 사실을 보충해 줄 수 있지만 이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흑인들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던 유명한 1963년도 연설에서 케네디는 모든 미국인들이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을 펼 때, 감정에 호소하는 어떤 아이디어도 거부했다. 대신 그는 사실을 언급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태어나는 흑인 아기들은 어떤 주에서 태어나느냐에 상관 없이,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는 확률이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태어난 백인 아기들의 2분의 1이고, 대학을 졸업할 확률은 3분의 1, 전문직을 가질 확률은 3분의 1입니다. 반면 실직자가 될 확률은 2배, 일년에 1만달려 이상 벌 확률은 7분의 1정도이며, 평균수명은 7년이 짧고, 예상소득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전세계에 자유를 전도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그러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려면서도 우리는 전세계를 향해, 더더욱 중요하게 우리들 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땅은 흑인들을 제외하고는 자유롭다고, 흑인들을 제외하면 이등시민이 없다고, 흑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계급이나 카스트 제도도, 고립집단도, 지배민족도 없다고 말입니다. 이제는 이 땅에서 약속을 실천할 때입니다. (중략) 남부와 북부, 법적인 구제책이 실행되지 않고 있는 모든 도시에서 좌절로 인한 불화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시위대에서, 거리행진에서, 그리고 긴장과 폭력을 조성하고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항의는 진정되어야 합니다.

7. 사전 준비를 하라, 동시에 과도한 준비 역시 좋지 않다.
1960년 최초의 토론에서 리처드 닉슨이 형평없이 당하고 난 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중요한 행사에서는 언제나 리허설과 사전 준비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었다. 어떻든 리허설은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과도한 준비 역시 좋지 않다. 리허설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실제 순간이 왔을 때 지나치게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가능성이 있다. 케네디는 닉슨과의 유명한 첫 번째 대결 날에는 공식적인 준비를 중단하고 가능한 마음을 이완하여 긴장을 풀었다. 또 하나 준비해야 할 것은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에 대해 대중연설을 하게 될 경우 으레 직면하게 되는 야유에 대비하는 것이다. 무례하게 보이지 않으면서 야유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케네디는 야유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처했다. "야유를 하는 사람은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사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내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8. 유머를 사용하라
케네디는 원래 재치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도 초기에는 연설할 때 유며가 거의 없었고, 사전 준비된 원고에만 집착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대중연설 및 연설 스타일에서 유머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유머는 너무 지독하거나 신랄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화제에 어울리고, 고상하고, 적절한 것이어야 한다. 케네디의 위트가 그토록 잘 먹혀들어갔던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케네디 자신의 스타일과 개성을 잘 반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렌센은 자신의 사무실에 '유머 파일'을 비치해놓고는 사람들이 자산에게 알려준 유머 또는 자신이 텔레비젼에서 듣거나 신문, 잡지에서 읽은 유머를 정리해서 케네디가 사용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