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자료실

에브리데이 해피 2006. 12. 11. 00:22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내려선 날



미국과 소련이 펼친 월면 도달 경쟁

'아폴로 계획'을 중심으로 우주 진출을 노린 미국과 소련의 개발 경쟁을 알아본다.

‘아폴로 계획’은 미국의 자존심을 건
20세기를 대표하는 대계획이었다
1950년대에 수면 아래에서 추진되던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의 우주를 향한 준비는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 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발사함으로써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푸트니크 발사의 충격으로 창설된 NASA의 기술적 주도 아래, 미국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인 비행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 준비한 1인승 우주선은 머큐리(Mercury)라고 불렸다.

미국의 준비를 비웃기라도 하듯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보스토크(Vostok) 로켓은 가가린(Y. A. Gagarin;1934~ 1968) 비행사를 작은 우주선 ‘제비’에 싣고 인공 위성 궤도로 날아갔다. 인류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우주를 향한 뜨거운 꿈은, ‘지구는 푸르렀다.’는 가가린의 한마디와 함께 만인의 우주 여행 실현을 향한 첫발을 내딛었다.

같은 해 5월 5일, 미국의 셰퍼드 비행사가 머큐리 캡슐로 탄도 우주 비행에 성공하여 우주로 날아간 두 번째 인류가 되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결의

 


이 시기, 미국과 소련 관계는 쿠바 혁명으로 최악이었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부통령은, 미국의 미래를 우주 경쟁의 기반 위에 세우기로 하였다.

‘미국이 사회주의 소련을 이기려면 우주에 실험실을 운반하는 것이 좋은가, 달을 돌고 오면 좋은가, 아니면 인간을 달에 갔다 오게 하면 좋은가?’―케네디와 존슨은 NASA 수뇌부에 이 문제를 신속하게 검토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셰퍼드가 날고 나서 20일 후인 19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과 인류의 역사에 기억될 만한 중대한 결의를 굳혔다.

‘나는 이 나라가 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그리고 나서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킨다는 목표를 겨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 이상의 감명을 주고, 또 우주의 장기적 개발에 이것 이상의 중요성을 지닌 계획은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만큼 달성하기 어렵고 돈이 드는 계획도 없을 것이다.’

유인 달 착륙의 계획은 ‘아폴로 계획’으로 명명되었다. 미국 의회와 국민은 환호성을 올리며 이 연설을 맞이하였다. 이것은 놀라운 계획이었다. 당시 미국은 대기권 밖으로 단 5분 밖에 나간 적이 없는 캡슐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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