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멍을 통과한 설악산 용아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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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설악산

2019. 11. 10.










2019.11.09. 토 03:06~16:29(전체 시간 13:23, 전체 거리 22.53km, 평균 속도 1.8km/h)  춥고 흐림




첫사랑만큼 나를 설레게 만드는 등산 열정이 참 오래간다.

결혼생활이 일상화되면서 무덤덤하게 살아가던 일상이었다.


그러다 건강에 관심을 가지며 40대 후반에 산을 만나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전까지 운동이라곤 숨쉬기와 생활에 필요한 정도의 걷기뿐이었다.


산행을 처음 시작할 땐 북한산 비봉도 오르지 못할 만큼 고소공포증이 심했다.

이젠 남들 오르기 힘든 암릉 구간을 오르내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니 장족의 발전이다.


오늘 그 정점에 있는 설악산 용아장성을 갯버들님과 함께하게 된다.

용아장성을 타는 시간은 내 일생에서도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한다.




설악산 용아장성 등산코스





ㄷㅅㅇㅂ산악회에서 용아장성을 탄다기에 따라왔다.

'산사'에서 처음 용아를 탔고, 그다음은 '산마루'였다.

두 번 다 옥녀봉과 개구멍은 생략했고, 봉정암과 접한 8~9봉도 생략했다.

이번 산악회 공지는 오색-대청-봉정암에서 용아로 하산하는 코스다.

이 산악회는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기에 용아장성 전 구간을 다 타겠단 결론이다.

오색으로 대청까지 오른다는 건 초반부터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아가는 것이고,

용대리에서 시작한다 해도 밤중엔 백담사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으니 수렴동 계곡까지 11.5km를 걸어야 한다.


요즘 무릎 상태가 신통치 않으나 차마 용아장성을 포기할 수 없어 신청하긴 했으나 고민이 많다.

결국, 하루 먼저 산행을 시작해 봉정암에서 자고 새벽에 팀과 합류하겠다고 운영진에게 알렸다.

봉정암에서 연락하니 산악회는 용대리에서 새벽 네 시에 출발하니 수렴동 대피소에서 06:30에 만나자고 한다.

조금 순한 길이긴 하나 약 12km 거리를 두 시간 반 만에 주파하겠다고?

그간, 이 산악회도 제법 따라다녔으니 속도전에 능하다는 걸 안다.

봉정암에서 수렴동 대피소까지 6km로 무릎에 부담 주지 않게 천천히 내려가면 새벽 세 시에 일어나야 한다.

천천히 걸어 두 시간 35분만인 05:41,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해 CJ햇반컵반으로 간단히 요기를 끝냈다.


사실, 용대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 무척 당황했다.

산악회 공지대로 새벽 세 시에 오색을 들머리로 잡으면 대청봉 찍고 봉정암에는 대략 7:30 전후에 도착할 것이다.

봉정암은 05:30~06:30까지 아침 공양 시간이므로 미역국에 단무지 얹어 밥을 말아 먹고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합류하면 된다.

이런 계산에 맞춰 아침 준비는 생략했는데, 수렴동 대피소에서 만나자면 새벽 세 시에 일어나야 하므로 아침 공양을 받을 수 없다.

아침 식사를 포기하면 허기가 져 도저히 내 체력으로는 산행할 수 없다.

한밤중인 세 시에 공양 장소에 가면 밥이나 미역국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음식이 없으면 쌀 포대가 보이던데, 쌀 포대를 열어 생쌀이라도 꺼내 씹으면서 내려갈까?

별의별 궁리를 다 짜 내보지만, 어느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갯버들님과 함께 산행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광명의 빛이 보인다.

결국, 갯버들님께 전화를 드려 사정을 말씀드리고 빵이라도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든든한 떡을 가져오셨다.

하산 후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굳이 갯버들님께서 저녁까지 계산하셨다.

덕분에 배 든든히 채우고 산행을 무탈하게 마쳤기에 이 자리를 빌려 갯버들님께 감사드립니다.

 

06:30이 되자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는 총대장을 만나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악회 공지를 다르게 올린 건 혹시 모를 공단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부득이한 전술이므로 십분 이해한다. 

들머리는 어제 가야동 계곡에 들어가기 위해 올랐던 들머리와 우연히 일치한다.

합류할 때 막 여명이 시작될 때라 일출이 시작된 이후 사진만 올린다.


옥녀봉이다.




이런 산행은 남성 전유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성도 이런 암릉과 릿지산행에서 남성과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농담으로 여성도 군대 보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건너편 큰 바위가 오세암 옆에 있는 만경봉이다.

설악산 4암자 순례할 때와 이 산악회를 따라 가야동 계곡을 탐방할 때 각각 올라가 봤다.



이 바위다.

앞쪽에 배낭만 보이는 사람이 있는 곳에 오르면 용아장성의 개구멍이 많이 회자되지만, 실제 통과한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다.

나도 세 번째 용아에 들어서면서 이제 진정한 용아를 알게 되는 셈이다.








개구멍은 슬링을 걸어 양손으로 잡고 게처럼 슬금슬금 옆으로 걸어야 한다.

그러니 게 구멍이 맞으나 발음 편의상 또는 오랜 관행으로 개구멍으로 통칭한다.

워낙 어려운 구간이다 보니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조망한다.

앞에 소나무는 마디게 크고 있으나, 개구멍 찾는 사람들이 지나며 흙이나 모래가 한 톨씩 옮겨 뿌리가 드러났다.

에구 불쌍한 소나무야 미안하다, 그래도 잘 크렴...




개구멍을 바위가 막아선데다, 큰 바위가 지나갈 공간도 주지 않아 슬링에 의존해야 한다.

그 다음도 이런 공간이라 슬링을 잡고 게처럼 옆으로 걸어가야 한다.




올라와서 본 바위는 북한산 파랑새능선의 어금니바위처럼 생겼다.



북한산 파랑새 능선의 어금니바위




총대장이 자일을 허벅지에 묶고 회원을 안전하게 이동시키고 다른 대장은 안전하게 건너도록 도움을 준다.

뒷사람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건너다본다.

이 개구멍을 통과한 어느 여성이 공포를 심하게 느꼈는지 올라와 빈 공간에 엎드려 한참 동안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사진 찍는 데까지 경사를 지나 작은 실링을 잡고 올라와야 하는데, 겁나 갈 수 없다며 내려와서 데려가라고 한다.

난 냉정하게 자력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결국, 그 여성은 자기팀 어느 대장이 자일로 연결해 끌다시피 데리고 왔다.

개구멍이 잠깐 동안 극한의 공포를 몰고 온 것이다.

나중에 보니 더 험한 곳도 잘 다니더구만... ㅎㅎ














여기가 2봉이던가?

전에 두 산악회는 이 전망대에서 저 2봉을 조망한 후 내려가거나 올라오던 곳이다.

개구멍은 자일을 설치해 대장이 알려주는 요령대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개구멍에 앞서 뜀바위가 있다.

이쪽 바위에서 저쪽 바위까지 거리는 불과 1m 내외

뛰어내려 발이 닿는 곳의 너비는 불과 10cm 정도의 좁은 공간이라 영 자신이 없다.

맨땅에 줄을 긋고 그 줄을 걸을 때 넘어질 사람은 없다.

1m 정도의 높이에 널빤지 하나 깔고 걸어도 떨어져 봐야 다치지 않으니 능히 건널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끝을 모르는 허공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주 월출산에서 4m 절벽으로 추락한 공포가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는데, 여기서 마저 추락하면 죽음이다.

결국, 뜀바위는 포기하고 안전하게 우회하였으나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 어렵다.





건너편 능선이다.




여기서 총대장은 하산한다.

개구멍에서 회원 모두를 안전하게 돌봐주고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내려간 다음 봉정암까지 들렸다가 하산한 것으로 안다.




















이런 암봉 앞에 서면 누구든 멋진 모델이 된다.

하지만, 어제까지 좋던 날씨도 오늘은 흐린데 멀리 대청봉엔 안개까지 끼었다.

설악의 최고 명당에 올 땐 날씨가 좋아야 풍경도 멋진데, 하루 차이로 날씨가 말이 아니다.








갯버들님 작품




























이 암봉은 늘 우회했다.

그런데 남녀 각각 한 명씩 올라가고 있다.

이 암봉을 통과할 수 있다면 세 번째인 지금까지 안갈리 없다.

올라가면 안 된다고 하니 여성은 바로 내려왔으나 남자는 계속 오른다.

앞쪽 바위는 용케 오를 수 있으나 뒤쪽 암봉은 경사가 높아 자일 없이는 오를 수 없다.

그는 나중에 내려온 것으로 안다.




이 구간의 명물인 손가락바위다.




손가락바위로 오르는 구간은 좁은 틈으로 주먹이나 얼굴만 한 작은 돌투성이다.

발을 잘못 디디면 낙석이 발생하기 쉬워 정체되는 구간이기도 한 위험한 구간이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등산객이 다녔는지 제법 길이 잘났다.




손가락바위




이 바위 하단부에 발자국으로 길이 제법 잘 든 곳으로 올라가게 된다.

거대하게 잘 쌓은 성벽처럼 보인다.









좀 전에 성벽 같은 건너편을 조망하던 곳이다.

맨 우측에 노란 옷과 검은색 옷을 입은 회원이 보인다.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거 같아도 조심하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저 구간을 내려올 때 스틱이 걸리적거리긴 했으나 웬만해선 손에서 스틱을 뗀 적 없으니 불편을 감수한다.




누가 처음, 이 용아장성에 길을 냈을까?

옛날엔 감히 생각도 못 했을 테고, 1970년대 이후 등산화가 어느 정도 보편화한 시점 이후일 것으로 생각한다.

저런 위험한 구간을 오르자면 발을 단단히 조여 주고 어느 정도 릿지 기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험난한 지역을 여러 사람이 지나며 길이 더 넓어지고 안전장치도 하나둘 늘어난다.

세월이 지나면 이곳도 점점 탐방하기 쉽게 변할 것이다.
















여느 산과 달리 용아장성을 오르고 나면 전신운동으로 팔다리가 뻐근할 지경이다.

난 스틱을 손에서 놓는 날이 없으니 등산할 때 팔 운동까지 겸하는 셈이지만, 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팔 운동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자고 나면 전신이 뻐근하게 밀려오겠다. 




건너편 공룡능선




공룡능선을 더 넓게...




앞으로 가야 할 구간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용아장성 8~9봉은 봉정암 5층 석탑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라 공단 직원의 감시망을 벗어나기 어렵다.

못 갈 확률이 높겠다.








서북능선에서 흘러내린 지능선이다.




이쪽은 용아장성에서 흘러내린 지능선









전에 다녔던 능선을 피해 안부로 내려온 후 가야 할 건너편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길을 보니 경사가 너무 급하다.

한 사람이 발을 잘못 디뎌 굴러떨어지기라도 하면 줄줄이 추락하게 생겼다.

뒤돌아 가려니 너무 멀리 왔기에 결국 포기하고 위험해 보이던 경사면을 따라 올랐다.

멀리서 볼 땐 위험해 보였는데, 막상 오르기 시작하니 사실 별거 아니다. 

그 구간 마지막에 이런 통천문을 빠져나와야 최종적으로 탈출하게 된다.





용아장성에서 보는 마지막 명품 구간이다.

모두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으나 그건 큰 봉우리만 지칭할 뿐 작은 봉우리까지 하면 도대체 몇 개인지 알 수 없다.

작은 봉우리라 해도 큰 봉우리와 차이가 없으니 작고 큰 의미는 없다.

그러니 이 봉우리가 몇 번째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용아장성일 뿐이다.









그 용이빨 하나하나를 어루만지고 밟아가는 시간은 정지된 듯 영원으로 느껴진다.

태초에 지구가 생긴 이래 여러 가지 자연 현상으로 산이 생기고 바다가 생겼다.

산은 또 히말라야나 그랜드캐니언처럼 광대한 모양이 있는가 하면 설악산 용아장성처럼 화려한 암봉도 있다.

남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구간에 내가 서서 이런 장관을 보게 된다니 다행이다.





봉정암쪽으로 오르며 오른쪽엔 서북능선에서 흘러내린 지능선이 아름답고, 왼쪽으론 공룡능선이 자태를 뽐낸다.





이 암봉 뒤로 더 가면 용아장성의 마지막 구간인 8봉과 9봉이 있다.

좀 더 빨리 걸었으면 선두 따라 다 갈 수 있었으나,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천천히 걸으며 풍광을 즐겼다.

오늘 새벽에 산악회를 따라 용대리부터 걸었다면 오늘처럼 용아장성을 이곳까지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제 백담사 터미널에서 백담사 지원센터까지 걸은 후 가야동 계곡까지 15km가 넘는 거리를 여섯 시간 걸었다.

오르막 구간인데. 평균 속도 2.5km로 산행 후 봉정암에서 대웅전 갈 때 장딴지엔 쥐가 날 뻔했고, 왼쪽 종아리는 결국 쥐가 났다.

평생 쥐를 모르고 살았는데, 이젠 체력이 많이 떨어진 건지 힘들면 쥐가 나려고 하고 결국 쥐가 난다.

평생 운동을 안 하고 살다 이제야 겨우 등산 좀 하려니 체력이 안 따라 준다. 




용아의 화려한 암릉미를 뒤로 하고 수렴동 계곡으로 하산한다.




하산하며 간간이 보이는 용아장성을 계곡에서 조망한다.

이하 별다른 서술 없이 끝낸다.







































백담사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한 번에 타기는 처음이다.

봄부터 단풍철까지 몇 대의 버스를 보낸 다음에 탄 걸 생각하면 꿈만 같다.

단풍 시즌이 끝나자 인심도 떠난 것인지 백담사도 썰렁하다.

늘 이렇게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타면 좋겠다.

이틀에 걸친 설악산 등산은 전편과 본편으로 나누어 본편인 용아장성을 먼저 올렸다.

앞으로도 산행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