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금오산 도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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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립공원/도립공원

2020. 1. 30.










2019.12.28. 토  10:47~16:18 (전체 시간 05:31, 전체 거리 13.97km, 휴식 시간 약 30분, 평속 2.5km/h)  맑음

                                             ※ 트랭글 오류로 거리가 늘어남



10월 초 속초 설악산을 가려고 신청했으나 인원 부족으로 산행이 취소됐다.

그 다음 주엔 출발할 수 있으려니 하고 회비를 이월했으나 여전히 성원 부족으로 산행이 취소돼 지금껏 미뤘다.

설악산이 아니라도 갈 산은 많아 그동안 이 산 저 산 다니다 보니 금년도 거의 저물어 간다.

오늘 가려던 산은 남쪽 끝 경남 고성의 거류산이었으나 몇 주간 계속된 원정 산행으로 피로가 쌓였다.

결국, 거류산은 취소하고, 이월된 회비는 연말을 넘기면 새해에 쓰기도 눈치 보여 금오산으로 갈아탔다.


금오산은 2015년 7월에 다녀왔으니 벌써 두 번째 산행이다.

당시 여름이 무르익어갈 무렵이었다면 지금은 겨울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시점이다.

같은 산이라도 아침저녁으로도 산행 느낌이 다른데, 녹음 짙던 여름과 달리 겨울의 모습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으니 산행 어려움은 없겠으나 눈이나 상고대는 기대할 수 없다.

새봄을 맞을 준비로 잎을 다 떨군 금오산은 속살까지 드러낸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살펴보자.




금오산 도립공원 등산코스




A 코스는 사곡고등학교에서 출발해 굴등봉-효자봉-엄마봉-도수령-금오산 정상-칼다봉으로 하산하는 12.6km 거리다.

B 코스는 주차장에서 대해폭포-할딱봉-금오산-약사암-마애여래입상-오형돌탑-도선굴에서 주차장까지 9.2km 구간이다.

약 3/2가 A 코스를 타고 난 지난번 하산한 코스를 반대로 도선굴-대해폭포-할딱봉을 지나 정상 찍고 칼다봉으로 하산 계획을 세운다.

사실 A 코스는 완전히 새로운 코스이므로 구미가 당기긴 했으나 금오산은 도선굴, 할딱고개, 마애약사여래입상, 오형돌탑은

반드시 봐야 할 주요 볼거리이므로 코스에 집어넣고 처음인 칼다봉을 선택하는 즐풍만의 구간을 만들었다.


주자창에 내리자 이미 승용차는 만원이고, 버스도 16대나 주차돼 있다고 하니 도립공원 본점인 금오산의 명성을 느낄 수 있다.

아직 큰 추위가 없다고 해도 한겨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금오산을 찾는다는 건 그만큼 산세가 좋다는 뜻이다.

지역 사회에선 제법 오래전부터 국립공원을 추진하고 있는데, 가히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 왼쪽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금오산 정상이고, 오른쪽 칼다봉 능선이다.

가운데 계곡으로 시작해 보이는 능선을 좌측에서 타고 우측으로 반 바퀴 돌아 내려올 예정이다.




칼다봉능선 안쪽 비탈




자연보호헌장이 있는 공원에선 구미의 블랙야크 매장에서 커피와 녹차를 등산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요즘 들어 2년 동안 마시던 커피를 거의 끊었고, 녹차도 마실 생각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즐풍이 비록 차를 마시지 않았어도 이렇게 등산객의 추위를 녹일 따듯한 커피와 녹차를 준비한 블랙야크가 고맙다.




금오산성


금오산성은 조선 초기에 인동의 천생산성과 같이 낙동강을 낀 영남지방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3,500여 명의 군병으로 선산, 개령, 김천, 지례 등 4군을 관할하였으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는 정기룡 장군이 왜적을 맞아 이 산성을 지켰던 곳이기도 하다.

이 산성은 1410년(태종 10)과 1595년(선조 28)에 축성하였으나 그 규모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1639년(인조 17)에 수축한 내성은 둘레 2,316m, 높이 2.1m에 자연절벽이 661보이다.

외성은 둘레 1,253m, 높이 4.2m이고 성안에는 못 7개소, 샘 8개에 1개의 개천이 있었다고 전한다.

1868년 (고종 5) 11월에 산성을 보수·정비하였으며 이때 세웠던 중수 송공비가 성내에 현존한다. (안내문)





영흥정(靈興井)은 지하 168m의 지하수를 개발하여 알칼리성 석간수를 1997년부터 제공한다고 한다.

겨울철 동파 염려가 있어선지 물을 잠가 놓았는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아래 돌 통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금오산 케이블카는 불과 805m를 이동하여 이곳 해운사 옆이 종점이다.

케이블카를 이용해 등산하기엔 타는 구간이 너무 짧아 별 이용 가치는 없음으로 관광을 위한 위락시설 정도로 보인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바로 이렇게 해운사 경내를 들려볼 수 있다.




해운사 대웅전과 해운사를 감싼 암봉  








다해폭포를 만나기 전 도선굴로 먼저 들어간다.

하산할 땐 정상 찍고 칼다봉능선으로 하산하게 되므로 지금 아니면 볼 기회가 없다.




통로는 겨우 한 사람 지나가기 알맞은 너비라 오르내리는 사람이 교행할 땐 넓은 장소에서 대기해야 한다.

현재 통로는 1937년 개통한 것이므로 그 전엔 이런 안전시설이 없었을 테니 제법 위험한 구간이었겠다.

그러니 왜놈들도 죽음을 무릅쓰고 굴 안으로 침범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선굴(道詵窟)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道詵)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고 한다.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최인재의 『일선지(一善誌)』에 근거하면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또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굴 아래 대혈사 터, 현재 공원 주차장이나 백운재(白雲齋) 또는 경파정(景坡亭)이 있는 곳을

대혜 또는 다혈이라 부르니 대혈이라는 명칭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일선지』에 따르면넓이가 16, 높이가 15,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얽어 만든 집[構屋]이 두 칸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00~600명이 피난하였는데,

당시 바위틈에 쇠못을 박아 칡이나 등 넝쿨로 이동했던 상황이어서 왜군은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개통한 것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도선굴에 들어서면 굴 안에 또 다른 작은 굴이 있다.




도선굴(道詵窟)


이 굴은 천연 동굴이며 암벽에 뚫린 큰 구멍이기에 대혈(大穴)이라고도 했다.

신라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선사가 득도한 곳이라 도선굴이라 한다.

고려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이 대혈사와 이 굴 아래를 소요하며 도학에 전념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인근 주민이 난을 피해 암벽 틈에 기어 오르는 칡덩굴을 부여잡고 이 굴에 들어왔다.

세류폭포(細流瀑布)의 물을 긴 막대로 받아먹으며 피난한 연인원이 1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굴 내부는 길이 7.2m, 높이 4.5m, 너비 4.8m 정도이다. (대혜폭포 앞 도선굴의 안내문)



위 향토문화전자대전과 대혜폭포 앞 도선굴의 안내문 내용이 약간 다르다.

실제 들어가 봐도 약 20여 명 정도가 생활하면 비좁을 정도이니 안내문에 있는 대로 연인원 100여 명이 더 타당한 설명이다.

연인원은 항시 100명이 아니라 나가고 들어온 총인원을 말하니 그때그때 들어온 인원 전체를 말할 것이다.

도선굴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칼다봉능선이다. 




굴 안의 작은 굴은 기도처로 쓰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엔 저 작은 굴은 지체 높은 관리나 명망 있는 유지가 기거했을 것이다.













대혜폭포(大惠瀑布)


해발 400m 지점에 있는 수직 27m 높이의 이 폭포는 대혜폭포 또는 대혜비폭(大惠飛瀑)이라고 한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하여 명금폭포(鳴金瀑布)라는 별명도 있다.

금오산 정상 부근의 분지에서 발원하여 긴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이 고장 관개(灌漑)의 유일한 수자원이다.

하여 큰 은혜의 골이라 하여 대혜골이라 했고, 주변 경관은 경북 8경 또는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움푹 패인 연못 욕담(浴潭)은 선녀들이 폭포에 물보라가 이는 날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안내문)


이 대혜폭포도 겨울이라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 가운데 살짝 얼음이 얼어 폭포인 줄 겨우 알 수 있다.




대혜폭포 앞 도선굴 가는 길




얼마나 경사가 급한지 할딱거리며 오른 끝에 할딱봉이 있다.

그 할딱봉에서 바라본 도선굴은 산 그림자 끝나는 곳에 위로 검은색 그늘진 곳이다.








할딱봉에서 잠시 주변을 조망하고 이내 오르다 보면 마애여래입상으로 가는 왼쪽 길은 위험해 등산로가 폐쇄됐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오른쪽은 동남쪽 방향이라 눈이 없어 대부분 오른쪽으로 오르나 눈이 깔렸기로서니 그 험한 설악산도 다녔는데,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마애여래입상 가는 길에 보는 건너편 칼다봉능선




도선굴과 비교도 안 되게 작은 굴도 만난다.




오형석탑


선천적 뇌병변 장애를 앓던 손자 형석이 10살 때 갑자기 합병증인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가 손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쌓았다는 돌탑이다.

이 돌탑은 금오산의 오와 형석의 형을 합하여 오형석탑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도 손주 생각에 매일 올라오신다는 할아버지는 오늘 우리 산악회 회원 두 명이 함께 사진도 찍었다고 한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金烏山 磨崖如來立像) (보물 제490호)

경북 구미시 남통동 산 24-1


이 불상은 금오산 북편 아래 자연암벽에 조각된 높이 5.5m의 석불 입상이다.

특이하게 자연암벽 돌출 부분을 이용하여 좌우를 나누어 입체적으로 조각했다.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면서도 부피감이 있으며,

가는 눈 작은 입 등에서 신라 보살상보다는 다소 진전된 고려시대 작품이다. (안내문)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90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磨崖菩薩立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인 마애여래입상으로 변경되었다.

상(像)의 중심선이 모서리여서 양쪽 암벽에다 조각된 특이한 구도를 보여준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눈, 코, 입 등도 원만상으로 처리되었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목의 삼도(三道)는 명확하지만,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오는 형식적이다.

천의(天衣)는 왼쪽 어깨에서 가슴으로 내려진 상가의와 그 아래로 내려진 “U”형의 상의(尙儀),

양팔에서 내려진 옷자락 등 모두 묵직하게 표현되고 있다.

광배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인데 두광, 신광 모두 2중으로 되어 있으며 신광은 보주형(寶珠形)을 이루고 있다.

대좌는 입상을 중심으로 반원형이 되게 부각(浮刻)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5.55m, 몸 높이는 4.175m, 대석이 5m의 크기이다.

입상 전면의 평평한 대지에는 현재 주초(柱礎)도 있고 기왓조각들도 흩어져 있으며

암벽에도 목조가구 흔적이 보이므로 사찰이 건립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위키백과 인용)







마애불 주변엔 2~3m 정도의 회양목이 많이 보인다.

회양목은 석회암 주변에 잘 자란다고 하니 이 바위도 석회암일 것이다.

좀 전에 본 도선굴도 석회암에서 자주 발견되는 굴의 형태를 띤다.




이 작은 돌탑 역시 형석이 할배가 쌓은 것이겠단 생각을 해본다.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졌어도 꺾어진 본체가 용케 살아 잘 자라고 있다.

옆에 나무에 의지하지 않고 떨어져 완전히 독립했으나 사진상 붙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나무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 죽지 않고 저렇게 잘 자란다.








칼다봉으로 연결되지 않고 단맥으로 끝나는 능선이다.

나중엔 오면 이 암봉으로도 올라가 볼 생각이다.








몇 년 전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간 사진을 본 적 있는데, 이젠 완전히 보수되었다.




약사암 약사전








이 계단만 오르면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까지는 거저 먹기로 오를 수 있다.

이제 거의 다 오른 셈이다.




'동국제일문'이라니 대단한 자부심이다.




드디어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에 올랐다.

7.28km 거리를 중간에 잠깐 점심 먹고도 두 시간 51분 만에 올랐으니 제법 빨리 오른 셈이다.

다시 올라온 구간으로 내려갔을 때 약 9.2km라고 하는데, 올라온 거리만도 7.3km이니 뭔가 잘못된 거 같다.

칼다봉능선으로 하산하려면 적어도 5~6km를 더 가야 할 텐데, 남은 시간 세 시간이므로 갈 길도 바쁘게 생겼다.




갈 길이 아무리 바빠도 군부대 철조망 앞에 새로 생긴 현월봉 표지석을 지나 아래쪽에 있는 오형석탑으로 내려간다.

또 다른 오형석탑에서 조망하는 약사암과 뒤로 보이는 약사봉, 종각이 한편의 그림이다.

이 풍경을 보지 않으면 굳이 금오산을 오를 필요가 없다.

부대 철망을 밖으로 돌면 제법 먼 거리가 되기에 안쪽 철망으로 내려가는데. 눈이 안 녹아 미끄러운 데다 바위틈 사이로 낭떠러지다.

결국 원숭이처럼 철망을 양손으로 잡고 철망에 발을 디디며 내려가는데, 오형석탑에서 보던 등산객들이 저렇게도 올 수 있다며 놀란다.

오형석탑에서 조망하는 약사암 종각, 나중에 다시 오면 종각 아래쪽 긴 다리 끝에서 종각을 따로 잡아봐야겠다.




저 약사암을 지날 때만 해도 약사암 전체가 양지였는데, 그새 왼쪽 1/4 정도가 그늘졌다.

역시 겨울은 해가 금방 진다.

이 풍경 사진 하나를 얻기 위해 하산길이 바빠도 잠시 시간을 냈으나 그늘로 원하던 사진은 아니다.




2015.7.4. 한낮의 약사암 풍경이다.





오형석탑에서 올려다 본 정상방향, 왼쪽 부대 철망을 따라 내려왔다.





금오산(金烏山)


금오산(金烏山)의 높이는 977m로 기암 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경사가 급하고 험난한 편이나,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이곳에 금오산성(金烏山城)이 있다.

금오산 명칭은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지었는데,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금오산의 능선을 유심히 보면 ‘왕(王)’자처럼 생긴 것 같고,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사람 모양인데,

조선 초기에 무학(無學)도 이 산을 보고 왕기가 서려 있다고 하였다.

계곡 안에는 고려 말의 충신이자 성리학자인 길재(吉再)의 충절과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세운 채미정(採薇亭)이 있다.

일명 '금오서원(金烏書院)'이라고도 한다.

케이블카가 닿는 중턱에는 대혜폭포[大惠瀑布, 이칭: 명금폭포(鳴金瀑布)]가 있다.

그 앞에는 의상(義湘)이 수도하였다는 도선굴(道詵窟)이 있고 해운사(海雲寺)와 약사암(藥師庵)의 절도 있다.

산 중턱 암벽에는 보물 제490호로 지정된 4m 높이의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시대의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산은 1970년 6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집>


오형석탑에서 약사암을 조망한 후 부대 앞에 새로 생긴 정상석인 현월봉을 담은 후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든다.




2015년 당시엔 표지석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산뜻했는데, 지금은 많이 퇴색했다.





성안마을은 금오산 정상에서 800m 정도 내려온 지점의 천연분지다.



성안마을은 9정(井) 7택(澤)이라 하여 금오정을 비롯해 우물과 못이 많아서 산 아래 마을보다 오히려 물 걱정이 적었다.

유금오산록(김하정, 1621~1677)에 40여 호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1년 화전민 독가촌 철거 당시 8가구가 살았다. (안내문)


칼다봉능선으로 하산한다고 생각했는데, 칼다봉능선과 약사봉 사잇길이다.

칼다봉능선을 놓쳤어도 500m 정도 내려가면 성안마을로 살짝 올라가 칼다봉능선을 탈 수 있음으로 염려하지 않는다.

내려가면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약사봉으로 연결된 능선을 탈 수 있을 텐데, 길이 없어 나뭇가지에 걸린다.

결국, 포기하고 성안마을로 올라가 칼다봉능선 가는 이정표를 따라 능선에 진입한다.

성안마을로 올라올 때 우측으로 연못이 몇 개 나란히 있는 거로 보아 안내문처럼 물 걱정 없이 살았겠단 생각이 든다.




칼다봉의 금오산성




칼다봉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 유추해보지만, 적당한 뜻을 알기 어렵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봉우리가 많다는 뜻일까?

칼다봉능선을 다 내려갈 때까지 칼날 같은 봉우리는 거의 보지 못했다.




칼다봉능선에서 조망하는 건너편 정상 방향  








제법 날카로워 보이는 암봉이긴 하나 등산로에서 이런 암봉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지나온 암봉

칼다봉능선에 접어들었을 때, 렌즈가 중간에서 제멋대로 기울어지며 논다.

왼쪽 상단에 살짝 어두운 게 렌즈가 잘못된 현상이다.

몇 년 전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려 렌즈가 오늘처럼 고장 나 고친 적이 있는데, 또 말썽이다.

당분간 고치러 갈 시간이 없음으로 처음 구매할 때 딸려온 번들 렌즈를 장착해야겠다.








로프가 걸린 이 하산 구간은 제법 경사가 높아 뒤돌아 로프를 잡지 않으면 내려서기도 어려울 정도다.




다시 보는 건너편 능선








드디어 칼다봉이란 봉우리를 만난다.

10.92km 지점으로 네 시간 28분 동안 제법 빡세게 걸었다.

높이가 715m로 정상인 현월봉보다 262m 낮은데, 정상에서 칼다봉까지 3.3km 거리다.

성안마을에서 오르면 바로 전위봉이 나타나는데, 전위봉과 이 칼다봉은 나무로 표지목을 세웠다.




구미지역을 지나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이번엔 렌즈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안에서 제멋대로 논다.








칼다봉능선 마지막 구간은 우측으로 흐르는 능선 따라 내려가지 않고 중간 지점에서 바로 넘어간다.




칼다봉능선의 이정표는 경상북도 환경연수원에서 세운 건지 하산코스는 연수원 기점으로 표시했다.

금오산 주차장까지 거리가 약 50m 정도 가까우니 큰 차이는 없는 셈이다.

금오산 저수지





채미정(採薇亭)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


이 건물은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44년(1768)에 건립한 정자이다.

길재는 고려시대인 1386년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에 올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善山: 구미에 있던 지명)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채미'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

채미정은 흥기문을 지나 우측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집이다.

뒤편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의 '어필오언구(御筆五言句)가 있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안내문)


석교를 건너면 바로 흥기문을 통해 채미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








채미정
















경모각 안 길재의 초상









고려문하주서야은 길재선생우허비















구미 금오산을 의도치 않게 두 번 다녀올 기회를 만들었다.

해가 많이 기울어 정상의 오형석탑에서 조망하는 약사암의 전망은 여름만 못했다.

여전히 도선굴과 마애여래상, 오형석탑, 약사암 전망 등 금오산만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날이다.

금오산으로 2019년 산행을 마무리하며, 올 한 해도 끊임없이 산행한 즐풍에게 박수를 보낸다.

다가올 2020년도 희망찬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께도 감사와 건강, 행운이 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