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의상능선-백운대-숨은벽능선에서 새 등산화 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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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북한산

2020. 4. 4.

2020_21

 

 

 

2020.4.3. (금)ㅈㅌ  06:43~15:27(전체 시간 8시간 43분, 전체 거리 17.2km, 휴식 1시간, 평속 2.1km)  맑음

 

 

지난주 캠프라인 마나슬루를 구입한 포스팅만 하고 아직 신지 않았다.

새 등산화를 신고 북한산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의상능선을 오른 후 주능선을 타고 백운대까지 갈 생각이다.

백운대에서 체력이 남아 있으면 숨은벽능선을 타고, 힘들면 상운사계곡으로 하산해야겠다.

의상능선과 백운대 코스가 북한산에서 제일 힘들고 바위가 많아 등산화를 테스트하기에 최적 코스다.

 

캠프라인 등산화는 한국의 바위산에 가장 적합하지만 즐풍의 발과 얼마나 궁합이 맞을지는 신어 봐야 안다.

대부분 등산화를 처음 신을 땐 늘 등산화 맨 위 끈 조이는 부분이 정강이를 조이는 느낌을 받아 뻐근하곤 했다.

더 중요한 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바닥의 느낌이나 무릎이 느끼는 피로감을 얼마나 흡수시키냐일 것이다.

하루 산행으로 다 알기는 어려워도 앞으로 산행 시 갖게 될 등산화와의 궁합을 가늠할 수 있다. 

 

 

북한산 환종주 코스

 

 

지난주 구입한 캠프라인 마나슬루 등산화를 처음 시착하는 날이다.

즐풍의 발 크기보다 15mm 큰 제품을 구입해 깔창을 추가로 두 개 더 삽입했다.

2001년 마라톤 풀코스를 무리하게 뛰고 난 뒤 생긴 무릎 통증을 완화시킬 목적이다.

처음엔 발 볼을 조이는 압박감을 느꼈으나 걷기 시작하며 압박감은 점차 사라지니 다행이다.

캠프라인 마나슬루 구입기 http://blog.daum.net/honbul-/1568

 

 

대서문에서 의상능선으로 뻗은 북한산성을 따라 오르면 바로 의상능선 9부 능선과 만난다.

잠깐 착각으로 중성문에서 오른다고 생각해 법용사까지 갔을 때 우측으로 의상봉이 보인다.

정신 차리고 보니 너무 많이 올라왔기에 법용사로 올라가 가사당암문에서 의상봉을 왕복하기로 한다.

국녕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우측을 보니 누릉지바위가 보인다.

누릉지바위를 멀리 서라도 잡을 생각에 험로를 헤쳐 조망이 좋은 바위에 올라섰다.

사진 찍고 다시 내려가기엔 제법 거리가 있어 바로 의상봉으로 바로 치고 오른다.

당연히 길이 없어 막아선 나무를 이리저리 헤치며 겨우 올라왔다.

국녕사에서 가사당암문을 거쳐 의상봉까지 왕복하는 거리를 줄이긴 했으나 에너지 소모량은 비슷하겠다.

건너편에 보이는 누릉지바위는 북한산 산행을 처음 할 때 가본 이후 처음으로 다시 본다.

 

이렇게 긴 바위라도 있으면 가로막을 나무가 없으니 차라리 양호한 편이다.

 

날씨는 맑으나 미세먼지에 역광이라 용출봉과 용혈봉은 아스라이 멀게 느껴진다.

 

진달래도 소나무만큼 바위를 좋아한다.

 

가사당암문과 성벽

암문 위에 이렇게 성벽이 축성된 곳은 이 가사당암문과 부왕동암문 두 곳이다.

암문만 갖고는 성벽이 너무 낮고 허술하다는 판단 때문이겠다.

 

용출봉에서 내려가는 철계단 옆 소나무의 자태

철계단이 생기기 전에 이 소나무를 의지해 밟고 지나간 흔적이 지금껏 남아있다.

크기는 작아도 100년도 훨씬 넘은 수령을 가졌겠다.

 

내려온 용출봉 방향과 철계단

 

엄지바위에서 바라본 용출봉

 

용출봉 뒤로 따라온 의상봉

의상봉은 502m로 낮은 편이나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가 해발 68m이므로 430여 m 고도를 올려야 한다.

430m 고도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탐방안내 지원센터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5km의

짧은 거리를 고도를 높여야 하니 힘들게 올라와야 한다.

북한산 의상능선에서 제일 힘든 코스 중 하나다.

 

의상봉만 오른다면 이후 문수봉까지 2.7km 거리는 조망이 우수한 데다 고도를 천천히 높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줄도 모르고 오르게 된다.

용혈봉, 용출봉, 증취봉까지 고도는 500m급, 나월봉 657m, 이후 나한봉과 상원봉, 문수봉은 700m 초반이다. 

 

용출봉 지능선의 강아지바위

 

용출봉에서 내려오는 마지막 구간의 암릉 중 맨 우측 아래는 지압바위다.

멀리서 보면 제법 경사가 심해 보이나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 옆 바위에 손바닥을 짚고 내려오면 무난하다.

손바닥으로 지압하는 내려오기에 지압바위라고 한다.

그래도 주의할 것은 언젠가 6학년 5반이라는 여성이 내려오다 굴러 떨어졌다.

바위 끝에 있는 큰 소나무에 걸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걸 봤다.

그 소나무가 없었으면 황천행이었다.

 

오늘 처음 신고 나온 캠프라인 마나슬루 등산화

요즘 계속 가물어 걸을 때마다 먼지가 쌓인 걸 털어냈는데도 이 모양이다.

 

증취봉까지 네 봉우리를 지나는 중이니 문수봉까지 나월, 나한, 상원봉 등 네 봉우리만 남았다.

봉우리 숫자로 딱 절반 온 셈이지만, 문수봉까지 남은 거리는 불과 1.7km 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다.

 

나월봉 에스컬레이터 바위로 넘어가기 전 지나온 곳을 바라본다.

 

에스컬레이터바위는 제법 긴데, 사람이 없으니 크기를 짐작할 방법이 없다.

어느 바위든 계곡이든 사람이 있어야 크기가 가늠될 뿐 아니라 풍경도 살아난다.

 

나한봉으로 오르며 뒤돌아 본 나월봉

비슷한 이름인 나월봉과 나한봉이 나란히 있어 늘 이름이 헷갈릴 때가 많다.

외국영화를 볼 때 특히 흑인의 경우엔 얼굴 생김이 비슷해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우리는 거의 두 자인 이름으로 헷갈릴 일이 없다고 생각해도 외국인 입장에선 헷갈리기 쉽다.

연예계에서 천정훈이나 천명훈, 전소민이나 정소민, 박휘순과 박희순, 지진희나 진지희 등 비슷한 이름은 수없이 많다.

이 외에도 형제간 돌림자는 이름 석 자에서 겨우 한 자만 틀리니 구분하기 더욱 어렵다.

우리도 헷갈리는 우리 이름을 외국인은 이름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구분하기가 더욱 어렵겠다.

이젠 시대가 바뀐 만큼 자녀 이름을 비슷한 돌림자로 짓지 말고 한글이나 쉬운 말로 지으면 좋겠다.

즐풍은 벌써 30여 년 전에 두 딸의 이름을 한글로 지었으니 이런 점에서 선각자인 셈이다.

 

높이에 따라 바위 모양도 달라지고, 의상능선 봉우리도 더 따라 올라온 풍경이다.

 

문수봉 뒤쪽 봉우리를 만난다.

예전 어느 겨울날 어렵게 올랐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새 등화를 신었으니 접지 기능을 시험하고 싶다.

사진으로 보면 짧게 느껴질 높이이나 실제 오르면 5~6m 정도로 제법 경사가 있다.

처음엔 오른쪽 누룽지처럼 튀어나온 바위를 잡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나,

좀 더 오르면 잡을 홀더가 없어 애를 먹는다.

그래도 등산화를 믿고 하중을 실으며 바닥에 손을 대고 어렵게 오른다.

이런 구간은 내려가기보다 오르기가 조금 더 편하다.

 

문수봉 정상에서 바라본 연화봉 방향

 

방금 지나온 왼쪽 나한봉과 오른쪽 상원봉(716봉)은 오른쪽 계곡 방향에 행궁이 있다.

의상능선과 주능선 등이 행궁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북한산성을 축성했다.

수도권에선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제대로 잘 관리되고 있다.

서울 도심의 한양도성은 거의 대부분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북한산성은 북한산 안에 있다 보니 건물이 생길 일이 없어 남아 있거나 복원된 구간도 많다.

중간중간 일부 구간은 훼손된 채 방치된 곳도 많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문수봉 정상

 

문수봉 정상에서 보는 건너편 전망대에 문수봉이란 작은 표지목이 있다.

굳이 위험한 문수봉까지 오르지 말고 그 작은 표지목으로 인증사진을 찍으란 작은 친절이다.

 

문수봉을 내려와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연화봉 방향

 

좀 전에 올랐던 문수봉

성벽이 끝나는 소나무 중간에 오래전 누군가 바위에 홀더를 만들어 오르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우측 뒤로 오르는 곳엔 이런 홀더나 안전장치가 없어 각자의 릿지 기술의 의존해야 한다.

 

북한산성 (사적 제162호)

 

이 산성은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에 쌓은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유사시에 대비해 한양 외곽에 성을 쌓자는 논의가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성이다.

당시 완성한 성곽의 길이는 7,620보, 즉 21리 60보로 지형에 따라 적절하게 축성방식을 달리했다.

성곽시설로는 군사 지휘소인 장대(將臺)를 세 곳(동장대·남장대·북장대)에 만들었고,

성문 6개소(북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대서문), 암문(暗門) 6개소, 수문 1개소를 두었다.

성을 쌓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문제로 삼았던 식수 문제는 99개소의 우물을 파서 해결했다.

저수지도 26개나 만들고, 8개소의 창고를 두었다.

성 안에는 승군(僧軍)을 주둔시키기 위한 사찰을 여러 곳에 두었는데,

승군 총섭이 머물던 중흥사는 규모가 136칸에 달했다.

1712년에는 상원봉 아래에 130칸 규모의 행궁과 140칸에 이르는 군창(軍倉)을 지었다.

근래 훼손되었던 대서문·대남문을 보수하였고, 대성문·대동문·보국문·동장대 등은 다시 지었다.

성곽과 여장 등도 보수·정비하였다. (안내문)

 

지금 복원 중인 대남문을 지나며 뒤돌아 본 연화봉과 문수봉 방향

 

대남문에서 볼 때 보현봉은 역광이라 사진을 찍지 않았다.

주능선을 다 오른 후 어느 바위에 올라 보현봉을 찍으니 그나마 상태가 좋다.

 

털제비꽃

 

북한산성 만들 때 조망이 좋아 적이나 아군의 이동 상태를 감시하기 좋은 곳에 장대를 세웠다.

이곳 동장대와 의상능선 상원봉과 행궁의 중간 지점의 남장대, 노적봉 서능선의 북장대 등 세 곳이다.

이 동장대는 1712년(숙종 38)에 세웠다가 소실된 것을 1996년 복원한 것이다.

 

이건 돌양지꽃도 아니고 뭘까?

노적봉 가는 방향에 지천으로 피었으니 봄은 봄이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19로 우리나라 확진자는 10,000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177명이나 된다.

2020.4.4. 현재 미국은 24만 4천 명 발생에 사망자 6천 명, 이탈리아 15만 5천 명(사망자 1만 4천 명),

스페인 12만 2천 명(1만 명), 독일 8만 5천 명(1천 명), 중국 8만 1천 명(3천3백 명) 등 벌써 확진자만 109만 명을 넘었다.

자고 나면 확진자나 사망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금년 7월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던 하계 올림픽이 1년 연장되고, 프로 경기 등도 줄줄이 취소됐다.

대전염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렇게 코로나 19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산하는 가운데 필리핀 두테루테 대통령은

"자가격리를 위반자는 총으로 쏴도 좋다."는 명령을 하기도 했다.

이동이 제한되며 세계경제가 위축되기 시작하자 주가가 연일 폭락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경기가 급랭하면 외화가 부족한 나라는 곧 망하게 생겼다.

이런 와중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좀 전 털제비꽃과 노랑제비꽃은 도솔님과 갯버들님이 댓글에 알려주신 이름이다.

꽃 하나 더 오리는 것 만으로도 화면이 산다.

두 분 블로그처럼 앞으로는 작은 들꽃이라도 올리는 노력과 성의를 가져야겠다.

 

만경대 허릿길을 지나자 나타나는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백운봉 암문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 암문 중 하나이다.

백운봉 암문은 일제 강점기부터 위문(衛門)으로 불려 왔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 출입로로 쓰이는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백운봉 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는 마련하지 않았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 천장 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据式)이라고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 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안내문)

                                                                                                             

이렇게 안내문을 옮기는 이유는 나이 든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도

일제가 만든 위문을 백운봉 암문 대신 계속 쓰기 때문이다.

일제의 잔재를 빨리 털어내는 일도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백운대 오르기 전 우측 숨은벽능선으로 넘어가는 들머리에서 쉴 겸 점심을 먹는다.

2년 전 레키스틱 신제품을 고가에 구입했다.

신제품이라 스틱을 때서 접으면 크기도 작아지고 펴기도 쉬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주 도봉산에서 손목끈이 끊어졌다.

A/S를 맡기고 목우가 쓰는 예전의 스틱을 지참했는데, 예전 스틱의 손목끈은 이렇게 튼튼하다.

신제품의 손목끈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대신 2년 정도 지나면 손목끈이 끊어진다.

레키 본사는 손목끈을 쉽게 망가지게 출시함으로써 주기적으로 사용자의 호주머니를 털겠다는 고약한 심뽀다.

 

백운대 오르며 보는 인수봉

 

드디어 산행 시작 세 시간 40분 만에 6.6km를 이동해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에 도착했다.

목요일까지도 나쁘던 미세먼지가 가라앉아 비교적 시계가 좋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일 때 얘기고, 먼 거리는 여전히 미세먼지로 사진이 안 좋다.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에서 내려서는 길이니 드디어 하산길이다.

아직 힘이 남았다고 생각해 숨은벽능선으로 하산할 생각이다. 

 

숨은벽능선 방향으로 이동하며 다시 보는 인수봉

 

숨은벽으로 잠깐 올라가 늘 숨은벽을 조망하던 건너편 전망대를 잡아본다.

숨은벽능선에서 일반인이 다닐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인 셈이다.

 

왼쪽 인수봉과 오른쪽 숨은벽

 

숨은벽능선 일부

 

 

 

 

바위만 찍으면 너무 삭막해 등산객이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 마침 한 사람이 올라오며 포즈를 잡아준다.

센스가 좋다.

 

숨은벽능선의 마지막 구간이다.

왼쪽 해골바위 위 전망대이고 오른쪽은 영장봉이다.

숨은벽능선에서 국사당을 거쳐 버스를 타고 차량을 회수하려고 했으나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그러자면 해골바위를 지나 지능선을 잡아탄 다음 몇 개의 작은 능선과 계곡을 가로질러야 한다.

 

 

 

가까워진 영장봉

 

해골바위 위 전망대가 가까워졌으니 하산도 거의 끝난 셈이다.

이젠 북한산 탐방지원센터까지 감(感)에 의지해 길을 내야 하는데, 때로 숲을 가로지르기도 해야 한다.

 

봄 가뭄에 해골바위 눈에 눈물도 말라버렸다.

 

영장봉의 다른 모습

 

숨은벽능선에서 하산하며 암반 계곡을 만났다.

쉬는 김에 뜨거운 발을 식히기 위해 등산화를 벗은 다음 일어날 때 조금 타이트하게 등산화 끈을 조였다.

얼마 가지 않아 왼쪽 등산화 끈 안쪽에 정강이를 보호하는 텅(tongue),

우리말로 혓바닥이라고 하는 부분의 솔기가 매끈하지 못해 압박에 따른 통증이 나타난다.

결국, 끈을 느슨하게 조정해야 했다.

 

청담폭포 위 수달래와 함께...

 

샛길을 따라 움직이며 결국 큰길로 나왔다.

어느 농원의 목련이 흐드지게 폈다.

 

마을 안쪽에서 멀리 보이는 의상능선의 의상봉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산성계곡 입구에 설치된 에어건으로 등산화 먼지를 털 생각에 올라갔다.

하지만 에어건이 있던 장소가 해체되어 없어졌다.

탐방지원센터에 물어보니 무슨 일인지 없앴다고 하니 아쉽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은 새삼스레 깨닫는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 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나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지내 놓고 보면 그때 그곳에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 스스로가 빠져버린 결과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지금의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다음에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될 것이다.      (법정스님의 산문 집속에서)

 

 

엊그제 솔담님이 보내온 법정스님의 말씀이 현시국의 최대 장애인 코로나 19에 직면한 현실에 보내는 메시지 같다.

좋은 말씀을 보내주신 솔담님께 감사드리며, 법정스님 말씀을 옮기는 것으로 산행기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