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존치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낙타 2020. 2. 19. 03:10

이어서 씁니다.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입학 정원을 2천명으로 한정하고 오직 로스쿨 졸업자들에게만 변시 응시자격을 부여하는고 입학정원 대비 75%의 합격률을 보장하되 5년간 5회만 응시할수 있도록 해놓았죠. 아무나 수험시장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합격률을 인위적으로 보장하되 장기간 수험에 매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제한을 두고 있는 것. 효율성 극대화, 시험 경쟁에서 뒤쳐져 낭비되는 인재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둔 설계입니다. 

시험 낭인 방지를 위해서는 최적화된 시스템일 수는 있지만 이건 법치주의 이념에 반하는 것일 뿐아니라, 사법권의 민주적 정당성 관점에서 보더라도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이건 기본 설계 자체를 바꾸지 않는 이상 답이 없습니다. 


1. 법치주의와 한국의 로스쿨

법에 의한 통치를 뜻하는 근대 법치주의는 민중들이 자신의 언어로 된 법전을 소유하고 있고 따라서 누구나 그 법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너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시민혁명 이전 종래 지배층은 자신들만의 언어인 라틴어로 된 법전을 소유하고 법을 통치의 도구로 활용해왔죠. 특별히 법조직역을 담당하는 법복귀족을 따로 두고 이들은 도제식의 교육을 통해 신분과 법기술을 세습해왔죠. 따라서 근대 이전의 법은 지배층만을 위한 것이었고 법학 교육 역시 "법복귀족에 의한, 법복귀족에 대한, 법복귀족을 위한" 닫힌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러다 18세기 들어 시민혁명을 통해 계급적 신분질서가 철폐되고 통치권을 담당하던 군주도 법에 의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법치주의 이념이 자리잡습니다. 지배층만이 법전을 소유하던 전근대적 질서를 부인하고 시민 모두가 자신들의 일상어로 된 법전을 가지고 법률을 원용하여  국가의 부당한 침해에 대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 근대 법치주의의 핵심내용이죠. (프랑스 혁명에서 소유권 절대의 원칙도 이런 맥락에서 나옵니다) 흔히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 (형사법) 거나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민사법)는 근대법 원칙 역시 누구나 법률에 접근할 수 있고 스스로의 능력을 법률을 읽고 이해할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깔아야만 수긍할 수 있는 명제입니다. 그리고 이는 근대 법치주의의 이념을 표상하고 있는 거죠.   우리 헌법이 재판청구권과 공판절차진술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 죄형법정주의에서 일반인의 이해와 눈높이를 원칙적인 해석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나 민법에서 과실책임의 내용을 일반인의 이해를 표준으로 한 선관주의의무를 채택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 나라의 법체계 역시  "법치국가의 헌법과 모든 법률은 일반인의 이해와 지적 능력을 기준으로 제정되었다는 점을 전제로 누구나 법을 공부할 수 있고 그 법률에 의거하여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는 근대 법치주의의 이념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뭐 당연한 소리죠. 


다소 현학적인 썰이 길었는데, 아무튼  누구나 법을 공부할 수 있고 그 내용을 숙지할 수 있다는 지향점을 이념적 기초로 깔고 있는 이상 법학에 대한 교육은 학습능력이 검증된 소수그룹이 아니라 일반 공중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직업 법률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교육을 받았지만 후에 지적 능력이 모자라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결과적으로 법률가로서의 직무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을 받게 된다치더라도 이것과는 별개로 최소한  교육의 기회에 있어서 만큼은 사회적 신분과 지적 능력 여하에도 불구하고 공중에게 일반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함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법률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널리 일반적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사법권의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을 위시한 로스쿨 체제에서 정원 제한없는 기본 틀을 유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로스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대학에도 법학과가 충분히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듯한데, 우리의 모든 법률이 일상어로 쓰여져 있고 일반인의 이해와 판단을 기준으로 체계화 되었다는 점을 이념형으로 삼고 있는 이상 교양으로 하는 법학이 따로 있고 직업 법률가가 되기 위한 법학이 따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직업으로서의 법률가가 갖춰야할 수준이 일반인의 것과 같을 수는 없죠. 통치권의 한 축인 사법권을 담당하기 위해선 일반인의 교양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춰야할 겁니다. 그러나 수준 차이는 있을지언정 법학의 종류가 다를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로스쿨의 전문석사과정은 법학사에 대한 심화과정이 아닙니다. 법학 비전공자, 그러니까 법학에 대한 기초가 없는 사람을 받아서 기초 과정부터 교육시킨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하는 이야깁니다. 대학에서 4년 동안 학습한 법학은 제 아무리 빠삭하게 잘 배워도 절대로 법률가가 될 수 없는 지식이고 3년간 대학원에서 받은 교육은 다소 엉성하게 배우더라도 법률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라는 구성도 기괴하기 짝이 없고, 법에 대해 정통한 지식을 갖춘 법학 박사라 할지라도 로스쿨을 거치지 않는한 절대로 법률가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불가입니다. 예시, 링컨전형, 비인가로스쿨(신림동 학원 생각하시면 됩니다) 뭐가 됐든 간에 로스쿨 이외의 우회로는 철저히 막아놨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되는 결과가 생기는 거죠.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각종 스펙과 법학적성시험을 통해 학습능력이 있다고 판단받은 연 2천명이라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법률가가 되기 위한 교육의 기회가 열려있고 모든 혜택이 이들에게 집중되는 구조입니다.  스펙이 후지거나 법학적성시험 성적이 현찮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학습능력이 없다는 판단을 받은 사람에게는 법률가로서 직무능력을 갖추었는가를 검증받을 기회는 커녕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 교육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로스쿨의 본고장인 미국이 효율성을 몰라서 로스쿨의 정원제한을 안둔게 아닙니다. 일본 역시 도입 초창기에 연 7만명을 상회하는 수준이어서 사실상 정원제한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였죠. 예시 떄문에 일본에서 통폐합되는 로스쿨이 속출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일본은 예시때문에 망했다고 그러는 분들도 있는데, 통폐합되는 로스쿨이 나오는 건 로스쿨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는 체제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로스쿨 무용론이 나온 이유는 예시 합격자들의 신사법시험 합격률이 로스쿨 출신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지 예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예시 출신들의 신사법시험 합격률이 로스쿨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면 로스쿨의 인기는 높았을겁니다.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효율성만을 우위에 둔 극단적인 설계는 로스쿨 입시를 법조인의 직무능력과는 직접 연관되지 않는 각종 스펙 (외국어, 인턴경력, 학점 등등) 과 지원자의 사회적 배경에 의존해 법조인이 될 사람과 될 수 없는 사람을 가르는 결과는 낳고 있고, 법학적성시험이라는 일종의 잠재력 테스트를 동원해 교육받을 자격이 없다는 단정적 판단을 정당화하고 있죠. 사람의 잠재력을 한날 한시에 보는 객관식 시험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는 것도 웃기는 얘기이고, 그렇게 측정한들 신뢰성에 문제가 없을까요? leet나 psat와 같은 잠재력 평가척도는 잘못된 긍정(자질과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입학을 허용하는 판단)으로는 쓰일수 있을지 몰라도 잘못된 부정(자질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을 불허하는 판단)으로 쓰이게 되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부당하게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논리로 남용될 수 있기 때문이죠. 로스쿨 입학 전형의 문제는 다음에 보다 면밀하게 다뤄보겠습니다. 


썰이 길어졌는데, 

법치국가에서의 헌법과 모든 법률은 일반 시민의 이해와 판단을 기준으로 체계화되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즉  누구나 법에 대해 학습할 수 있고 지적 능력과 상관없이 법을 학습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 근대 법치주의의 정신입니다. 대학을 위시한 교육 기관은 법에 대한 학습이 효율적으로 잘 이뤄질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일뿐 어떤 개인이 법을 학습할 자격이 있는가 여부를 판단자가 될 수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고시 낭인을 방지한다는 효율성 극대화를 모토로 한 설계로 인해 법률가가 되기 위한 법학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여부를 가름하는 판단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 법치주의의 정신을 형해화하고 있는겁니다. 학식과 교양을 갖춘 우수한 소수 인원에게만 법학 교육의 기회를 주고 이들에게 혜택을 몰빵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법복귀족 부활과 닫혀있는 도제식 교육에 다름아닙니다. 애시당초 법을 공부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법치주의하에선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그리고 법률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받을 기회는 학습능력이 뛰어난 소수의 집단이 아니라 모든 계층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 그 전제로서 법률가가 되기 위한 교육훈련을 받을 기회 역시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은 통치권의 한 축인 사법권의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적 내용입니다. 


오늘 사법권의 민주적 정당성 파트까지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글이 다소 장황해졌습니다. 종종 의사고시 95% 합격률과 비교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합격률 보장이 전문대학원의속성에서 유래하는 본질적인 요소도 아니거니와 법치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의사와 변호사는 서로 비교집단으로 삼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집단이에요.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이 점에 대해선 언제 따로 글을 써보겠습니다. 


** 현대법치국가에 있어서 법학은 사회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포괄성을 가집니다.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활동이 법의 지배를 받습니다. 변호사에게 법률사무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권한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고해서 모든 법률 사무를 반드시 변호사가 독점해야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변호사는 소송대리에 있어서는 전문성을 가지지만 기타 다른 법률 사무에 대해서는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지위가 있다는 것일뿐입니다. 


수년간 법률가가 되기 위한 공부에 매진하였지만, 변호사가 되지 못했다하여 그간의 학습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법학을 그저 변호사가 되는데 필요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결과론에 다름아닙니다. 설사 변호사가 되지 못했다고 해도 법학을 공부하면서 쌓은 법률소양은 어떤 직업의 영역에 있어서든 아니 일상생활에서 중고차를 사든 월세계약을 맺든  어느 분야에서든 유용하게 쓰이기 마련입니다. 


일반 교양을 위한 법학 교육과 변호사가 되기 위한 법학 교육을 엄격히 구분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도 아니며 학습능력이 검증된 소수에게만 열려있는 특수한 교육 기관을 만들고 오직 이들에게만 법조인이 되기 위한 법학 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소수 그룹에게만 법조직역을 담당할 자격을 주겠다는 소립니다. 이는 혈통에 따라 세습이 되지 않을 뿐 온갖 스펙으로 무장된 소수인원들을 뽑아 오직 그들에게만 교육의 기회를 주고 법조직역을 독점시키자는 것이고 이는 사법권을 법복귀족에게만 일임하던 전근대적 시스템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시존치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낙타 2020. 2. 19. 03:09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된 이래로 로스쿨은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양산해왔습니다. 로스쿨 vs 사법시험을 두고 여러차례 오간 논의를 보면 대체로 쟁점이 경제력과 학력에 따른 진입장벽의 문제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로스쿨이 안고 있는 문제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간략하게 적어보자면, 

로스쿨 진학에 있어서 불투명성, 출신학교와 나이에 따른 공공연한 차별,

인턴과 취업 시장에서 부모의 지위와 영향력이 공공연하게 개입하는 현실.

로스쿨 입시낭인과 과도한 스펙쌓기 문화.

각 로스쿨간의 서열화 문제. 점점 늘고 있는 로스쿨 재학생들의 반수 문화(상위 로스쿨로 갈아타기)

유명무실해진 로스쿨 특성화 정책.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실력 저하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고 있는 mal-practice)

부실한 실무수습, 생존경쟁과 열정페이에 내몰린 청변들

판검사 임용에 있어서 공무담임권의 심각한 제약,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늘고 있는 오탈자들, 

매년 쌓이고 있는 로스쿨의 재정적자 (국립대는 350억, 사립대까지 포함하면 800억을 넘는 재정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음)

기초법학의 붕괴, 

어떻습니까? 굵직한 목차만 적었는데도 제법 되죠?  자세한 내용을 풀어서 쓰면 1천 페이지 짜리 기본서로 출판하고도 남을 겁니다. 

 로스쿨측에선 '오랜 시간 학계와 법조계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제도이고, 그간 쏟아부은 매몰비용이 적지 않으니 문제점은 고치고 보완해가자'고 주장합니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로스쿨이든 사법시험이든 각기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그러나 저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떄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로스쿨이란 제도가 과연 우리 실정에 맞는 옷인지, 국민의 의사에 부합하는 제도인지, 가사 로스쿨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끌고나가야 할 가치나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저는 로스쿨은 폐지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처음부터 설계 자체가 잘못된 기만적인 제도입니다.  우리 법체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교육 제도이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로스쿨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지향점과 맞지 않습니다. 다음 글에서 후술하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로스쿨 체제는 우리 헌법이 근간으로 하고 있는 법치주의 이념에도 배치되고 또 사법권력의 민주화를 지향하기는 커녕 반대로 파괴하고 있는 면이 많습니다.


각설하고  오늘은 '로스쿨의 기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로스쿨에 관한 논쟁이 나올때마다 항상 혼란스러운 것이 로스쿨의 도입 취지와 이념과 로스쿨의 현실이 따로 논다는 점입니다.

변호사의 대량양산을 통해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낮추고,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받아들여 전문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변호사를 양성한다는 것. 선발이 아니라 교육에 의한 양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대학 교육의 정상화를 꾀한다는 것. 

로스쿨측에서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고 있는 로스쿨의 도입취지는 우리나라의 로스쿨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로스쿨'이 아닙니다. 그저 3년제 전문대학원의 형식을 빌려다 이름만 로스쿨이라 붙이고 로스쿨의 도입취지를 차용해서 마치 미국식 로스쿨과 일맥상통하는 선진적인 제도인 양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 본래적 의미의 ) 로스쿨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할 기본적인 요소를 전혀 갖추고 있질 않아요. 


미국을 본 고장으로 하고 있는 "본래적 의미의 로스쿨"은  변호사를 교육하고 배출함에 있어 국가의 개입을 자제하고 민간 영역의 자율에 맡긴다는 점을 중핵으로 합니다. 

그리하여 , 

(1) 대학을 위시한 각종 교육기관에게 로스쿨 설립과 운영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2) 자격시험형태로 운영되는 변호사시험을 둘 것. 


이 두 가지 요소를 핵심 축으로 하여 각 로스쿨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로스쿨 교육과 배출되는 변호사의 수준을 담보하겠다는 것.  이것이 미국 로스쿨의 기본 틀입니다. 일본 로스쿨도 말이 많은데, 기본적인 틀에서는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위와 같은 로스쿨의 기본 요소를 아예 배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로스쿨의 총정원을 2천명으로 통제하고 각 로스쿨의 개별 정원도 사법시험 합격자 배출 순서에 따라 임의적으로 150, 120, 100, 50 명으로 강제 할당을 했죠. 이 부분에 대해선 노무현 대통령도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다큐, "대통령으로써 산다는 것 제2부"), 각 로스쿨들의 자유로운 경쟁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조로 도입하는 병크*를 저질렀죠.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더 심각한 병크는 로스쿨을 총 정원을 2천명으로 한정했다는 점입니다. (저자 주 * 병크는 병신 테크트리의 줄임말)


일단 미국식 로스쿨은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변호사를 대량양산하는 걸 염두에 둔 제돕니다. 법조구성의 다양성을 통해 사법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거죠. 이민자로 이루어진 다인종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로스쿨 제도가 가진 단점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배경과 어울어져) 울며겨자먹기로 택한 방식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요? 법조구성의 다양성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두어야할 만큼 넓은 땅덩어리와 다양한 인종을 가진 것도 아니고 각 주마다 별도의 헌법을 두고 있는 연방제 국가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보다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것은 대학의 서열화와 차별일 겁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두는 학교도 25개로 한정하고 또 각 로스쿨의 정원도 국가가 강제로 할당하고 있으니 .... 경쟁하지 말고 그냥 대학 서열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거나 마찬가지죠.

로스쿨의 기본적인 물적 토대를 하나도 갖추고 있질 않으면서 본래적 의미의 로스쿨이 지향하고 있는 이념을 끌어다가 마치 로스쿨인 양 포장하고 문제점을 은폐하는데에 쓰고 있는 겁니다. 개천의 용이 아니라 평범한 직업인으로서의 변호사라거나 전문분야에 특화된 법조인, 교육에 의한 양성과 같은 도입 취지들은 실현 불가능한 신기루이거나 허점을 감추기 위한 장식(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더 황당한 건  로스쿨 입학 그리니까  법에 대한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기도 전에 얼마나 좋은 로스쿨에 입학했느냐에 따라 법조인으로서 발전가능성이 예단되고 로스쿨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쌓았던 성과물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습니까?  대학 서열 순서대로 로스쿨도 서열화되버렸고 더 위에 있는 로스쿨을 가기 위해 로스쿨에 다니면서 반수를 하는 문화도 성행하고 있죠. 반수를 법으로 막고 학칙으로 막는다고 해결될 거 같습니까?  이 과정에 필연적으로 부수하는 사회적 낭비는 어떻게 할 겁니까? 이건 학생들의 탐욕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에 관해서도 나중에 다루겠지만 변시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로스쿨은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되었다는 걸 반증하는 겁니다.


각 전문분야별 특성화요? 물 건너간지 한참 됐습니다. 100퍼센트 합격률을 보장해준다고 해서 특성화 교육이 될 거 같습니까? 3년이라는 시간내에 기본 6법을 전문가 수준으로 소화하는 것도 벅찬데 무슨 특별법에 전문분야까지 아우릅니까? 변호사는 법률 사무 전반을 포괄하는 자격증입니다. 기본법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한텐 포괄적인 권한을 주어선 안되는게 상식이죠.


2. 착시효과

로스쿨 도입으로  배출되는 변호사 수가 1500명으로 늘어서 변호사 문턱이 낮아졌다고 하는데, 겨우 500명 가지고 " 변호사들이 대량양산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웃긴 얘기이고... 꼴랑 500명 늘리자고 우리 법체계와는 맞지도 않는 교육 시스템을 고집하는건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에 불지르는 자는 소립니다. 로스쿨이 도입되고 나서 변호사 문턱이 낮아진 건 변호사 숫자가 늘어났기 떄문이지 사법시험에서 로스쿨로 변호사 배출 방식을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2009년에 로스쿨을 도입할게 아니라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1500명으로 늘렸다면 500명이 늘어난 효과는 똑같았을 겁니다. 사법시험에서 로스쿨로 바뀌었다는 사실과 1000명이 1500명을 바뀌었다는 병행 사실을 뒤섞어서 기만하고 있는 겁니다. 일종의 착시효과죠. 


예를 들어볼게요. 제2회 변호사시험때에는 로스쿨에서 1500명, 그리고 사법시험에서 500명. 합쳐서 총 2천명의 변호사사 배출됐습니다. 

그렇다면 종래 사법시험으로 1천명 뽑던 때와 비교해서 공급이 2배가 늘었으니 변호사의 문턱은 그만큼 낮아졌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로스쿨 측 주장이 맞다면 즉 변호사 문턱이 낮아진 이유가 사법시험이 아니라 로스쿨로 뽑았기 때문인 거라면 사법시험 출신 500명은 여전히 변호사 공급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는 문턱 높은 변호사란 소립니다. 1500명은 개천속에서 붕어 가재와 같이 숨쉬는 변호사이고, 500명은 개천 위에 군림하는 용인 서로 다른 변호사라고 하면서 동시에 취업시장에선 같은 변호사이니 동일한 대우를 해달랍니다. 

애시당초 사법개혁에 있어서 변호사 숫자 증가를 최우선 과제로 둘 만큼 비중이 큰 것도 아니고(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변호사 숫자 증가를 논하려면 먼저 법조인접직역(법무사 세무사 노무사 등)과 중첩되는 업무분야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부터 논의했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로스쿨 도입과정을 보면 변호사 수를 늘리는 것이 사법개혁의 최우선적 목표인 양 내세우면서 인접직역과의 조정을 진지하게 논의한 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역시 로스쿨을 무리해서 성급하게 도입한 것임을 반증하는겁니다. 일단 도입하고 나서 차차 논의할 생각이었다구요? 변호사 수를 늘려서 덩치를 키우고 나서 힘으로 찍어누르면 된다는 의도가 있었던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밤도 깊었고, 글도 장황하게 길어졌네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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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2019. 2. 6. 19:36

서울대 이용식 교수 ( 현대형법 이론 서문)

 

7-3 사태. 2007년 7월 3일 23시 57분 통과된 로스쿨법으로 인하여 야기된 일련의 사태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로스쿨의 유치를 위하여 대학들이 벌이는 무한경쟁은 가히 살인적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교수 숫자를 엄청 늘리고 빌딩을 번쩍번쩍하게 새로 짓고 도서를 몇 만 권씩 구입하여 수백 억씩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로스쿨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저자의 머릿속에 들었던 질문은, 로스쿨의 본질은 무엇일까이었다. 본인은 로스쿨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답하는 것은 난센스이고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념형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로스쿨 모습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는 그 제도적 원형(프로토팁)으로서 미국 로스쿨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이 무엇인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로스쿨 유치를 위해 우리나라 대학들이 해야 하는 일들을 보면 또 조금 알 수 있을 것이다. 로스쿨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저자가 보기에 로스쿨의 본질적 핵심은 돈에 있다. 누가 뭐래도 결국 로스쿨은 돈이라는 것이다.


로스쿨=돈’이라는 명제. 그것이 모든 것의 결론이다. 그런데 윗분들은 로스쿨은 돈으로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분들이 로스쿨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저자는 모르겠다. 로스쿨의 본질이 돈인데, 로스쿨을 돈으로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로스쿨의 본질에 반한다. 로스쿨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바로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로스쿨을 국민들이 결단했다. 그동안 법률가들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층이라고 여겨져 왔다. 사법서비스의 문턱에 접근하려고 하면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를 먼저 보이는 그런 자들로 치부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허물어야 하겠다는 것이 국민들의 뜻이다. 그 수단이 바로 로스쿨의 도입으로서 법률가 숫자를 대폭 늘려 사법서비스를 개선,향상시키자는 생각이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로스쿨은 선인 것이다. 기존의 대학 학부 시스템은 악이고 폐해이며 청산의 대상이다. 국민이 선이라고 선택한 것은 로스쿨이었는데, 그러나 그 본질에는 돈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서민 대중과 약자를 위한다는 참여정부가 돈을 결단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로스쿨은 돈스쿨이고 이는 결국 미국에서처럼 유전무죄,무전유죄, 그리고 사법의 스포츠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를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돈스쿨을 선택한 국민들이 1,500만원 내외의 등록금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로스쿨 등록금은 5000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회계학 전문가들의 분석이고 보면, 1500만원 내외의 로스쿨 등록금을 책정하여 적자를 안고 살아가겠다는 우리 대학들도 뭔가 이상하다. 심지어는 등록금 무료의 로스쿨을 시행하겠다고 신청한 대학들도 있다. 로스쿨을 유치하려는 목적이 다른 어딘가 정치적 이유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로스쿨 허가에서 지역 안배 내지 지역 균형발전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조하는 것을 보면 역시 로스쿨은 정치적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로스쿨은 바로 정치이다. 우리나라 로스쿨은 정치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어 정치적으로 논의가 끝났다. 우리나라에서 로스쿨 도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이었고(참여정부 주연, 한나라당 조연, 국민 관객의 영화였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로스쿨의 비극이다. 우리 모두가 패자이다.


이러한 로스쿨 체제하에서 법학의 모습은 어떠할지에 관해서도 로스쿨 문턱에 가 보지 못한 본인은 전혀 알 길이 없다. 대체로 법률 이론이 아니라 실무적인 교육이 요구된다는 말을 한다. 즉 로스쿨의 본질은 이론이 아니라 실무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하다. 이것 또한 미국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로스쿨에서 법학의 학문적 성격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 도착점은 법학의 학문적 종말이다. 로스쿨의 본질상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러한 운명적 결단을 이미 내린 것이다. 그것이 로스쿨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쿨법의 통과는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대한 사형선고이고 법학의 학문적 성격에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필자가 전공하는 형법에 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형법학은 쇠락해 가는 것이며, 이를 국민들은 기꺼이 선택하였다. 형법학의 종말. 그것이다.


로스쿨 유치신청을 하면서 나라에서는 교수들에게 지난 5년간 연구업적 800퍼센트를 요구했다. 당초에는 2007년 7월 3일 법이 통과되고 8월 31일까지 이 업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했다. 이 연구업적 기준을 채우기 위해 본서가 계획되었다. 로스쿨 인가신청서에 연구업적으로 카운팅되지 않은 논문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급한 요구 때문이었다. 로스쿨이 없었더라면 본서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로스쿨에 깊이 감사한다. 이 책을 로스쿨 평가위원회에 바친다.



2008년 1월 24일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이 용 식



(현대형법이론, 박영사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