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시사/사회

LG텔레콤 2007. 8. 9. 16:48

 

 

5.18 광주민주화 운동

 

5.18광주민주항쟁은 자주민주운동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민주항쟁이였다.

 

1. 유신정권의 종말 

 

# 1961년 5·16 군사쿠데타박정희권력장악 독재정권시작

 

▶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 /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선포 

▶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정권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막을 내림

  

# 12·12 군사반란 전두환주축 신군부 권력장악 군사독재 시작

 

▶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서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목표로 잡음

▶ 광주를 목표로 시작

  

Check! 왜 광주를 민주화운동의 목표로 삼았을까?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곳이며 야당의 정적 중에서 대중적 지지를 받고있던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광주였기 때문에 신군부의 표적이 됨

2. 서울의 봄

 

# 신군부의 전국장악 음모 → 자유의 요구를 사회혼란으로 매도, 진압훈련 실시

 

▶ 학생회 평교수회, 노동자등 일제히 가두시위와 집회를 전개 

▶ 5.17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 민주화운동 좌절 


 

 

3. 평화적 시위

# 1980년 05월 17일 비상계엄령 전국확대 / 민주인사체포

 

▶ 정치활동의 중지 ,옥내외 집회 시위의 금지,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의 사전 검열,

    각 대학의 휴교령, 직장이탈 및 태업파업의 금지 

 

▶ 국회통보 절차도 거치지 않고 계엄군을 동원, 국회를 무력으로 봉쇄한 채 취해진 불법조치

 

 

 

민족민주화성회 모습

 

4. 화려한 휴가 

 

 

# 최초충돌 전남대 정문 앞

 

휴교령이 내려진 전남대 정문 앞에서 전남대생들과 출입을 제지하는 계엄군사이에서 충돌

 

 

ㅁ 전남대 정문앞에서 전남대생과 계엄군의 대치

 

시민의 분노와 저항, 금남로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학생들이 시내에서 가두시위 시작 → 계엄군시내로 투입,진압시작

▶ 계엄군의 진압작전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진상을 알기 위해 금남로 몰려듬

▶ 11공수여단 천여명이 트럭 30여대로 도청 앞과 금남로에 진출

▶ 작전명 "화려한 휴가"라는 말 그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진압봉으로 무차별 구타

 

 Check! 가두시위란?

- 길거리에서 행하는 시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Check! 작전명을 왜 화려한 휴가라고 하였나요?

-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에따르면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은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 현대사 산책」저자 강준만씨의 해석

  작전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광주에 투입되기 전 '충정훈련'이라는 훈련을 받게 되는데

  그 훈련의 강도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그이상 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민간인인 광주 시민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찌보면 '휴가'쯤인 것이기에 붙인것이라고 봄

 

 


 

 ㅁ 화려한 휴가의 시작 

 

 

 

  ㅁ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폭력

 

 

ㅁ 공수부대 

  

ㅁ 청년들을 포함한 많은 고등학생들도 항쟁에 참여

 

 

# 항쟁의 확대와 첫 발포

공수부대의 만행에 격분한 택시기사들이 200여대의 차량시위감행

▶ 시내 곳곳에서는 자발적인 시위대가 형성

▶ 밤 11시경 광주역을 지키고 있던 공수부대와 시위대의 공방전이 격렬

▶ 시위대가 차량을 앞세워 군의 저지선을 돌파하려하자 발포. 시민을 향한 공수부대의 최초 발포

 

 

 

ㅁ 차량시위

 

 # 신군부의 잔악한 만행

 

 

5월 21일 오후 1시 도청의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시민들을 향해

      일제히 집단 발포함으로써 극단적으로 나타남

 

 ㅁ 계엄군의 집단발포 

ㅁ 총알이 뚫고지나간 공중전화에서 다급하게 전화를 걸고있는 시민 

 ㅁ 총알에 뚫려 구멍난 차창 사이로 보이는 계엄군 

 

 

 

 

 

ㅁ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함

   

 

# 계엄군의 퇴각과 양민학살

▶ 전남대병원 옥상에 설치한 기관총(LMG)의 위력은 계엄군의 퇴각을 서두르게 함

  

# 무장시민군의 등장

 

 

텅 빈 지서, 경찰서,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획득, '시민군'이 등장

▶ 5월 21일 도청 앞에서 전개된 시민군과 계엄군과의 시가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

▶ 광주시민 궐기문 발표

 

광주시민군 궐기문 (서기1980. 5. 25)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먼저 이 고장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다 목숨을 바친 시민,

학생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한 만행을 더이상 보고 있을수만 없어서 너도 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과 시민들은 과도정부의 중대발표와

또 자제하고 관망하라는 말을 듣고, 학생들은 17일부터 학업에, 시민들은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

습니다.

 

그러나 정부당국에서는 17일 야간에 계엄령을 확대 선포하고 일부 학생과 민주인사, 정치인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구실로 불법 연행했습니다. 이에 우리 시민 모두는 의아해 햇습니다.

또한 18일 아침에 각 학교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에게 대검을 꽂고 '돌격,

앞으로'를 감행하였고, 이에 우리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당국의 불법처사를

규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 이럴수가 있단 말입니까? 계엄당국은 18일 오후부터 공수부대를 대량투입하여 시내

곳곳에서 학생, 젊은이들에게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였으니!

 

아! 설마, 설마!

설마했던 일들이 벌어졌으니, 바로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무참히 대검에 찔리고, 귀를 잘리고, 연약한

아녀자들이 젖가슴을 잘리우고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무자비하고도 잔인한 만행이 저질러

졌습니다. 또한 나중에 알고 보니 군당국은 계획적으로 경상도 출신 제7공수병들로 구성하여

이들에게 지역감정을 충동질하였으며, 더구나 이놈들을 3일씩이나 굶기고 술과

흥분제를 복용시켰다 합니다.

 

시민 여러분!

너무나 경악스런 또 하나의 사실은 20일 밤부터 계엄당국은 발포명령을 내려 무차별 발포를

시작햇다는 것입니다. 이 고장을 지키고자 이 거리에 모이신 민주시민 여러분!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잇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당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장을 지키고 부모형제를 지키고자

손에 손에 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에서는 계속 불순배, 폭도로 몰고 있습니다.

 

여러분!

잔인무도한 만행을 일삼았던 게엄군이 폭돕니까?

이 고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우리 시민군이 폭돕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국에서는 계속 허위날조, 유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또한 협상이 올바른 방향대로 진행되면 우리는 즉각 총을 놓겠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 시민군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민주 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을 절대 믿어주시고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출전 [선언으로 본 80년대 민족ㆍ민주운동] <신동아> 1990.1 별책부록 28쪽~29쪽

동아일보사 간행

 

 

 

  ㅁ 무장한 시민군

 

 

5. 해방광주

  

 

# 시민공동체의 발현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치안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큰사고 없이 자치적으로 행해짐

 

ㅁ 공동체의 발현 

 

 

 

 6. 최후의 항쟁

 

시민군의 마지막 인사

 

시민 여러분!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광주시내로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우리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
시민 여러분 . . . . .
 

 

▶ 5월 27일 새벽, 공수부대원들은 시체더미 위에서 승리가를 합창하며

   충정작전을 끝냄

 

ㅁ 충정작전을 끝낸 계엄군

 

도청탈환을 목표로 조직된 특공대는 27일 새벽 1시 30분을 전후로

    침투시작

▶ 새벽 4시 무장한 공수부대원들에 의한 시민군 말살 초토화작전이

▶ 작전개시 1시간 30분만에 도청진압 완료

 

 

ㅁ 진압군이 지나간 자리

 

▶ 열흘간에 걸친 1980년 5월의 민중항쟁도 참담한 최후의 막을 내림

 

 

 

 

 

 

 

 

 

 

 

 

 

 

 

 

 

 

ㅁ 외신사진을 통해 알려진 무표정한 다섯살짜리 꼬마(조천호군)

 

천진난만한 사진표정은 80년 5월 당시 외부세계와 인위적으로 고립/단절/격리된 광주의

'고립무원'을 상징하는 사진이었다. 영정사진은 80년 5월 21일 금남로 시위에 나섰다가

총탄에 맞아 숨진 조사천씨이다

 

현재 조천호씨(31)는 그후 98년 광주시립묘지 관리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5.18 국립묘지로 승격해 보훈처가 관리를 맡게 되자 광주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몇해전 결혼소식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ohgn?Redirect=Log&logNo=70017497762

 

 

 

7. 5.18 그 끝나지않은 항쟁

 

  

 저는 아직 고등학생입니다

많이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도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서 많은분들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사건 경위와 진행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받아

최대한 알기쉽고 간략하게 정리하여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포스트를 보시고 조금이나마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앎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포스트는 5.18 기념재단의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출처 - 5.18 기념재단 www.518.org

        - http://topgun.tistory.com/25

 

본 포스트의 스크랩및 이용을 허락합니다.

많이 가져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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